통일외교앵커: 엄기영,정혜정

징용돼 부상입어 일본정부 상대로 손해배상 벌이는 석성기씨[김경태]

입력 | 1995-08-15   수정 | 1995-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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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용돼 부상입어 일본정부 상대로 손해배상 벌이는 석성기씨]

● 기자: 다음은 일본군으로 징용돼 남태평양 마샬 군도에서 부상을 입고 지금까지 일본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투쟁을 벌이고 있는 재일교포 1세의 얘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주인공 석성기씨는 돈 때문에 국적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보도에 김경태 기자입니다.

● 기자: 일본 가나가와 현의 한 병원, 이곳에는 16살의 나이로 일제에 의해 강제 징병돼 남태평양의 최전선에서 오른팔이 잘리는 상처를 입은 올해 74살의 석성기씨가 입원해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입은 중상에 지난봄 중풍까지 겹쳐 사색이 완연한 두 눈은 그러나 부릅뜬 상태로 고정돼 있습니다.

● 석성기: (친구와의 약속을) 성공시키기 전까지는 죽어도 눈 못 감는다.

● 기자: 지난해 3월 75의 한 많은 생을 마감하던 친구 진석일씨에게 일본정부로부터 꼭 사죄를 받아내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1963년 여름의 도쿄.

석씨와 진씨를 비롯한 17명의 일제 강제징병 피해자들, 성치 못한 몸을 이끌고 일본 도쿄 거리로 나섰습니다.

자신들의 삶을 불행의 나락으로 몰아넣은 일본 정부에게 피해배상을 요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수차례 조국의 정부에게 도움을 청해도 봤습니다.

한일협정이 체결되면 도와주겠다고 한 조국의 약속은 헌신짝처럼 버려졌습니다.

그래도 조국밖에 없어 또 한 번 기대해 봤지만 대답은 일본에 가서 물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어 개인자격으로 일본 법정에 피해배상 소송을 냈습니다.

일본정부는 일본으로 국적을 바꾸면 매달 32만엔 정도를 주겠다고 달랬습니다.

재판기간이 2년여를 넘기면서 17명중 15명이 일본으로 국적을 바꿨습니다.

불구의 몸으로 지탱해야하는 삶이 너무 버거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진씨와 석씨는 대한민국의 국적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 석성기:(배상금) 돈 받겠다고 선조들이 묻힌 한국의 국적을 바꿀 수 없다.

● 기자: 고집스레 국적을 지키며 재판결과를 기다리던 진씨는 판결 2달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판결은 패소였습니다.

현행법상 일본인에게만 배상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인에 대한 일본정부의 배상은 정치적으로 해결돼야할 문제라고 밝혔습니다.

거듭되는 일본의 책임 회피 속에서 피해 당사자는 죽어갔지만 그 아픔은 대물림되고 있었습니다.

● 진경일(고 진석일씨의 장남): (개인 간에 싸워) 상처를 입혀도 반드시 책임을 지는데 국가 간에는 왜 책임을 지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 기자: 날 궂으면 도지는 신경통처럼 매년 8월이 되면 일제만행에 의한 아물지 못한 상처가 욱신거려 옵니다.

하지만 반복되는 통증에 익숙해져버린 후손들의 무관심과 가해자 일본의 철저한 과거사 외면이 계속된다면 피해 당사자들의 죽음과 함께 50년 전 일제만행의 역사가 전설이 되어버릴지도 모릅니다.

MBC뉴스 김경태입니다.

(김경태 기자)

● 기자: 지금까지 오사카에 있는 코리아타운에서 전해드렸습니다.

● 앵커: 네, 정 앵커.

김 특파원 수고했습니다.

잠시 국내뉴스 해드린 다음에 러시아를 거쳐서 다시 한 번 연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준비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