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앵커: 정동영,김은주

전두환씨의 64년 영욕의 세월[조헌모]

입력 | 1995-12-03   수정 | 1995-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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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욕의 세월]

● 앵커: 전두환氏의 구속으로 결국 우리나라의 군인출신 대통령 세사람은 모두 불행한 종말을 맞았습니다.

80년대 전두환氏는 대통령으로 국민위에 군림했으나 오늘 그 앞에 남은 것은 12.12와 5.

18의 수괴라는 이름뿐입니다.

조헌모 기자입니다.

● 기자: 어렸을 적에는 움막집 아이로 불리웠던 전두환氏, 가난을 안고 태어났지만은 평범한 생을 살았을 수도 있는 청년 전두환에게 훗날 영욕을 함께 안겨다준 계기는 전쟁통에 나붙었던 한 장의 육사모집 공고였습니다.

초중고등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탓에 육사시절 4년 동안 소대장생도 한번 못해본 그는 그러나 강인한 육체에 타고난 처세술을 밑천으로 주월 백마부대 연대장까지 하며 야전의 경험을 쌓습니다.

그리고 공수부대의 꽃이라는 1공수여단장으로 별을 달게 된게 73년1월, 10.26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그 위압적인 모습을 대중 앞에 드러냈을 때 만해도 그는 아직 별 2개의 소장에 불과했습니다.

● 全합수부장 10.26 수사결과발표(80년11월): 김재규는 화장실로 피신하는 차 실장에게 재차 쏘고 방아쇠를 당겼으나..

● 기자: 그 뒤 1년도 채 안된 어느 날 어느새 사성장군이 돼있던 그가 전역할 때 축하장에는 내노라하는 인사들이 구름처럼 모여듭니다.

그가 잉태시켰던 5.17, 5.18의 수난과 항쟁의 바로 그해 80년 8월이였습니다.

그리고선 바로 다음달 11대 대통령 취임식, 영예를 드높히는 박수는 요란했지만은 돌이켜보면 장충체육관 울타리 안에서의 갈채였다는게 끝내 그의 불행이였습니다.

최초의 평화적인 정권교체라는 찬사 아래 동기생 노태우氏에게 바톤을 물려주어 고맙다는 악수를 받을 때만 해도 그는 국가원로로서의 편안한 여생을 보장 받은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때 이후 영예는 그로부터 멀어져만 갔습니다.

● 전氏 대국민 담화발표 (88년11월): 저로 인해서 온 사회가 들끓고 있고 큰 물의가 빚어지고 있는데 대해 한량없이 죄송스럽습니다.

● 기자: 그는 자신의 공으로 믿어마지않던 서울 올림픽이 있었던 그해 초겨울, 백담사로 유배를 떠나야하는 업보를 삼켜 참아야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재개된 연희동 칩거생활, 그렇지만 그가 바깥나들이만 했다 하면은 번쩍 거리는 승용차들의 과시행렬이 뒤따르는 등 사라진 힘에 대한 향수 같은 것이 그의 주변을 맴돌자 청산되지 않는 못난 역사라며 뜻있는 많은 사람들은 가슴을 쳤습니다.

그러나 오늘 동트는 새벽, 64년 영욕의 세월을 마감하듯 고향땅에서 급기야는 교도소로 향하는 전두환氏의 무거운 발길을 보고 사람들은 사필귀정의 교훈을 되새겼습니다.

MBC뉴스 조헌모입니다.

(조헌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