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앵커: 이인용,정혜정
한국전 때 산청 지리산에 외지인 수백명 학살, 매장 확인[이준석]
입력 | 1998-06-17 수정 | 1998-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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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MBC뉴스데스크입니다.
오늘 뉴스데스크는 MBC 취재진이 발굴한 우리 현대사의 아픈 흔적을 전해드립니다.
산청학살 현장 발굴.
한국전 당시 경남 산청군의 지리산 골짜기에 누군지도 모르는 외지인수백명이 학살돼 묻혀있는 게 확인됐습니다.
목격자의 얘기에 따라 파 내려간 자리에는 차마보기 어려운 참혹한 과거가 담겨 있었습니다.
진주에 이준석 기자입니다.
● 기자: 1951년 2월 말, 지리산 골짜기 마을에 군용차를 앞세운 10여 대의 버스가 들이 닥쳤습니다.
먼저 내린 일단의 군인들은 아녀자와 노인네가 대부분인 수백명의 민간인들을 곳곳에 모아 세웠습니다.
그리고는 학살이 자행됐습니다.
● 장병준 목격자(경남 산청군): 한 10m 가까이나 올라갔어요.
새벽 1시나 점심때 느즈막이 되니까전부 총소리가 나고 사람이 훌쩍훌쩍 뛰고…
총을 쏘니까 구덩이에 빠지는 것 같아요.
● 기자: 이 사실은 지금까지 깊은 잡초더미 속에 묻혀 잊혀졌습니다.
유골 발굴에 앞서서 학살된 이들의 넋을 달래기 위한 오구굿이 열렸습니다.
발굴 30분 만에 시커멓게 변색한 유골이 47년 만에 땅위에 드러났습니다.
어린 아이의 유골을 포함해 어른에 이르기까지 학살 현장의 참혹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손가는 곳마다 유골이 돌무덤 속에서 나옵니다.
대여섯 구의 유골이 차례로 발굴됩니다.
얼마나 많은 희생자들이 묻혀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 …
전부 빨갱이라고 동네 좋은데 살려고 가자고 몰아서 갔어요.
남자, 여자, 아이, 아줌마, 가시나들 꽉 찼지…
이 같은 매장터가 이 골짜기에만 모두 6군데, 매장터는 불과 반경100m 안에 밀집돼 있습니다.
그러나 마을 주민이 아닌 사람들이 여기까지 끌려와 왜 학살됐는지, 이름과 또 고향은 어디인지 밝혀진 사실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47년을 침묵했던 돌무덤 앞엔 무명비와 들꽃 한 송이만이 이들의 영혼을 달래고 있습니다.
MBC뉴스 이준석입니다.
(이준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