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앵커: 이인용,김은혜
[가는100년] 국치/한국전쟁으로 인한 이산가족사 100년 정리[전영배]
입력 | 1999-12-10 수정 | 1999-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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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100년][국치/한국전쟁으로 인한 이산가족사 100년 정리]
● 앵커: 가는 100년을 돌아보는 기획보도, 오늘은 아직까지 풀리지 않고 있는 민족의 한 이산가족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1900년대 초 나라 잃은 설움 속에 숱한 사람들이 이 땅을 떠나야 했고, 해방의 기쁨도 잠시 한국전쟁은 더 큰 이산의 슬픔을 남겼습니다.
전영배 기자입니다.
● 기자: 해방이 되고 일본으로, 만주로, 시베리아로 떠났던 사람들이 하나둘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재회의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동족간의 전쟁은 더 많은 이산을 낳았습니다.
전쟁 이후 처음 맞은 겨울, 눈보라가 휘날리는 흥남부두에는 배를 타려는 사람들로 또 다른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이산은 끊어진 대동강 철교에서, 38선에서, 그리고 한반도 어디에서나 넘쳐났습니다.
해방 이후 500만 명 이상이 그렇게 고향을 떠났고 이산은 대물림으로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됐습니다.
전쟁의 포화가 멎은 뒤에도 월남과 월북 그리고 납북이 거듭됐습니다.
전쟁 후 북한에 납치된 사람이 3,700명을 넘고, 아직 살아있는 사람만도 454명이나 됩니다.
1983년 신혼 때 헤어졌던 부부가 만나고, 이웃사촌으로 알았던 오누이가 재회하면서 이산의 한이 봇물처럼 터졌습니다.
그러나 남북 이산가족의 첫 만남은 그로부터도 2년을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북의 노동당 간부가 서울에서 팔순이 넘는 어머니의 깡마른 손목을 붙잡고 대성통곡하고, 남한의 저명한 종교지도자가 북의 초췌한 누이동생의 등을 쓰다듬을 때 그 눈물은 우리 모두의 것이었습니다.
그런 만남도 잠시, 전향을 거부하던 이인모 노인을 이산의 한을 풀자며 42년 만에 고향으로 보내줬지만 북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소떼를 동반한 정주영 씨의 방북은 실향민들의 금강산 관광으로 이어졌지만 그곳이 꿈에 그리던 고향산천일 수는 없었습니다.
비밀상봉도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모두 400여 건이 성사됐지만 돌아서는 발걸음에 이산의 무게가 만나기 전보다 깊어지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탈북자, 이들 또한 뿌리 잃은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는 신판 이산가족일 뿐입니다.
실향민들의 마을인 강원도 속초시 속칭 아바이 마을, 남들보다 한발이라도 고향땅을 먼저 밟아보겠다고 정착한 게 벌써 50년이 다 됐습니다.
● 황화수(76살, 흥남 출신): 고향에 가고 싶고 한 게 더 말할 것도 없죠.
하지만 그게 인력으로 되나요.
● 기자: 이곳에 정착한 이산 1세대 140여 명 중 살아남은 이는 이제 채 100명도 되지 않습니다.
이들에겐 1년, 아니 한 달 하루가 그저 아쉬울 뿐입니다.
반백년을 수구초심으로 북녘 땅을 바라보며 살아온 실향민들, 이들의 한 맺힌 꿈을 풀어주는 것은 새 세기를 맡는 우리들의 숙제입니다.
MBC뉴스 전영배입니다.
(전영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