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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닝 이슈] '영남제분 청부살인', 연이은 비극
입력 | 2016-02-2417:35 수정 |2016-02-24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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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영남제분 회장의 아내 윤길자 씨가 여대생을 청부 살해했던 사건 기억하시나요?
14년 전 딸이 살해된 뒤 고통 속에 세월을 보내왔던 여대생의 어머니가 홀로 숨진 채 어제 발견됐습니다.
보도 내용부터 함께 보시죠.
◀ 리포트 ▶
지난 20일 검단산이 보이는 경기도 하남의 한 아파트에서 64살 설 모 씨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억울하게 딸을 보내고 14년을 견뎌 온 설 씨의 체중은 40kg도 채 안 됐고, 집 안 곳곳에는 빈 술병만 뒹굴고 있었습니다.
[경기 하남경찰서]
″위에 내용물이 없다든가 그런 걸 봤을 때는 제대로 식사도 안 하고, 그래서 사망한 게 아니냐….″
지난 2002년 설 씨의 딸인 하지혜 씨는 하남 검단산 등산로에서 얼굴에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영남제분 회장의 아내 윤길자 씨가 1억 7천여만 원을 주고 살해를 지시한 겁니다.
얼굴을 보면 딸 생각이 나 견디기 힘들다며 지혜 씨 가족이 각각 따로 사는 동안 윤 씨는 단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억울하게 당한 일, 자식을 잃은 슬픔은 그 무엇으로도 이길 수가 없다″는 지혜 씨 오빠의 글처럼 14년 동안 미뤄오던 지혜 씨 사망 신고를 지난달 마친 설 씨는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다던″ 생을 마감하고 딸 곁으로 떠났습니다.
◀ 앵커 ▶
이 사건은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지난 2002년 3월, 경기도 하남시의 한 야산에서 공기총에 맞아 숨진 한 여대생의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수사 결과 영남제분 회장의 부인 윤길자 씨가 돈을 주고 청부 살인을 한 것으로 드러났었죠.
그런데 이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윤 씨는 이후 교도소가 아닌 대학병원의 VIP 병실에서 생활한 것으로 드러나 전 국민의 공분을 사기도 했는데요.
이 시간 이 사건에 대해서 다시 자세히 짚어보겠습니다.
먼저 14년 전 사건 내용부터 살펴보겠습니다.
◀ 리포트 ▶
2002년 3월 16일 새벽 경기도 하남의 검단산.
자루에 쌓인 채 버려져 있는 시신 한 구가 발견됐습니다.
[최규명/경기도 광주경찰서 감식반 경장]
″다리가 밑에 있고 나뭇가지 사이에 있잖아요. 교묘하게 시체가 놓여져 있더라고요.″
처참한 시신의 신원은 22살 여대생 하 모 양.
여대생 하 모 양이 아침 운동을 하러 집을 나섰습니다.
아파트 감시카메라에는 두 명의 남자가 하 모 양을 급하게 따라나서는 모습도 함께 찍혔습니다.
[인근 주민]
″비명 두 번. 두 명이 들었어요. 이 앞에서….″
차량도 찾아냈습니다.
이 차 안에는 선명한 핏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담당 수사관]
″이거 핏자국 같은데. 녹물은 아닌 것 같은데.″
경찰은 또 아파트를 찾아와 하 양의 일상을 꼬치꼬치 물어보고 사라진 60대 여인이 하 양의 납치와 살해를 교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아파트 관리직원]
″그 사람이 와서 ′하 모 양이 몇 시쯤 나가냐, 학교 잘 다니냐′ 물었어요.″
용의자로 지목된 41살 윤 모 씨 등 2명은 베트남과 홍콩을 거쳐 중국으로 달아났다 1년 만에 검거됐습니다.
윤 씨의 고모인 58살 윤 모 여인으로부터 1억 7천만 원을 받기로 하고 살해했다고 털어놨습니다.
[하승균/경기경찰청 강력계장]
″그동안 여러 번 미행과 납치 등에 실패를 하자 나중에는 ′죽여버리는 게 낫겠다. 적당한 사람을 찾아달라′라고 해서….″
◀ 앵커 ▶
이들에게 돈을 주고 하 양을 살해하라고 사주한 사람은 영남제분 회장의 부인 윤길자 씨였습니다.
그럼 윤 씨는 도대체 왜 한 여대생에게 집착하며 미행에, 납치에, 살해까지 사주한 걸까요?
나경철 아나운서가 판결문 내용을 토대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 나경철 아나운서 ▶
살해된 여대생 하지혜 씨는 윤길자 씨 사위의 이종사촌 동생이었습니다.
윤 씨는 당시 판사였던 사위의 불륜을 의심하고 추적하던 중이었는데, 엉뚱하게도 사위의 사촌 동생인 하 씨를 의심한 겁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윤 씨는 지난 1999년부터 2년 동안 자신의 조카와 현직 경찰관 등 20여 명을 고용해서 하 씨를 감시했습니다.
하지만 전혀 증거를 잡지 못했는데요.
그런데도 윤 씨는 자신의 조카와 조카 친구에게 1억 7천여만 원을 주겠다며 ′하 씨를 죽이라′고 살인을 청부하기에 이릅니다.
착수금은 현금 5천만 원이었습니다.
결국, 범행 사실이 드러나 윤길자 씨와 윤 씨의 조카 등은 모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2004년 5월 대법원에서 확정됐습니다.
하지만 윤 씨는 결코 반성을 하지 않았습니다.
형이 확정된 뒤에도 ″나는 살인을 교사한 적이 없는데 조카가 거짓말을 했다″며 지난 2010년 조카를 위증죄로 고소하기도 했는데요.
법원은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 앵커 ▶
그런데 이처럼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윤 씨가 실제로는 ′교도소에 수감돼 있지 않다′는 제보 전화가 3년 전 MBC에 걸려 왔습니다.
당시 시사매거진 2580에서 사실 확인에 나섰는데요.
영상을 함께 보겠습니다.
◀ 리포트 ▶
윤 씨가 수감됐던 교도소를 찾아가봤습니다.
[포항교도소 관계자]
″전국에 지금 윤 모 씨라는 수용자는 조회가 안 되거든요. 출소한 걸로 돼 있습니다.몸이 안 좋으니까 도저히 징역을 살 수 없다….″
건강상의 문제로 형 집행정지를 받아 교도소를 나왔다는 겁니다.
◀ 나경철 아나운서 ▶
그럼 교도소에서 사라진 윤길자 씨는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걸까요?
취재 결과 윤 씨는 지난 2007년부터 2013년 초까지 5년 동안 서울 세브란스 병원 특실에 입원과 퇴원을 38차례나 반복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하루 이용료가 백만 원에서 2백만 원 까지하는 VIP 병실이었는데요.
처음 2007년에는 유방암 수술 그리고 2008년에는 안과 수술 명목으로 입원을 했었는데,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에도 5년 가까이 수시로 입원실을 찾았습니다.
2012년 한 해 자료만 살펴봐도 2011년 12월부터 2012년 3월까지 100일 넘게 입원한 뒤, 다시 4월부터 6월까지 56일, 그리고 7월부터 9월까지 57일, 그리고 다시 10월부터 이듬해 1월 말까지 석 달 넘게 입원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총 309일.
여기서 2012년만 따져도 1년의 3분의 2 이상을 병원 특실에서 보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또 입원 중 수십 차례 외출도 했는데요.
몸이 안 좋다는 사람이 일이 있다며 포항까지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 앵커 ▶
청부 살인을 한 죄로 무기징역까지 선고받은 사람이 얼마나 아프기에 지금 보신 것처럼 5년 동안 수시로 장기 입원이 가능했던 걸까요?
윤 씨의 진단서를 살펴봤더니 이상한 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습니다.
영상으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 리포트 ▶
윤씨의 세브란스 병원 주치의가 작성한 진단서입니다.
″지난 2007년 유방암 수술 이후 소화기암에 걸릴 가능성이 보이며, 파킨슨 증상이 호전되지 않는다. 단독보행조차 어려운 상태로 수감생활이 가능하지 않다″고 적혀있습니다.
2580은 윤 씨가 세브란스 병원의 각 분야 전문의들로부터 실제 진료받은 기록을 입수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주치의가 작성한 진단서와 내용이 다릅니다.
진단서에는 ′파킨슨병 증상 호전에 장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적혀 있지만, 당시 윤 씨를 진료했던 신경과 의사는 ′파킨슨병일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썼습니다.
해당 신경과의사는 당시 ″파킨슨병이 아닌 거 같아서 약을 안 드셔도 된다고 말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주치의 진단서에는 췌장암이나 위장암 등 소화기암에 걸릴 가능성을 집중 관찰해야 한다고 돼 있지만, 소화 내과 등의 검사결과 이미 아무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온 상태였습니다.
◀ 나경철 아나운서 ▶
취재진은 윤 씨의 정확한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서 직접 병원을 찾아 윤길자 씨를 2주 동안 지켜봤습니다.
그런데, 음식물을 삼키기 어렵다는 윤 씨는 밥도 혼자 잘 먹었고, 거동이 어렵다는 진단서와는 달리 혼자 화장실도 잘 다녀오고 옷장 정리도 잘했습니다.
이상한 부분은 또 있었는데요.
혼자 멀쩡히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의사들이 회진 차 병실에 들어오자 갑자기 보호자의 부축을 받으며 화장실에서 나오기도 했고, MBC 취재진이 병실에 들어갈 때는 멀쩡히 침대에 앉아있었는데 기자라고 신분을 밝히자 갑자기 손을 마구 떨며 전신이 아프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윤 씨의 주치의가 아닌 다른 병원의 전문의들은 윤 씨의 이런 모습에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 직접 들어봤습니다.
◀ 인터뷰 ▶
[양현덕/신경과 전문의]
″보폭도 전형적인 파킨슨하고 거리가 멀고요. 팔 움직임도 자연스럽고, 종합적으로 볼 때 이분이 파킨슨을 가지고 있다고 얘기하기는 정말 어려울 것 같아요.″
[박상준/호흡기내과 전문의]
″′연하장애′라고 하면 음식물을 삼키는 기능이 비정상이란 얘기거든요. 정상적으로 보행을 하고 식사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말이 잘 안 어울리죠.″
″저거는 퇴원이죠. 입원 자체가 안 돼.″
″반복적으로 이런 식으로 하면서 그렇게 진단서를 써줄 수 있는 게 굉장히 힘든데 의사들한테….″
[송형곤/응급의학과 전문의(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
″꼭 입원해야 하거나 수감생활을 전혀 못 할 상황이거나 이렇게 판단되지는 않습니다.″
◀ 앵커 ▶
MBC의 보도 이후 윤길자 씨는 당시 다시 교도소에 수감됐습니다.
하지만 수십 차례 허위 진단서를 발급해 준 의사는 1심에서는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벌금 5백만 원으로 감형됐고, 윤길자 씨의 남편인 영남제분 류원기 회장도 1심에서는 실형을 받았지만 2심에서는 집행유예로 풀려났습니다.
또 영남제분은 지난해 상호를 한탑으로 바꿔서 여전히 성업 중이죠.
하지만 피해 여대생의 어머니는 딸이 피살된 이후 14년 동안 미뤄왔던 딸의 사망신고를 지난달 마치고는 어제, 결국 딸의 곁으로 떠났습니다.
수감자에게도 인권이 있고 그 인권 보장 차원에서 형 집행 정지 제도도 만들어졌지만, 누군가 이 제도를 악용하고 있는건 않은지.
또,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평생을 큰 고통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