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닝뉴스

[이브닝 이슈] 공무원 시험 '화장실 금지' 논란

입력 | 2016-06-2717:48   수정 |2016-06-27 18:08

Your browser doesn't support HTML5 video.

◀ 앵커 ▶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줄여서 ′공시생′ 이라고 부르는데요.

′언제 공무원 시험이 있다′고 공지가 뜨면 응시자가 수십만 명씩 몰리는 게 하나의 사회적인 현상처럼 돼 버리면서, 마치 고유명사 같은 이런 신조어까지 등장한 겁니다.

바늘구멍 들어가기 만큼 어렵다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들의 모습을 먼저 영상으로 살펴 보겠습니다.

◀ 리포트 ▶

국내 최대의 고시촌인 노량진에 위치한 한 공무원 시험 대비 학원.

긴장감이 가득한 학원에선 말 한마디, 숨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최웅기/공무원 시험 준비]
″벼랑 끝에 몰려 있다는 느낌으로 간절하게 준비를 했기 때문에…시험장에서 100%를 쏟아 붓고….″

점심시간, 고시원 식당인데요.

밥을 뜨면서도 눈은 문제집에서 떼지 못합니다.

[정영탁/공무원 시험 준비]
″평상시에 노력했던 만큼만 실수 안 하고 결과 나왔으면 좋겠어요.″

불안감에 약을 찾는 수험생들도 적지 않습니다.

[여도현/약사]
″시험 전날이다 보니까 학생들이 많이 떨려 해서 우황청심환을 많이 찾으러 오세요.″

◀ 앵커 ▶

전국의 공무원 시험 지원자 수는 한 해에만 45만 3천여 명에 달합니다.

대입 수학능력시험 응시자가 매년 62만 명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공무원 시험은 수능 다음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응시하는 시험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고, 또 시험의 공정성 여부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공정성 때문에 수험생들의 인권이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는데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유선경 아나운서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 유선경 아나운서 ▶

지난해 6월 27일, 경기도 내 69개 학교에서 경기도 지방공무원 2천여 명을 뽑기 위한 필기시험이 치러졌습니다.

그런데 이날 시험감독관의 근무요령 지침 중 하나가 논란이 됐습니다.

수험생이 시험 도중 화장실 사용을 요구하면 남성의 경우 교실 뒤쪽에 뒤돌아서서 소변용 봉투에 용변을 보도록 하고, 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교실 뒤쪽으로 가서, 그러니까 시험문제를 풀고 있는 수험생들의 등 뒤에서 우산 등으로 가림막을 친 뒤 용변을 보도록 조치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대부분 스무 살이 넘은 성인 남녀들이 함께 있는 교실이라는, 한 공간 안에서 남들은 필기시험을 치르고 있는 그 와중에 그 뒤에서 소변을 봐야 한다는 겁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수원시 인권센터는 ″심각한 인권 침해″라며 수원시에 개선을 권고했고, 수원시 역시 권고가 타당하다고 판단해 경기도에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습니다.

경기도 또한 ″도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 차원의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며 이를 행정자치부에 건의했는데요.

하지만 정작 중앙정부의 반응은 냉랭했습니다.

행정자치부는 ″공무원 시험 응시생들의 인권보다 시험의 공정성이 우선″이라면서 받아들이지 않은 겁니다.

◀ 앵커 ▶

유선경 아나운서, 시험을 보다가 화장실이 급하면 교실 밖으로 나가는 것은 안되니까 교실 뒤쪽에서 볼일을 봐라.

조용한 시간에, 시험을 보는 와중에 교실 안에서 볼일을 보라니 충격적인데요.

그런데 이게 최근에 나온 지침이 아니라고요?

◀ 유선경 아나운서 ▶

그렇습니다.

놀랍게도 수십 년 전부터 이어져 온 관행이라고 합니다.

1980년대에는 공무원 시험을 볼 때 교실 뒤편에 양동이를 비치해 놓고서 용변을 해결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나마 그 후 나아진 게 ′소변 봉투′고, 그게 2016년인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는 건데요.

공무원 시험은 아니지만 실제 2년 전 국가기술자격 시험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시험 중 화장실에 갈 수 없다′는 감독관의 말에, 소변을 참다 참다 못 한 한 남자 응시생이 ′시험장 안에서라도 용변을 보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이 남자 응시생은 결국 교실 뒤편 쓰레기통에 소변을 본 건데요.

이 응시생은 이후 ″심한 수치심과 굴욕감을 느꼈다″며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 앵커 ▶

그러니까 혹시나 화장실에 간다고 하면서 부정행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고육지책이 나왔을 텐데, 다른 시험들은 어떤가요?

전국적으로 치러지는 다른 시험에서도 이렇게 화장실 출입이 금지되고 있나요?

◀ 유선경 아나운서 ▶

그건 아닙니다.

유독 공무원 시험에서만 이런 비인권적인 조치가 수십 년째 답습돼 오고 있는데요.

특히 성적에 가장 민감하다고 할 수 있는 대입 수학능력시험에서도 시험시간 중 용변이 급해지면 수험생과 같은 성별의 감독관이 동행을 하고, 혹시 모를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서 사용할 화장실 칸도 감독관이 직접 지정해주는 방법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수원시 인권센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지진다″는 헌법 제10조를 들어 ″유치장 수용자들도 이 헌법에 따라 2001년부터는 유치장 내부 화장실을 사용하지 않게 바뀌었다″며 공무원 시험의 현재 방식은 ′대입 수능 수준으로 개선되어야 한다′고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습니다.

◀ 앵커 ▶

이에 대한 인권위원회의 결정은 아직 나오지 않았는데요.

우리 시민들의 생각은 어떨까요?

이브닝뉴스 취재팀이 직접 들어봤습니다.

◀ 교실 내 용변 ′반대′ 인터뷰 ▶

[정재형]
″대기업 시험이나 자격증 시험 같은 경우에는 감독관이 같이 동행을 해서 화장실도 가고 하는데 유독 공무원 시험만 반영이 안 된다는 건 인권침해라고 생각합니다.″

[권미애]
″부정행위, 이 부분만 강조를 해서 인권침해를 하는 부분이 강한 것 같고요. 여성들의 경우에는 수치심을 느끼는 부분이 클 것 같아요. 이건 너무 원시적인 방법으로 해결을 하는 거니까….″

[배기엽]
″응시자들을 잠정적인 부정행위자로 간주를 하는 건데, 제도적인 문제나 시스템적인 문제를 따로 보완을 하든지 해서 개인의 인권은 좀 보호돼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조승해]
″생리현상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듣는 것 자체가 굉장히 본인에게는 수치심을 일으킬 수 있고, 프라이버시의 침해라는 생각이 듭니다.″

◀ 교실 내 용변 ′찬성′ 인터뷰 ▶

[강석일]
″시험 시간이 두 시간 정도이고 그 부분은 미리 개인이 조절을 해서 미리 준비하면 좋을 것 같고요. 부정행위나 그런 우려가 되기 때문에 가능하면 지금 체제가 그대로 유지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송주환]
″공무원 시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정성이라고 생각을 해요. 공정성을 위해서는 여지를 주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 앵커 ▶

다른 수험생들이 있는 교실에서 공개적으로 용변을 봐야 된다.

인권 침해가 너무나 명백한데도 정부가 섣불리 개선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그만큼 공정성 시비가 많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극심한 취업난에 단 0.01점 차이에도 합격의 당락이 나뉘는 경우가 허다하다 보니 소방 공무원과 경찰 공무원 시험에는 올해 처음으로 ′도핑 테스트′까지 도입됐습니다.

체력 시험이 이뤄지는 현장을 함께 가 보겠습니다.

◀ 리포트 ▶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소방공무원을 꿈꾸는 수험생들이 체력 테스트를 시작합니다.

1점이 당락을 가를 수도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 더, 더… 됐어요. 됐습니다. 25.3cm″

치열한 경쟁의 장인 만큼 프로 스포츠에서나 볼 수 있는 카메라 판독도 도입됐습니다.

″아 밟았구나… (확인했어요?) 네.″

올해는 채용시험이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도핑테스트까지 실시합니다.

소방과 경찰 공무원 등은 체력시험이 필수인데 일부 수험생들이 금지 약물을 복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황인/광주소방본부 소방행정담당]
″0.01점에 따라서 당락이 결정되는 그런 시험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공정하게 치러져야 하고 특히 공직이기 때문에…″

공정한 경쟁을 위해 도핑테스트가 당연하다는 반응도 있지만 불편해하는 수험생들도 적지 않습니다.

[수험생]
″조심스럽긴 하죠. 약도 안 먹죠. 시험 보기 한 1~2주 전부터는 아무것도 안 먹죠.″

극심한 취업난에 공직 선호 현상까지 겹치면서 올림픽에서나 볼 수 있던 도핑테스트가 이제는 공무원 채용 시험에까지 등장했습니다.

◀ 앵커 ▶

다른 응시생들보다 시험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받기 위해서 허위 진단서를 위조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보도 내용을 함께 보시죠.

◀ 리포트 ▶

송 모 씨가 부정행위를 시작한 건 지난 2010년부터였습니다.

한 대학병원을 찾아가 시력검사를 받으면서 ″검사표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해 약시 진단서를 발급받은 겁니다.

이 진단서로 저시력자로 분류된 송 씨는 과목마다 시험시간을 1.5배 더 부여받았습니다.

송 씨의 부정행위는 지역인재 7급 공무원 시험까지 이어졌습니다.

5년 전 발급받았던 허위 진단서를 날짜만 바꿔 위조하고, 2차 시험에 필요한 한국사와 토익시험을 칠 때도 시험 시간을 1.2배 더 받아내 좋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 앵커 ▶

우리 청년들은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공무원 시험에 목을 매고 있는 걸까요?

극심한 취업난도 원인이지만 어려서부터 장기 불황을 겪어 온 세대인 만큼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내용은 나경철 아나운서가 전해드립니다.

◀ 나경철 아나운서 ▶

바늘구멍을 뚫고 9급 국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 받게 되는 첫 월급은 134만 6천4백 원이라고 합니다.

생각보다 많이 적어서 놀라셨나요?

연봉으로 따지면 1천600만 원 정도인데요.

여기에 각종 수당과 복지 포인트 등을 다 합하면 2천만 원이 조금 넘습니다.

국내 500대 기업의 대졸 신입사원 초임인 3천8백만 원보다 훨씬 적은데요.

하지만 일할 수 있는 기간을 감안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똑같은 서른 살에 일을 시작했다고 가정하면, 공무원은 정년인 예순 살까지 30년간을 걱정 없이 다닐 수 있지만 대기업 직원의 평균 근속기간은 10년 2개월밖에 되지 않아서 평균 근속기간을 적용하면, 마흔 살에는 회사에서 짐을 싸야 하는 겁니다.

또 요즘 같은 백세 시대, 가장 중요한 게 노후 준비죠?

퇴직 후에도 공무원은 매달 2백만 원이 넘는 연금이 이처럼 꼬박꼬박 나오지만, 일반 직장인들은 국민연금만으로는 노후에 생계를 꾸리기가 쉽지 않아서 따로 개인연금 등 다른 노후 대비를 해야 합니다.

게다가 보험사 등에서 판매하는 개인연금 상품은 물가 연동도 되지 않아 수십 년 뒤 화폐 가치가 떨어지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안정적인 노후가 보장된다는 점이 공무원의 가장 큰 장점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