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차바′의 직접 영향권에 들었던 경남지역 곳곳이 보시는 것처럼 완전히 물바다가 됐었죠.
이게 불과 보름 전의 일인데요.
호수같이 변한 주차장에 차량 수백 대가 이렇게 둥둥 떠다니거나, 길가에 세워둔 차량이 물에 떠내려가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태풍 ′차바′로 이처럼 침수 피해를 당한 차량, 얼마나 될까요?
손해보험협회의 집계에 따르면, 5천 1백여 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그럼 이런 침수 차량들은 보통 어떻게 처리될까요?
그냥 고쳐서 타자니 위험할 것 같고, 또 수리비도 많이 들기 때문에 보험사로부터 보험료를 받고 ′폐차′ 처리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최근 경남 지역에는 이런 과정을 거쳐 폐차를 대기하고 있는 차량들이 크게 늘었다고 합니다.
먼저 그 현장을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 리포트 ▶
차량 수백 대가 공터를 가득 채웠습니다.
흙탕물이 가득 묻어 있고, 유리창은 파손됐습니다.
엔진과 주요 전자장치도 침수의 흔적이 뚜렷합니다.
차주들이 태풍에 침수돼 폐차하겠다며 보험사에 내놓은 이른바 ′전손차′입니다.
◀ 앵커 ▶
지금 보신 차량들 모두 소유주가 보험사에 폐차를 요청한 차량들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폐차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요.
무슨 얘긴지, 유선경 아나운서와 살펴보겠습니다.
◀ 유선경 아나운서 ▶
폐차장으로 가야 할 이 차량들이 놀랍게도 다시 중고차 업체에 팔리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침수차 거래′인데요.
그 중심에는 보험사가 끼어 있습니다.
보험사가 회원 전용 거래 사이트에 침수 차량의 정보를 올리면, 중고차 업체나 정비업체들이 서로 사가겠다고 희망 가격을 제시하고, 인터넷 경매를 통해 낙찰되는 방식입니다.
보도 내용을 보시죠.
◀ 리포트 ▶
울산시내 또 다른 ′침수차 집하장′입니다.
앞유리가 심하게 깨진 차량에는 이미 팔렸다는 글이 써 있습니다.
[보험사 관계자]
″여기는 낙찰 다 끝났는데… 지난주에 오셨어야죠.″
폐차장으로 가야 할 차량들을 보험사가 중고차 업자들에게 팔고 있는 겁니다.
[보험사 관계자]
″낙찰되면 가져가는 거예요. 지금은 60대씩 가져가고, 50대씩 가져가고… (침수차 사러) 경기도, 광주, 전국에서 다 왔어요. 다 (중고차) 업자들이죠.″
침수 차량을 낙찰 받아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고차업자나 정비업자입니다.
[중고차 매매업자]
″(닦아서) 수리만 하면 티 안 나요. 고장도 안 나고… (돈 벌기는) 침수차가 최고예요.″
◀ 앵커 ▶
그렇다면 보험회사들이 경매를 통해 유통시킨 침수차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요?
현장을 취재한 전국부 윤성철 기자와 자세한 내용 알아보겠습니다.
윤 기자, 침수된 차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유통되는지 직접 추적해 봤다고요?
◀ 기자 ▶
그렇습니다.
폐차 요청된 침수차량들이 다른 곳으로 실려가는 현장을 직접 따라가 봤더니, 이들이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고장 난 차를 수리하는 자동차 공업사였습니다.
영상을 보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 리포트 ▶
태풍 차바 상륙 일주일 뒤인 지난 12일, 수백 대의 침수차들을 모아놓은 울산의 한 공터를 찾았는데요.
보험사 경매를 통해 낙찰받은 침수차들을 쉴 새 없이 대형 트레일러나 컨테이너에 실어나르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수도권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곳곳에서 진흙이 잔뜩 묻은 침수차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을 정도였는데요.
100여 대의 침수차를 구입한 경기도 부천의 한 공업사를 찾아가보니 침수차를 통째로 분해해 부품을 햇볕에 말리는 작업이 한창이었습니다.
중고차로 되팔기 위해 쓸만한 부품을 되살리는 건데요.
차량 내부는 여전히 진흙탕 투성이었습니다.
서울의 한 공업사 역시 침수차 수리를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모습이었는데요.
흙탕물 투성이인 자동차 부품을 에어브러시와 칫솔까지 동원해 털어내고 있었습니다.
물에 젖은 흙을 빨리 털어내지 않으면 차량 부품이 빠르게 부식하기 때문인데요.
당초 침수차를 판매한 보험사 측이 고지한 내용보다 차량 상태가 나쁘다며, 불평을 늘어놓고 있었습니다.
자동차 공업사 관계자의 말 들어보시죠.
◀ 자동차 공업사 관계자 ▶
″짜증이 팍 나네요. 보험사에서 ′운행 가능′, ′차 바닥만 살짝 젖음′ 이렇게 올려서 갖고 와서 보니까 욕 나오네요.″
◀ 앵커 ▶
윤 기자, 계속해서 얘기를 나눠볼까요?
자동차 공업사들이 이처럼 침수차에 열을 올리는 건 돈이 되기 때문일 텐데, 침수 차량들이 땜질식 수리를 거친 뒤 중고차로 둔갑해 비싼 값에 팔리고 있다면서요?
◀ 기자 ▶
그렇습니다.
공업사들이 구매한 침수차들은 보통 2~3주 정도 수리 기간을 거쳐 중고차로 판매되는데요.
취재를 해보니 보험사로부터 사들인 가격의 두세 배 값에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중고차 마진율이 5% 수준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폭리 수준인데요.
공업사나 중고차 매매업자들이 태풍 발생 직후 울산이나 부산에 직원들을 급파해 침수차 구매 경쟁을 벌인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마진을 최대한으로 남기기 위해 가급적 침수된 부품을 재활용하고, 부품 세척만 한 뒤 차량을 출고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보험업계에서는 수리했을 경우 비용이 보험료보다 더 많이 드는 경우, ′전손차′라는 용어를 쓰는데요.
침수차를 전손 처리해준 보험사 입장에서는 침수차를 비싸게 팔 수 있으니 전혀 손해 볼 게 없는 겁니다.
완전 침수 차량은 어쩔 수 없이 폐차 결정되지만 바닥이 침수되거나 절반 정도 잠긴 차량은 다실 부활해서 차량으로 분류해 제값을 받고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전손차 매매업체 관계자의 말 들어보시죠.
◀ 전손차 매매업체 관계자 ▶
″완전 침수는 폐차, 바닥은 무조건 다 구제, 중간에 시트까지 찬 것은 구제*폐차 동시 진행. 비율은 구제가 많았고요. 폐차 비중은 수입차는 10%밖에 안 된 것 같아요.″
◀ 앵커 ▶
이렇게 유통된 침수 차량이 안전할 리가 없겠죠.
주행 중 사고 위험성도 높다고 하는데요.
실험 영상으로 확인해보겠습니다.
◀ 리포트 ▶
엔진까지 물에 잠겼던 침수 차량으로 가정해 주행 실험을 해보겠습니다.
차를 타고 10미터를 달리자 계기판의 바늘이 뚝 떨어지고 시동이 그냥 꺼져 버립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엔진 깊숙한 곳이 녹슬어 발생할 수 있는 현상.
전기배선은 일주일이면 부식돼 차량 화재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박병일/자동차 명장]
″자동차에 전자 전기 부품이 40% 이상이 돼요. 시간이 지나면서 녹슬고 부식이 되죠. 그럼 작동을 하지 않죠. 심할 때는 화재가 나기도 합니다.″
◀ 앵커 ▶
모르고 침수됐던 차량을 구입하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는 보통 ′자동차 이력을 조회해보라′고 조언하고는 하죠.
그런데 ′이력 조회′ 역시 무용지물인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이 내용은 유선경 아나운서가 전해드립니다.
◀ 유선경 아나운서 ▶
보험개발원의 ′카 히스토리′ 사이트에 들어가면, 자동차의 사고 이력이나 침수 이력을 조회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고차를 구입하기 전에 반드시 들어가서 차량에 대해 확인해 보는 것이 좋은데요.
문제는, 여기서도 침수 이력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겁니다.
이른바 침수 이력을 ′세탁′하는 게 가능하다는 건데, 애초에 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차량이거나, 보험에 가입돼 있더라도 자비로 수리를 하거나 ′폐차 신청′을 해서 보험 처리되지 않은 경우, 또 이미 ′폐차 처리′가 돼서 번호가 말소된 대포차의 경우는 ′카 히스토리′에서도 침수 이력 조회가 불가능합니다.
이건 사고 차량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요.
보도내용으로 확인해 보시죠.
◀ 리포트 ▶
사고로 앞바퀴에, 엔진까지 망가져 수리 중인 이 수입차는 6천만 원에 중고 매물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보험개발원의 사고 이력에는 ′무사고 차′로 나와 있습니다.
[중고차 매매업자]
″(사고 때) 보험 처리를 안 했으니까… 음주 면책이거나 자차를 가입 안 했으면 보험 처리를 할 수 없죠. 이 정도 사고면 많이 망가진 건 아니에요.″
일부는 폐차장에 넘겨져 번호 말소까지 가기도 하지만 이 경우도 수십만 원이면 다시 살려낼 수 있습니다.
대다수 대포차들이 이런 식입니다.
[폐차장 관계자]
″주행되는 거예요. 쏘나타급은 한 70만 원 정도….″
(시동도 걸리고 다 멀쩡한 거예요?)
″예, 차 상태는 가능한….″
침수나 사고로 손상된 차들이 투명하게 거래되지 않았다가 생기는 위험은 결국, 소비자가 떠안을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현행 자동차 관리법을 개정해 보험사들의 침수차와 전손차 유통 자체를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 앵커 ▶
이번에는 침수 차량인 줄 모르고 구입해서 실제로 피해를 본 소비자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영상 함께 보시죠.
◀ 리포트 ▶
중고차를 구입한 이 모 씨.
최근 정비소에 차를 고치러 가서야 침수 차량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뒤늦게 곳곳에서 부식된 흔적과 진흙 같은 이물질을 발견했지만, 매매업자는 점검업소가 못 찾아낸 탓이라며 환불을 거절했습니다.
[이 모 씨/침수 중고차 피해자]
″나중에 제가 혼자 가서 성능 점검을 다시 받았거든요. 똑같은 정비소에서… 그랬더니 거기서는 침수 의심 차량인데 어떻게 하냐고….″
소비자원은 침수 차량의 경우 전기장치나 에어백 배선 등 안전과 직결되는 고장이 발생할 수 있다며, 시세보다 지나치게 싼 중고차를 살 때는 침수 여부를 의심하라고 조언했습니다.
◀ 앵커 ▶
차량 이력 조회도, 성능 점검 기록부도 믿을 수 없는 우리나라의 중고차 시장을 들여다봤는데요.
이에 대한 우리 시민들의 반응은 어떨까요?
직접 들어봤습니다.
◀ 인터뷰 ▶
[박경호]
″안 그래도 지금 중고차 알아보고 있는데 침수차를 이렇게 새 차로 둔갑해서 판매하면 소비자를 우롱하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어요.″
[원신애]
″판매하시는 분들 말만 믿고 저희가 차를 사게 되는데 그분들이 저희를 이렇게 속이고 한다 그러면 어이가 없는 거죠. ′아, 다음에 차를 살 때는 그냥 새 차를 사는 게 낫겠다′ 이런 생각이 들죠.″
[이용선]
″사기라고 생각을 하고요. 침수 차량이나 미터기 조작이라든지 양심 없는 그런 분들을 볼 때 그런 기사를 보면 많이 화가 나요.″
[이도현]
″소비자가 뭔가를 믿고 구매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라는 게, 침수된 차량이 판매까지 되고 있다라는 건 정말 이젠 더이상 뭘 믿어야 할지 모르는 현실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드네요.″
◀ 앵커 ▶
중고차를 구입할 때 속지 않고 제대로 된 중고차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결국, 소비자가 더 똑똑해지는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침수된 적이 있는 차량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나경철 아나운서가 소개해드리는 내용을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 나경철 아나운서 ▶
침수 차량인지 아닌지 구별하는 첫 번째 방법, 바로 ′안전벨트를 끝까지 당겨보기′ 입니다.
침수 차량이어도 내부를 세차한 뒤 시트까지 교환해 판매할 경우, 구별하기가 쉽지 않은데요.
안전벨트는 속 부분까지 세척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끝까지 당겼을 때 흙탕물 자국이나 곰팡이가 있다면 침수 차량이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연료 주입구의 주유 뚜껑을 열어서 안쪽을 확인해 보는 방법입니다.
역시 흙탕물이나 녹슨 자국이 있다면 침수차일 가능성이 높고요,
차량 내부에 있는 시가잭도 확인해 보셔야 합니다.
시가잭은 열선이 있어, 침수가 되지 않는 이상 녹이 슬 확률이 없기 때문에, 면봉으로 시가잭 안쪽을 훑었을 때 혹시 흙이나 녹이 묻어 나오지는 않는지 잘 살펴보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