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뉴스데스크
엠빅뉴스
14F
정치
사회
국제
경제
연예
스포츠
뉴스투데이
나세웅
[이슈 투데이] '암살' 전지현 실제모델은? 외면받는 여성독립운동가
입력 | 2016-03-0107:31 수정 |2016-03-01 07:38
Your browser doesn't support HTML5 video.
◀ 박재훈 앵커 ▶
영화 ′암살′을 보면 전지현 씨가 열연했던 ′안옥윤′이란 독립운동가가 나옵니다.
독립군들에게 때론 누나 같은 존재기도 한데, 실제 이런 실존 모델이 있었다는 것, 아시나요.
영화는 영화일 뿐, 우리에게 생각나는 여성 독립운동가가 있냐고 물으면. 그렇습니다.
자신 있게 유관순 열사, 한 명 얘기하고 그 다음부터는 떠오르는 사람이 없죠.
당연히 교과서에서도 일제 강점기 때 여성들은 만주로 떠나는 남편이나 아들, 괴롭지만 노자돈 마련하고 격려하며 떠나보내는 그런 역할들이 대부분이죠.
통계에도 나타납니다.
독립유공자 훈.포상 여성이 받은 경우, 1.9%에 불과합니다.
혹시 여성들의 독립운동 활약상, 들은 바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손보림]
″3.1절 하면 대표적으로 계신 분이 유관순 열사다 보니까 다른 이름은 그에 비해서 그렇게 부각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최형지]
″교과서에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본 기억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권기만]
″(과거에는) 여자에 대해 남존여비 사상이 팽배했기 때문에 여자를 좀 홀대하지 않았나...이런 생각이 듭니다. 지금 같으면 절대로 그렇지 않았겠죠.″
[다양한 계층 3.1운동 나섰다]
◀ 박재훈 앵커 ▶
오늘 날이 날이니만큼 97년 전, 3.1운동에 앞장섰던 여성들부터 살펴볼까요.
박창현 아나운서, 유관순 열사 말고도 수십 명 있으셨다면서요.
◀ 박창현 아나운서 ▶
네, 행정자치부가 최근 여성독립운동사 자료 총서를 발간했는데요.
당시의 판결문을 분석했습니다.
판결문에서 다루는 3.1운동 34건에 참여한 여성은 모두 54명인데요.
연령별로는 10대가 27명으로 절반이었고, 20대와 30대는 각각 18명과 6명, 40대는 1명, 50대는 2명이었습니다.
나이를 불문하고 여성들이 참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죠.
직업도 다양한데요.
학생이 26명으로 가장 많고, 교사 9명, 간호사 5명, 개신교 전도사가 3명, 기생도 2명, 교회 총무와 이발업, 재봉업에 종사하는 사람도 각 1명씩 있었습니다.
이처럼 3.1운동은 다양한 계층의 여성들이 참여한 독립운동이었습니다.
[평가 못 받는 여성 독립운동가]
◀ 박재훈 앵커 ▶
1919년이면 사실, 아직도 봉건적인 분위기에 여자가 어딜 나서, 이런 분위기였을텐데.
그만큼 민족적 분노가 상당했다고도 보입니다.
이렇게 많이 계신데, 그동안 평가 작업이 거의 없었어요.
◀ 박창현 아나운서 ▶
국가보훈처에서 훈·포상을 받은 독립유공자는 1만 4천3백29명인데요.
이 중 여성은 1.9%인 272명뿐입니다.
보훈처에서 발굴한 여성 독립운동가 규모가 2천7백47명이니까 훈·포상은 10%만 받은 건데요.
자료가 부족하거나 행적이 확인되지 않아서 제외된 게 대부분입니다.
남성중심의 사회구조로 인해서 여성 독립운동가의 활약이 저평가되기도 했고요.
또,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지원활동이 많아서 기록이 상대적으로 적은 점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의 흔적이나 기록에 대한 관리는 소홀해지고 있는데요.
관련 보도 보시죠.
◀ 리포트 ▶
[2013. 8. 29 뉴스데스크/나세웅]
제주시의 한 공동묘지.
무성한 수풀 속에 주인 잃은 초라한 비석이 서 있습니다.
[하영선/제주구술사연구소장]
″지금 이 묘비만 있는 형편이에요. 정확한 묘소 위치를 찾지 못했어요.″
항일운동가 강평국 여사.
꽃다운 19살 경성여고 시절 3·1 운동에 앞장섰습니다.
의학을 공부하려고 일본에 가서도 항일단체인 근우회 지부 의장을 맡아, 독립자금을 모았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후 경찰에 압송된 뒤 지병으로 서른셋 짧은 생애를 마감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된 기록 발굴도, 독립유공자 등록도 안된 채 잊혀져갑니다.
[심옥주/여성독립운동연구소]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발굴 정책들이 일관적으로 진행되지 않았고...(남성 독립운동가의) 며느리로서, 아내로서만 조명된 부분이 아쉽습니다.″
[여성 독립운동가, 누가 있나? ]
◀ 박재훈 앵커 ▶
네, 그렇다면 이 시간 이후 우리가 ′유관순 누나′처럼 딱 기억하고 기릴 만한 분들 몇 분만 소개해주시죠.
◀ 박창현 아나운서 ▶
남자현 열사는 영화 ′암살′에서 배우 전지현 씨가 연기한 안옥윤의 실제 모델로 알려져 있는데요.
′여자 안중근′, ′독립군의 어머니′ 등으로 불립니다.
평범한 주부였지만 3.1 운동 가담을 계기로 만주로 건너가서 무장 투쟁을 벌였고요.
1933년에 만주국 전권대사인 부토 노부요시를 사살하려다 체포돼 순국하셨습니다.
유관순 열사의 스승인 김란사 선생도 있는데요.
여성이 주도하는 비폭력 독립운동에 매진했습니다.
이화학당 교사로 일하면서 학생 자치단체인 ′이문회′를 이끌면서 민족의 현실과 세계정세를 가르쳤는데요.
이화학당 학생들이 3.1 운동을 주도한 데에는 그녀가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됩니다.
이 외에 또 어떤 여성 독립운동가가 있는지, 관련 보도로 확인하시죠.
◀ 리포트 ▶
[2015. 8. 14 뉴스투데이/조윤미]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MBC 무한도전에 소개된, 안중근 의사가 옥에서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로부터 받은 편지의 한 구절입니다.
부인과 며느리들의 패물을 모아 국채보상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조 여사의 활동이나, 백범 김구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가 배추 잎으로 끼니를 때우며 모은 돈으로 독립군의 총기를 조달한 사실 등도 새롭게 조명되고 있습니다.
당시 14살의 나이로 독립군 첩보요원으로 활동했던 오희옥 지사, 생존하는 4명의 여성 독립운동가 중 한 명인 그 역시, 어머니가 독립운동의 뿌리였다고 말합니다.
[오희옥 지사/여성 독립운동가]
″(처음엔) 어른들 따라서 (독립운동은) 응당히 하는 일인가 보다.″
[독립운동, 여성 관련 사진]
◀ 박재훈 앵커 ▶
영화 ′암살′의 대사입니다.
″우리 잊으면 안 돼.″
무시무시한 일제 무단통치 앞에서 겁 나고 망설이기도 하면서도 끝내 일제에 대한 분노를 참지 못했던 여성들, 오늘의 우리를 잊게 한 밑거름이죠.
<이슈투데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