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월요일이었죠, 12월 3일은 한국 정부가 국제통화기금 IMF로부터 긴급 자금 지원을 받는다는 의향서에 서명한 지 21년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선진국들의 모임′인 OECD에 가입하며 샴페인을 터뜨린 지 1년도 못 돼 닥쳐온 국가 부도 사태에 온 나라의 충격은 더 컸습니다.
당시 상황을 그린 영화 ′국가 부도의 날′이 지금 개봉 9일만에 2백만 관객을 돌파하고 있는데요,
금요일의 오아시스, 오늘은 긴박했던 1997년 IMF 사태를 재조명하고 지금 한국 경제 상황 진단하기 위해 경제평론가 정철진 씨 모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 정철진 경제평론가 ▶
안녕하십니까?
◀ 앵커 ▶
IMF, 참 낯선 영어 명칭인데 온 국민의 머리에 다 각인돼 있습니다. 당시 국가가 부도난다, 이런 건 정말 상상도 못한 일이었는데요,
97년 초부터 이런 경고음들이 경제 곳곳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던 거죠?
◀ 정철진 경제평론가 ▶
그렇습니다. 이런 어떤 재난에는 항상 전조 현상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당시 우리 97년 IMF 외환위기 때도 분명히 전조 현상들이 있습니다.
일단 1996년을 돌아보면은요.
당시 화면에서 잠깐 나왔지만 OECD회원국에 가입이 되면서 선진국에 간다, 간다 했는데 실질적으로 당시 무역을 보면 이미 200억 달러가 넘는 적자를 기록하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뭔가 모순이 나오고 있는 그런 것이고. 당장 1997년 1월에 당시 재계 10위, 14위였던 한보그룹이 부도가 납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뭐냐? 한국 경제가 뭔가 삐걱대고 있다는 걸 시장에서 알려주고 있었는데요.
그 내부를 좀 보면 어마어마한 기업 부채가 역시 핵심이었습니다. 당시에 부채비율 평균이 400% 정도였거든요.
그러니까 자본금의 세 배, 네 배 되는 돈들을 차입을 했었고 많게는 1000%, 한보그룹은 2000%였는데 10배, 20배의 빚을 빌려 있었다.
그렇게 기업들이 방만 경영을 하고 있었고 여기에 대해서 우리의 금융 기관들은 아무런 해지 없이 대비 없이 돈을 주고 있었다라는 것을 일단 볼 수 있고요.
대외적으로는 지금과 좀 유사한데 미국이 빠르게 금리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태국의 외환위기라든가 저쪽에서 어마어마한 재앙의 쓰나미가 오고 있는 신호를 이미 알려주고 있었죠.
◀ 앵커 ▶
그래서 이 당시 이야기를 재구성한 영화가 지금 큰 관심을 받고 있는데 어디까지가 실화냐 이런 궁금증들이 많으신 것 같아요.
그걸 보면 이제 정부 관료들이 당시 사태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하는데, 실제로 당시에 위기 상황에서 갑자기 경제 사령탑이 교체되는 일도 실제로 벌어졌던 거죠?
◀ 정철진 경제평론가 ▶
그렇습니다. 내용은 조금씩 달랐던 거 같아요.
명칭도 조금 바뀌고, 인물의 캐릭터들도 좀 영화답게, 드라마답게 구성을 한 거 같은데. 어쨌거나 당시 상황에서 정말로 나중에 문제도 됐고 지금도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는 부분이 경제 수장의 교체였습니다.
즉 강경식 경제부총리에서 임창열 씨로 바꾸게 된 이 과정이었는데 여기는 아직도 서로간의 이야기도 다른데요. 실질적으로 IMF에 들어가기까지의 모든 업무를 강경식 경제부총리, 전 경제부총리죠, 김인호 경제부수석 둘이 이제 해왔거든요.
이분들이 11월 19일날 전격 교체가 되고 임창열 씨가 새로운 경제부총리로 온 다음에 21일에 IMF 공식으로 들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많이 나오는 이야기가 왜 교체를 했었을까?
◀ 앵커 ▶
그렇죠. 궁금하죠.
◀ 정철진 경제평론가 ▶
그런 분, 왜 YS 김영삼 대통령은 왜 그런 선택을 했었을까라고 하고, 강경식 전 부총리도 계속해서 자기가 끝까지 했었으면... 이런 이야기도 했었었고요.
또하나가 문제가 됐던 게 임창열 전 경제부총리가 부총리를 맡자마자 처음으로 했던 얘기는 IMF는 없다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 앵커 ▶
그래서 영화에서 보면 유아인씨가 이제 속지 않는다고 계속 되뇌는 장면이 나와요.
◀ 정철진 경제평론가 ▶
그렇죠. 그러다가 이제 3일 만에 완전히 바뀌게 되고요.
아직까지 팩트 체크는 필요하지만 그 IMF를 안 간다고 했을 때 실질적으로 IMF가 뒤집어졌다고 하거든요? 그래서 외국 인사들이 한국이 왜 이러냐? 그러면서 오히려 이제 더 긴축을 요구하고 한국 못 믿겠다 이렇게 나왔다라는 주장도 있고. 반면에 임창열 경제부총리는 아니었다, 자기는 원칙대로 했다.. 실질적으로 뭐 정확한 진실이야 후세에서 밝혀지겠지만 왜 그때 경제부총리를 교체했을까 거기에 대해서는 좀 아쉬움이 남는 그런 대목이었습니다.
◀ 앵커 ▶
또 이제 영화의 주요 내용이 당시 경제 위기특별대책반이 꾸려져서 비공개 회의를 통해서 이제 준비를 했다, 이런 내용인데 실제로 이런 비공개 대책반은 있었던 거죠?
◀ 정철진 경제평론가 ▶
기록에도 남아있는데요.
한국은행이 그러면 언제 IMF에 거의 가능성이 높다는 걸 처음 알았을까. 여기에 대해서 여러 가지 보고가 있지만 일단 11월, 그러니까 97년 3월 경에 한 번 위기 관리 관련해서 외환위기 보고서가 일단 있던 것으로 나와요.
그러니까 한국은행은 97년 3월 정도에는 우리가 IMF 구제금융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았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고요.
방금 말씀하셨던 비공식 회의는 그때 아마 한은 재경원 다 모여서 이젠 IMF밖에는 안 되겠다, 해법이 그것밖에 안 되겠다 했고 그다음 날인 11월 8일에 김영삼 대통령한테 이야기를 하면서 김영삼 대통령이 본격적인 경제담화를 얘기하는데.아마도 당시 YS 김영삼 전 대통령 같은 경우에는 경제 쪽에 굉장히 좀 다른 일 때문에 아마 좀 잘 관심이 없었던 거 같아요.
그랬기 때문에 아마도 이런 너무나 촉박한 시기까지도 11월이 다 돼서야 알았다는 거 아닙니까? 그게 후세에 두루두루 안타까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 앵커 ▶
결국 검찰의 수사까지도 이어지는 상황이 됐던 건데.
◀ 정철진 경제평론가 ▶
그렇죠.
◀ 앵커 ▶
그 당시 외환위기가 닥쳐오던 당시에 정부 대처도 문제였지만 또 기업 경영도 지금 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주먹구구식 경영이 많았잖아요?
◀ 정철진 경제평론가 ▶
그렇습니다.
◀ 앵커 ▶
이런 부분들, 예를 들면 아까도 말씀하신 한보그룹, 5조 7천억 원에 달하는 부실 대출이런 부분이 사실 IMF의 시발점이 됐다 이런 이야기도 나오고 있고요.
◀ 정철진 경제평론가 ▶
우리가 1995년, 96년에 너무 좀 들떠있었고요.
당시에 기업들이 대출 받을 때 금리가 한 11%, 10%였어요. 지금은 상상도 못할 고금리였는데 그런 것도 두려움 없이 이렇게 당겨쓸 수 있었던 게 아마 성장에 대한 자신감이었는데 그게 열심히 하면 좋았겠지만 정교하게. 이게 부실로, 방만 경영으로 갔었고요.
그때 당시에 앞서서 잠깐 언급을 했지만 웬만한 비율의 부채 비율이 거의 600%, 700%, 한보는 2000%가 넘었으니까. 이 정도로 빚 경영을 해왔는데 왜 그때 금융 기관들, 은행들은 그런 것들에 대해서 경종을 울리지 못했을까?
◀ 앵커 ▶
그렇죠.
◀ 정철진 경제평론가 ▶
왜 당국, 경제 당국은 이렇게 방만 경영을 하고 빚 경영을 하고 있는데 이걸 체크하지 못했었을까? 여기에 대한 큰 안타까움, 깨달음을 얻었던 그런 순간이기도 합니다.
◀ 앵커 ▶
그리고 이제 영화에 나오는 장면이지만 한보그룹의 본사 사무실이 한보그룹이 소유하고 있던 은마아파트의 상가건물에 있어서 이렇게 한국은행 쪽에서 찾아가서 상당히 놀라는 그런 장면도 나오는데, 그런 식으로 상당히 어떤 주먹구구식 경영 이런 부분도 많았죠?
◀ 정철진 경제평론가 ▶
그렇죠, 주먹구구식 경영. 좀 좋게 생각하면 오너, 창업자의 ′애니멀 스피리트(animal spirit)′라고 하죠.
그 사람의 어떤 하나의 판단, 그 사람이 내리는 결정에 나머지 직원들이 그냥 맹목적으로 따라 가게 되는 그런 경영의 시기가 아니었나, 이렇게 보여집니다.
◀ 앵커 ▶
당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가릴 것 없이 줄줄이 부도가 났고 IMF 구제금융 조건으로 실시된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 즉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평생 직장 개념은 사라지고 대량실직이 닥쳐왔습니다.
최고의 직장으로 꼽혔던 시중 5대 은행들이 모두 간판을 내렸고요. 이 가운데 제일은행은 미국계 회사에게 팔리며 외국계 은행이 됐는데요.
당시 폐쇄를 앞둔 지점 직원들의 마지막 일상을 담은 ′내일을 준비하며′라는 제목의 눈물의 비디오가 많은 사람을 울리기도 했습니다.
직접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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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일은행 희망퇴직자: 옛날 과거의 으뜸은행, 말 그대로 으뜸 은행이란 그 은행을 다시 찾을 수 있으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 제일은행 직원: 다시 일어나려면 우리가 열심히 해야지, 그 방법뿐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남아있는 너희들이라도 열심히해서 우리의 명예를 찾아 달라, 정말 그분들을 선배를 위해서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
● 인터뷰: 제일은행을 사랑합니다. 남은 사람이 뭉쳐서 은행을 다시 살리도록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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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당시 100만 명 넘는 사람들이 갑자기 일자리를 잃었죠. 또 비정규직이라는 개념도 사실상 이때 등장한 건데. 한마디로 IMF 직격탄에 중산층과 서민이 무너졌다, 이렇게 볼 수 있는거죠?
◀ 정철진 경제평론가 ▶
그렇습니다.
이제 당시에 우리나라는 수출 주도형 국가였고요. 어쨌든 기업에 모든 것을 걸고 거기에서 소득이 타고 내려오는 그런 모습이었는데 시기를 돌아보면 1월에 한보가 부도가 납니다. 그다음에 삼미그룹이 부도가 나고요.
삼립식품 부도가 나고 이어서 진로, 기아 마지막 가을에 나게 됐는데. 그 사이에 해태, 나산, 뉴코아..굴지의 그룹들이 다 부도처리가 되니까 거기에 다니던 분들은 다 직장을 잃게 되면서 실업자가 순간적으로 130만 명이 됐고요.
그때 또 하나 특이한 통계를 보니까 보육원에 아이를 맡겼을 때 맡겨진 아이가 30만 명이 순간적으로 넘는, 그만큼 우리의 중산층이 한순간에 무너졌던 참 아픔의 시기였습니다.
◀ 앵커 ▶
그런데 지금 상황과 또 겹쳐지는 부분도 적지 않은 거 같습니다.
소득 양극화라든지 부의 독점, 또 양질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비정규직만 늘어나고. 또 최근에는 여러 경제 지표들도 하향세를 보이고 있는데 외환위기 이후에 지금이 최대 경제 위기다..이런 말도 나오고 있잖아요. 어떻게 보십니까?
◀ 정철진 경제평론가 ▶
일단은 고용난이라는 게 IMF가 거의 하나의 기준점이 됩니다. 즉 1995년, 96년까지만 해도 당시의 대학 졸업생들이 취업이 안 된다는 것들은 좀 생각하기 힘들었었거든요.
◀ 앵커 ▶
그렇죠.
◀ 정철진 경제평론가 ▶
그러다가 이제 97년, 98년에 막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 처음으로 취직이라는 게 안 된다는 취업난이라는 게 시작이 됐고요.
98년부터 시작됐던 이 고용난, 취업난이 지금 이제 20년 가까이 흘러오고 있는 그런 모습이었고. 하여튼 IMF 이후에 우리나라의 산업 구조라든가 금융 구조라든가 많은 것들이 바뀌기는 했지만 조금 아쉬운 것은 그때 우리가 당했던 고용 위기라든가 취업난이라든가 소득 양극화는 좁혀지기는 커녕 오히려 더 벌어지는 이제 그런 것이 안타까운, 아쉬운 부분으로 남습니다.
◀ 앵커 ▶
또 IMF 구제 금융 떠오르면 금 모으기 운동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무려 350만 명의 국민이 모은 금붙이가 220톤, 22억 달러에 달했다고 하는데요.
이런 노력 덕분에 우리나라가 IMF 금융 체제를 3년 정도 조기 졸업하기도 했었는데. 그런데 그때 모인 그 금들이 기업들을 살리는 데 다 쓰였다는 말도 사실인가요?
◀ 정철진 경제평론가 ▶
그렇습니다.
그래서 당시 금 모으기 운동을 의병에도 많이 비유를 하게 되기도 하는데요.
그때 기억 좀 더듬어 보시면 TV 방송을 통해서 하루 종일 아이 꼬마에서부터 어르신들까지 다 집에 있는 금을 가지고 와서 그걸 달러로 바꿔서 이제 우리 부채를 갚게 되는 데 쓰는.
◀ 앵커 ▶
그랬죠.
◀ 정철진 경제평론가 ▶
그래서 실은 우리가 (IMF에) 97년에 들어가는데 2001년에 조기 졸업을 하게 되는 그런 거의 원동력이 되게 된 걸 누구도 부인할 수가 없는데 그럼 그때 당시에 번 돈을 가지고 달러를 어떻게 했느냐? 아마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그때는 기업들 부실이 심각했거든요.
그러니까 기업들의 차익 구조를 메우는데 사용을 한 그런 것이죠. 그래서 지금 요즘 우리 대기업들 사내유보금 수십조, 수백조 쌓아놓고 있다..자기네들이 위기 관리 때문에 투자를 안 한다고 하지만 지금 어쩔 수 없는 선택이겠죠, 기업에서는. 하지만 그때 그 위기를 실은 극복시켜줬던 것은 우리 국민의 힘이 크다는 것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거 같습니다.
◀ 앵커 ▶
우리가 지금 이 시점에 20년 전 IMF 상황을 다시 돌아보고 뭔가 이렇게 찾아야 할 의미가 있다면 뭐라고 보십니까?
◀ 정철진 경제평론가 ▶
일단 IMF 위기를 지금 걱정하기는 조금 여러 가지 부분이 훨씬 좋습니다.
특히 우리가 80개월 연속 수출 흑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어서 IMF 구제금융이라고 가려면 일단 수출이 안 되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수출이 탄탄하고요.
또 하나가 외환 보유고가 4천억 달러가 넘기 때문에 이 두 가지 측면으로 보면 아직까지 그때 위기를 얘기하는 것은 그렇다라고 얘기하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의를 해서 또 우리가 대비를 해서 나쁠 것은 분명히 했다고 생각을 하고요.
특히 이제 외환 보유고 4000억 달러 같은 걸 보면, 가령 미국에 문제가 되고 있는 회사채의 비중이 조금 높다든가 아니면 2008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세계 금융 위기가 나왔을 때 그때도 2000억 달러 넘게 있었거든요.
그래도 순간적으로 국내에 있는 외국계 자금이 빠져나가게 되면 그걸 바로 막을 이 단기자금에 대한 조금 부족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4000억 달러 외환보유고가 있으니까 안심이다, 이런 자세보다는 외환보유고는 탄탄한가. 이런 자세도 필요할 거 같고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통화스와프라든가 이런 것에서 적어도 외환 부분만큼은 탄탄하게 해주는 것이 또 좋지 않을까, 이런 제언도 드립니다.
◀ 앵커 ▶
정경유착과 부실한 국가 경제 위기 관리로 경제 주권을 송두리째 내줬던 IMF 사태. 그로 인한 고통은 결국 중산층과 서민들이 받았고, 또 받고 있다는 걸 지금 뼈아프게 돌아봐야 할 시점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