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데스크홍의표

[집중취재M] 굶어 죽고 맞아 죽고…"국가가 빼앗아간 청춘"

입력 | 2021-01-27 20:49   수정 | 2021-01-27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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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아직까지 진상 규명이 되지 않은 인권 침해 사건들의 진실을 밝힐 마지막 기회라는 높은 기대감과 함께 지난해, 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출범한 지 50일이 되어갑니다.

오늘 집중취재M에서는 지금까지 어떤 진실 규명 신청이 들어왔고, 앞으로의 활동 전망은 어떤지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먼저 그동안 피해를 호소할 곳 조차 찾기 힘들었던 끔찍한 인권 유린 사건의 당사자들을 홍의표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 리포트 ▶

′묘역을 밟지 말라′는 다 헤진 안내문을 보고서야 눈에 들어오는 야트막한 봉분들.

50년 전, 한일영 씨는 해변으로 떠밀려온 친구들을 이 언덕에 묻었습니다.

[한일영/선감학원 피해자]
″섬으로 (시신이) 다 떠밀려와요. 그러면 거기서 주민들이 다 알아요. 애들 죽어서 떠밀렸다고 하면 선감학원, 선감도에서 도망가다가 죽어서…″

하지만 14살 소년은 슬퍼할 겨를조차 없었습니다.

[한일영/선감학원 피해자]
″우리는 슬픔, 그런 거보다는 이제 이따가 밤에 점호시간에 잠자기 전에 (탈출했다고) ′단체 빠따′ 맞고 이런 게 상상이 되는 거죠.″

당시만 해도 육지와 떨어진 섬이었던 경기도 안산 선감도.

여기엔 소년들이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바다를 건너 탈출하고 싶었던 강제수용시설 ′선감학원′이 있었습니다.

1942년 일제 강점기, 부랑아를 감화하겠다며 만들어진 시설은 1982년 군사정권 시절까지 이어졌습니다.

[대한뉴스(1961년)]
″7백여 명의 거리의 천사들을 구해서 불쌍한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해주고 있는데…″

멀쩡히 가족과 집이 있는데도 ′할당량′을 채워야 한다는 명목에 붙잡혀온 한 씨를 포함해 최소 4천 6백여 명의 소년이 강제 노동과 폭력에 던져졌습니다.

[한일영/선감학원 피해자]
″(발가락이) 잘라진 거죠. 동상 걸렸을 때 퉁퉁 붓고 시커매지면서 뼈가 이렇게 나오더라고요.″

저 언덕이 자기 자리가 될까 두려웠지만, 목숨을 걸고 바다를 헤엄쳐 가까스로 생지옥을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서류상 사망자는 20여 명.

그러나 탈출한 8백여 명 중 몇 명이 살아남았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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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너른 벌판이 펼쳐져있는 충남 서산 모월리는 한때 갯벌이었습니다.

[정영철/서산개척단 피해자]
″황금벌판 아니야 지금, 이걸 중장비 하나 없이 삽으로 인력으로 다 했다 이거야.″

어느날 갑자기 아는 이 한 명 없는 낯선 곳으로 끌려온 19살 청년은 맨몸으로 하루 열두시간 넘게 바다를 메우는 일에 내던져졌습니다.

[정영철/서산개척단 피해자]
″내가 무슨 깡패도 아니었고 도둑놈도 아니었고. 고아니까 먹고살아야 하니까 신문팔고 구두닦고…″

부랑아로 낙인찍힌 1천 7백여 명이 ′서산 개척단′으로 끌려와 강제 노역과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렸고 110여 명이 억울하게 눈을 감았습니다.

[정영철/서산개척단 피해자]
″(사망한 사람들은) 영양실조가 최고 많을 테지. 도망가다 잡혀와서 맞아죽는 놈, 일하다가 흙에 묻혀서, 뻘에 묻혀서 죽고…″

생전 처음 보는 남녀를 강제로 결혼시키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대한뉴스(1963년)]
″대한청소년개척단 광장에서 125쌍 합동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밝은 사회를 등진 의지할 곳 없었던 부랑청년들과 윤락의 함정에서 헤매던 불우한 여성들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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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피해자′라고 하소연할 곳도 찾기 어려웠던 사람들.

[한일영/선감학원 피해자]
″′옛날에는 다 그랬지, 재수없으니까 그렇게 당했다′ 이렇게 치부하고 이런 시대였어요, 그때 당시에는.″

10년 만에 다시 문을 연 2기 진실화해위원회에는 50일 만에 1천 3백 건이 넘는 진실규명 신청이 들어왔습니다.

[정영철/서산개척단 피해자]
″내 청춘 억울한 거, 세상에다 알려보고.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게 아니야. 그 세월이, 너무 원통한 거야.″

MBC뉴스 홍의표입니다.

(영상취재: 이지호 / 영상편집: 장예은 / 자료제공: 경기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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