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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영준
[단독][바로간다] 강제징용자의 '처참한 죽음'‥처음 공개되는 구체적 사망경위
입력 | 2022-07-01 20:22 수정 | 2022-07-01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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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
바로간다, 도쿄특파원 현영준입니다.
저는 지금 전범기업 일본제철의 야마구치현 제조소에 나와 있습니다.
야마구치현은 일제시대에 일본군의 군수공장이 대거 몰려있던 곳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불과 5백 미터 거리에 강제징용 조선인들의 유골이 묻혀 있다고 합니다.
제가 직접 가서 확인해보겠습니다.
◀ 리포트 ▶
야마구치현의 불교사찰 신푸쿠지.
이곳에 80년 전 조선인들의 유골이 있습니다.
[스님] ″이름이고요, 주소입니다.″
[기자] ″전북 완주군 구이면.″
충남 보령군, 전북 완주군, 경남 창원군 등 당시 조선에서 끌려온 강제징용자 9명의 유골을 보관해 왔습니다.
주지스님은 더 많은 조선인들의 합장 납골묘가 있는 곳으로 안내합니다.
1945년 8월 미군의 공습으로 떼죽음을 당한 조선인 56명의 유골들입니다.
거둬가는 사람이 없어 이곳에 함께 묻어 뒀던 겁니다.
[가나야마 카규죠/신푸쿠지 주지스님]
″허술하게 방치한 유골 더미였는데 (선대 주지스님이) 어떻게든 깔끔하게 보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야마구치현의 또 다른 절 류우몬지.
이곳 유골함에서도 강제징용 조선인들의 이름이 적힌 쪽지들 나옵니다.
유골은 태극기에 덮여 한국 송환을 앞두고 있습니다.
[요시오카 고쇼/류우몬지 주지스님]
″저희 아버지 대부터 (유골을) 모셔왔기 때문에 아버지도 기뻐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작별하는 것은 매우 아쉽지만…″
조선인 유골함 사이에 유난히 작은 유골함이 눈에 띕니다.
[간다 마사유키/아태평화교류협회]
″이름은 야스모토 테루코. 나이는 2살입니다.″
강제로 끌려온 조선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나 얼마 살지 못한 아이의 유골이었습니다.
[안부수/조선인 유골 송환 시민단체]
″부인들도 같이 채탄작업도 하고 막장에 끌려가고 하다 보니까 아기를 갖게 되면 거의 생존이 불가합니다. 많이 살아봐야 두 살, 세 살.″
유골함과 위패 38기는 어제 충남 천안 ′망향의 동산′으로 송환됐습니다.
일제에 끌려간 지 80여 년 만에 유골로 고국에 돌아온 겁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군수도시였던 히로시마에서 5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이와쿠니시의 한 야산입니다.
이 지하 기지에선 일본군 전투기와 항공 부품들을 만들었는데 이곳에서 적지않은 조선인들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수소문 끝에 만난 전직 공무원은 이곳에서 숨진 조선인들의 명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무라 준겐/이와쿠니시 전직 공무원]
″1944년에서 45년 사이의 짧은 기간에 (이와쿠니시에서) 많은 터널 공사가 강행됐습니다.″
쇼와 20년, 즉 1945년 야마구치현 이와쿠니시의 사망자 명부입니다.
당시 일본 공무원과 장교들이 직접 써서 작성했다는 이 명부엔 한 장, 한 장마다 강제징용 조선인들의 처참한 죽음이 적나라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그동안 어디에도 공개된 적이 없다는 문서입니다.
경남 남해 출신의 조선인은 창씨개명으로 야나가와 가쿠센이라고 적혔습니다.
직업, 해군시설부 징용공원.
사망 원인 ′흉곽복잡골절겸후두부타박열상′.
가슴뼈가 으스러지고 뒷머리는 부딪혀 찢어졌다는 뜻입니다.
황해도 해주 출신 야마모토 류스이.
목과 두 다리가 잘렸고 몸통은 으스러졌습니다.
시미즈 요시히로는 경북 고령에서 끌려왔습니다.
심하게 맞아서 얼굴과 머리를 알아볼 수 없고 대퇴부가 잘렸습니다.
이 명부에 기록돼 있는 조선인 사망자는 100명이 넘습니다.
다음 주엔 일제 치하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를 협의할 민관협의회가 공식 출범합니다.
일본은 강제징용 배상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이미 끝났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습니다.
도쿄에서 MBC 뉴스 현영준입니다.
영상취재: 이장식, 김진호(도쿄) / 영상편집: 유다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