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뉴스백승우

"일하다 한숨 쉬지 마"‥말투·표정까지 통제

입력 | 2025-11-07 12:19   수정 | 2025-11-07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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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SNS를 통해 유명해진 런던베이글뮤지엄에서 일했던 20대 청년의 과로사 의혹이 얼마 전 불거지면서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화려한 브랜드 이미지 뒤에는 ′열정′으로 포장된 청년 노동이 있기 마련인데, 그 이면을 백승우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매장 문을 열자마자 들리는 우렁찬 인사말.

″안녕하세요!″

런던베이글뮤지엄 직원들의 힘찬 목소리 뒤엔 회사의 깐깐한 지침이 있었습니다.

아침 조회 시간마다 모든 지점은 ″주방에서 홀과 같이 인사 선창″, ″한숨 쉬지 않기″, ″부드럽고 즐거운 어투″ 등 직원들의 말투와 표정 하나하나까지 지시했습니다.

[런던베이글뮤지엄 전 직원(음성변조)]
″일이 힘들어 가지고 표정이 좋지 못한 직원 한 분이 계셨는데 본사에서 그 직원 보고 ′저 직원은 조치해라′라고 하고.″

이 빵집이 젊은 세대에게 인기를 끈 주요 비결은 ′나다운 것′을 내세운 브랜드 이미지.

[이효정/런던베이글뮤지엄 창업자(지난 7월 8일, 연합뉴스TV)]
″진짜의 모습을 그대로 그냥 뭔가 투영해서 만들어 낸 매장이기 때문에… 억지로 꾸며낸 것이 아니라는 느낌을 많이 받아주신 것 같아요.″

그러나 실상은 직원들을 마치 기계처럼 통제한 겁니다.

음식이 잘못 전달됐을 때나 케이크 초가 안 나가는 등의 실수들도 CCTV로 해당 직원을 찾아내, 단체 카톡 방에 공개적으로 올렸습니다.

[관계회사 전 직원(음성변조)]
″(케이크에 꽂는) 초 누락이 발생을 했는데 CCTV를 돌려서 냅다 캡처를 해서 그 사람의 이름을 밝히면서‥ 두 번째 이상으로 (경고가) 넘어가면 모든 게 다 시말서거든요.″

앞으로는 혁신을 외치면서, 뒤에서는 노동자들을 미세 관리하며 압박하는 게 요즘 적잖은 회사들의 모습입니다.

60초가 지나면 파란색에서 노란색, 여기서 15초가 더 지나면 노란색이 빨간색으로 바뀌는 결제 단말기 화면.

맥도날드가 주문 120초 만에 햄버거를 내놓기로 내부 지침을 만든 뒤 직원들에게 시각적인 압력을 가하는 겁니다.

지나친 압박감에 오히려 실수나 산재 위험을 높인다는 지적이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나왔습니다.

[김기원/한국맥도날드 대표(지난달 30일, 국회 노동부 국감)]
″고객들의 만족을 위해서 (운영하고 있으나)… (못 지켜도) 페널티(불이익)를 부과하거나 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반면 직원들은 지침을 지키지 못하면 반성문까지 써야 한다고 토로합니다.

혁신을 내세운 기업의 화려한 이미지 뒤에서, 청년 노동자들은 고객 만족을 위해서 표정까지 통제받는 친절의 무게를 버텨야 했습니다.

브랜드의 성공이 이런 희생으로 세워진 거라면, 그 기업은 더 이상 혁신의 상징이 될 수 없을 겁니다.

MBC뉴스 백승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