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9-11 10:54 수정 | 2020-09-11 11:39
″너무나도 꿈꿨던 비행 일을 하면서 매일매일이 저에게는 신나는 하루였습니다.
아직도 강서구에 사는 이유로 하늘 위에 지나가는 비행기를 많이 봅게 됩니다. 머리 위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면 눈물이 나고, 그립고...한 번만 더 비행을 하고 싶은데...너무나 원하고 바라고 기도했는데...
저는 어제 부로 정리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605명.
지난 7일 이스타항공에서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직원들입니다. 지난 3월만 하더라도 1천 6백명을 넘었지만, 이제 남은 사람은 6백명도 되지 않습니다. 불과 몇달 만에 2/3가 직장을 잃은 겁니다.
너무도 평범하게 직장에 다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미 지난 3월부터 월급 한 푼 못 받았고, 그래서 아무리 예상은 했다지만, 실제 이메일로 통보받은 정리해고의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고 말합니다. 왜 ′해고를 살인′이라고 하는지 당해 보기 전엔 몰랐다는 말도 합니다.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항공업계. 이스타항공은 이미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있었던데다, 제주항공과의 인수협상도 어긋나면서,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비극적인 대규모 정리해고가 불가항력적인 외부 요인 때문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요.
이스타항공은 지난 3월 80여명의 수습부기장들의 계약을 해지했습니다. 국제선, 국내선 모두 셧다운하고, 직원들에게 월급 한 푼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을 바탕으로 순환휴직을 하면서 고용을 유지하던 다른 항공사들과는 달랐습니다.
이스타항공은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할 자격이 되지 않습니다. 5억원 가량 고용보험료를 밀렸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얘기하면 밀린 고용보험료만 납부했어도,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5억원... 이스타항공 주장대로 진짜 없어서 못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체불임금만 250억원에 달했던 게 제주항공과의 인수협상에서 큰 걸림돌이 됐던 점을 감안하면, 5억원의 고용보험료 체납의 대가는 너무 컸습니다. 이걸 예상치 못했다면, 매각만 성사되면 끝이라고 생각했다면, 철저히 무능했거나 고용 유지는 처음부터 관심밖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재고용? 지킬 수 없는 약속…</strong>
이스타항공은 국내선에 투입할 6대의 항공기를 운용할 필수인력을 제외하고 모두 정리해고했습니다. 인수에 관심을 갖고 있는 모든 곳에서 구조조정을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정리해고를 하지 않고 그래서 매각이 이뤄지지 못하면, 어차피 한 두달밖에 버티지 못할 형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재고용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 불가피한 선택이란 사측의 주장은, 지금까지 위기에 처한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할 때 밝혔던 문구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반복이었습니다. 상황이 나아지면 우선적으로 재고용하겠다는 것 또한 익숙합니다.
하지만 언제 좋아질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고용유지 노력은 조금도 해오지 않은 회사가, 인수할 쪽에게 재고용 약속을 부탁한다? 안타깝지만 실제 그렇게 요구할 가능성도, 그런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도 제로에 수렴합니다. 그럴 책임이 진작 있었다면, 이런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strong>
지난 9일. 이스타항공은 임시주총을 열고 등기이사 한 명을 교체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상직 의원의 딸인 이수지 씨가 전날 사임했기 때문입니다. 빈 자리는 이상직 의원의 전 보좌관 출신으로 이스타항공 경영본부장을 맡고 있는 김유상 전무가 임명됐습니다.
이씨가 이스타항공 등기이사에서 물러난다는 건 이제 이스타항공 경영과 관련해 책임지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읽힙니다. 하지만 이씨는 여전히 이스타항공 대주주인 이스타홀딩스의 대표입니다. 매각이 성사되면 이익을 남길 수 있는 이스타홀딩스의 지분은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이상직 의원은 김 전무를 대신 내세워 자신의 아들과 딸이 보유한 이스타홀딩스의 이스타항공 지분을 모두 헌납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구체화된 건 전혀 없습니다. 이 의원은 지난 7월말 더불어민주당 전라북도위원장에 단독 입후보하면서 기자들과 만나 일주일 뒤 이스타항공과 관련한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겠다고 했었지만, 여론에 밀려 도당위원장 후보에서 사퇴한 뒤로는 한달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아무 말이 없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최대 규모 정리해고… 씁쓸한 침묵</strong>
6백명이 넘는 대규모 정리해고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단일 기업에서 이뤄진 가장 큰 규모의 인적 구조조정입니다. 일자리를 가장 중시하는 현 정부 들어 가장 큰 규모의 정리해고입니다.
하지만 정부도, 집권 여당도 이상하리만큼 이 문제에 대해 조용합니다. 부실 기업이 퇴출되는 건 시장원리에서 당연할 수 있겠지만, 책임질 사람이 책임지지 않고 있고, 큰 책임이 있는 사람이 바로 집권 여당의 국회의원이란 점에서 이 침묵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습니다.
정리해고가 통보된 날, 이스타항공측에 물었습니다. ″대주주가 사재 출연 등 책임지는 모습을 보일 여지는 없나요?″
답변은 이랬습니다. ″그럴 돈 없습니다. 사재 출연할만한 돈도 없으시고, 그거 출연해봤자 해결될 것도 없습니다.″
이 의원이 최근 새롭게 신고한 재산은 민주당에서 가장 많은 212억원. 아들과 딸이 갖고 있는 이스타홀딩스의 비상장주식 168억원 어치가 추가됐습니다. 이스타항공이 체납한 고용보험료는 5억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