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5-22 11:35 수정 | 2020-05-22 13:23
#. ″모르는 사이 저장?″ ′표창장 파일′의 진실은?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불구속 상태로 받는 두 번째 재판.
시작과 함께 재판부는 앞서 쟁점이 됐던 ′표창장 파일′에 관한 양측 주장부터 짚고 넘어갔습니다.
동양대 강사휴게실 PC에서 발견된 ′표창장 파일′과 ′총장 직인 파일′의 실체가 아직 뚜렷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우선, 검찰은 해당 PC가 사실상 정 교수의 개인용이었다면서 이 파일들이 ′위조 혐의′의 강력한 증거라고 주장하고요.
정 교수 측은 강사 휴게실에서 함께 쓰던 ′공용PC′였다고 맞섰죠.
이에 재판부가 추가 해명을 요구했고, 양측은 입장을 정리해 의견서를 써냈습니다.
그러나 정 교수 측 의견서를 받은 재판부는 아직 해명이 충분치 않다고 본 모양입니다.
또 다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점을 제시했거든요.
그럼 먼저, 정 교수 측 해명의 최신판을 살펴볼까요.
정 교수 측은 ′2012년 2월 모 회사 대표에게 PC 두 대를 받아 방배동 자택에서 가족들이 함께 쓰다가 2016년 12월, 동양대 강사 휴게실에 가져다 놓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인 ′2014년쯤 동양대 컴퓨터에서 업무용 파일들을 백업해 해당 PC로 복사한 적이 있는데, 이 과정에서 문제의 파일들이 섞여 옮겨진 걸로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한마디로 ″모르는 사이에 저장됐다″는 건데요.
정 교수 변호인은 ″(백업했다는) 개략적인 사실관계는 맞지만, 구체적인 건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여기서 나온 재판부의 추가 해명 요구는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5월 21일, 서울중앙지법 정경심 14차 공판 中]
권성수 판사 : ″검찰이 제출한 파일 제목만 봤을 때는 전부 다 개인적으로 사용하던 파일만 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 업무용으로 데이터를 복사했다면 전체 파일 중에 학교에서 쓰는, 업무용으로 보이는 파일이 있는지 확인해보셨나요?″
재판부의 이 같은 질문들에 변호인은 잠시 재판 절차에 대해 항의를 하기도 했는데요.
[5월 21일, 서울중앙지법 정경심 14차 공판 中]
정 교수 변호인 : ″근데, 기본적으로 형사소송이라는 게 검찰이 기소하면 검찰이 입증하면 되는 것이지, 민사소송처럼 계속 주고받고, 번갈아 해명하는 절차가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재판부는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모른다고 하면 객관적인 판단을 저희가 할 것″이라면서 ″이번에 의견을 정리해서 내면 더는 묻지 않겠다″고 답했습니다.
검찰도 이미 한 차례 분석을 마친 이 ′표창장 파일′ 등을 추가로 감정 의뢰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정 교수 변호인 측은 ′이처럼 감정이 또 필요하다는 건, 검찰 역시 문제의 PC와 파일에 관해 아직 충분히 입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앞으로 나올 감정을 수행한 포렌식 전문가가 이번 재판에 중요한 증인으로 소환될 가능성도 있는데요.
과연, 논란의 ′표창장 파일′을 누가 어떻게 이 PC에 저장한 건지 보여주는 물증이 나올 수 있을지.
이것이 정 교수의 표창장 위조 혐의 유무죄를 가를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 ′스펙의 힘′ 어디까지? 증인 놓고 격돌
오전 재판에선 지난번 공판에 이어 조국 전 장관의 딸 조 씨의 고등학교 시절 ′호텔 인턴 확인서′ 진위를 놓고 증인 신문이 이어졌습니다.
이번엔 해당 호텔 회장과 관리 임원이 증인으로 출석했는데요.
이들의 증언은 대체로 검찰에게 유리한 모양새였습니다.
인턴 확인서를 발급한 호텔엔 ′인턴십′ 자체가 없고, 여고생이 실습한 적도 없다는 일치된 증언이 나왔는데요.
정 교수 측은 ′인턴십의 존재를 증인들이 잘 모를 수 있다′며 ′실제 확인서에 찍힌 대표자의 직인은 작고한 전 회장이 직접 찍었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오후에 진행된 증인신문에서 공방은 더 뜨거워졌습니다.
먼저, 조 전 장관의 딸 조 씨가 2013년 응시했던 서울대 의학전문대학원의 입시사정 업무를 총괄했던 신찬수 서울대 의과대학장이 증인으로 나왔습니다.
조 씨는 당시 1차 서류 전형은 통과했지만 2단계 면접에서는 탈락했는데요.
검찰은 정 교수가 조 씨의 자기소개서를 부풀리고, 허위 증빙서류를 제시해 서울대의 입학사정업무를 방해했다고 봤습니다.
때문에 검찰은 1차 전형에서 자소서 등 ′서류 평가′의 비중이 컸다는 점을 부각하는 데 주력했는데요.
이런 전략은 효과적이었고, 실제로 검찰에 유리한 증언이 쏟아졌습니다.
[5월 21일, 서울중앙지법 정경심 14차 공판 中]
검사 : ″1차 합격에 의미를 가지는 것은 대학 성적과 서류심사라 진술하셨죠″
신찬수 학장 : ″사실입니다″
검사 : ″1단계 합격에서 실질적 의미를 가지는 요소 중에서 서류심사는 지원자가 제출하는 자소서 및 증빙서류 보고 판단하죠?″
신찬수 학장 : ″네, 맞습니다″
그런데 신문 도중, 신 학장은 검찰 조사 당시 했던 증언을 뒤집는 말을 작심한 듯 꺼내기도 했습니다.
[5월 21일, 서울중앙지법 정경심 14차 공판 中]
신찬수 학장 : ″사실 진술을 수정하고 싶은 생각을 갖고 법정에 왔습니다. 검찰 조사 당시에는…(조 씨가) 서류 평가에선 유리하지 않았을까 하는 진술을 한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법정에 오기 전에 제가 각 항목별로 이 학생의 점수 순위 계산을 해봤습니다.…조 씨 (서류평가) 성적은 (1차 합격자) 136명 중 108등에 해당하는 성적이었습니다.″
검찰 조사받고 나서 직접 따져봤더니 막상 조 씨가 1단계 서류 전형을 통과한 게 자기소개서 같은 ′스펙′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덕분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당연히 이 같은 증언은 정 교수 쪽에선 반길 만한 것이었겠죠.
다음으로, 2014년 조 씨가 지원해 합격한 부산대 의전원의 입학전문관리위원장이었던 증인 김윤성 교수를 사이에 두고도 양측은 비슷한 공방을 이어갔습니다.
부산대에선 대학총장 이상의 수상 경력만 적어내도록 했기 때문에 동양대 총장 표창장이 합격에 영향을 줬는지가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됐는데요.
검찰은 김 교수에게 ″표창장이 위조됐거나 허위란 걸 알았다면 면접점수 자체가 부여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등의 질문을 이어갔고, 김 교수는 대부분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모든 증언이 검찰에게 유리하게 나오진 않았습니다.
[5월 21일, 서울중앙지법 정경심 14차 공판 中]
검사 : ″수상 표창 실적을 공란으로 제출했다면 그나마 서류평가 점수도 못 받고, 더 낮은 점수를 받았을 걸로 보이는데 어떤가요?″
김윤성 교수 : ″그건 제가 대답하기 곤란합니다. 서류평가는 어쨌든 모든 걸 ′종합 판단′하는 것이지 표창장 1점 플러스 주고, 빼고 하지는 않습니다″
#. 재판부의 의중, ′0.1점 질문′에서 드러났다?
재판부는 과연 이런 신문 과정, 어떻게 지켜봤을까요.
이번 공판에서 재판부 의중을 짐작할 만한 문답을 꼽자면 바로 이 대목일 것 같은데요.
재판부가 증인에게 직접 던진 질문입니다.
[5월 21일, 서울중앙지법 정경심 14차 공판 中]
김선희 판사 : ″합격자와 불합격자 사이에 점수차이가 얼마나 납니까?″
신찬수 학장 : ″…0.1점이 날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김선희 판사 : ″0.1점 가지고도 당락이 좌우되는 건 맞죠?″
신찬수 학장 : ″네, 맞습니다″
……
임정엽 판사 : ″(조 씨가) 결과적으로 1차 전형 통과했잖아요. 만약 허위라는 게 알려지면 그만한 점수는 못 받는 거잖아요. 그럼 한 명은 통과 못했을 거잖아요″
실제로 조 씨의 ′스펙′이 일부라도 허위라면, 그 영향이 아무리 미미했더라도 어떻게든 누군가의 당락이 바뀌었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런 맥락에서, 어쩌면 ′스펙의 영향이 얼마나 컸나′를 놓고 벌인 공방 대부분은 재판부의 판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했을 거란 해석도 가능합니다.
한편, 정 교수 변호인도 재판을 마치고 나와선 ″사실 오늘 재판에서 오간 공방은 ′2차적인, 부차적인 쟁점′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그렇게 치열하게 증인신문을 해놓고, 이건 또 무슨 말일까요?
정 교수가 처음부터 일관되게 ′스펙 부풀리기나 서류 위조는 없었다′고 주장해 왔다는 걸 기억하면 이해가 됩니다.
만약 입시에 제출된 서류가 정 교수 주장대로 모두 ′진짜′라면 자동적으로 입학 사정 업무는 더 따질 필요도 없이 전혀 방해되지 않은 셈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정 교수 입장에선 ′위조 여부′를 가리는 게 1차 쟁점이고, 만약 재판부가 ′서류가 위조됐다′는 판단을 내릴 경우에만 오늘 공방이 중요해진단 거죠.
#. 입시부정 의혹 ′세트 포인트′는 누가 가져갈까
양측 공방을 따라가다 보니 마치 누가 먼저 정해진 점수를 내는가로 승패를 정하는 세트제 경기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양측이 야금야금 유리한 증언을 하나씩 확보하려 분투하는데,
결국은 각 쟁점에서 누구 주장이 조금이라도 더 신빙성이 있었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런 쟁점마다 ′세트 스코어′가 모여, 종국엔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문서 위조′와 ′입시 업무방해′ 혐의의 유무죄가 정해질 겁니다.
오는 28일로 예정된 다음 재판까지 일단, 입시부정 의혹 관련 쟁점은 대체로 일단락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쟁점에서 가장 결정적인 ′세트 포인트′는 과연 어느 쪽이 가져가게 될까요.
현재로선 판이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다고 보긴 어려운 상황입니다.
다음번 공판 이후 앞으로 시작될 ′사모펀드 의혹′이라는 새로운 세트의 복잡한 지형도 꼼꼼히 살펴보고 전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