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곽동건

[조국·정경심 재판 LIVE⑧] "증거위조 교사 입증 안됐다"는 검찰…'산 넘어 산'

입력 | 2020-06-19 16:11   수정 | 2020-06-19 16:19
[정경심 동양대 교수 19차 공판]

#. ″검찰 공소장 고쳐라″ 숙제 내준 재판

6월 18일 열린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19번째 공판엔 조 전 장관의 청문회 준비팀장이었던 김 모 청와대 비서관이 증인으로 나올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김 비서관은 급한 관계부처 회의 때문에 출석이 어렵다는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고, 재판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김 비서관의 불출석 소명이 부족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김 비서관에게 과태료 500만 원 처분을 내렸습니다.

일단 김 비서관은 8월 말 다시 재판정에 부르기로 했지만, 당장 이번 공판에 예정된 오전 일정이 어긋난 상황.

재판부는 막간을 이용해 양측에 몇 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했습니다.

[6월 18일, 정경심 19차 공판 中]
임정엽 재판장 : ″오전에 증인이 안 나와서 시간이 남는데… 그럼 재판부가 준비했던 석명 요구사항 먼저 하죠. … 재판부 석명요구 사항 종합한 것(서면)을 실물화상기에 제시합니다.″

작정한 듯 의문점들을 꼼꼼히 써서 정리까지 한 재판부의 요구사항은 모두 7가지.

이 가운데 대부분은 검찰의 공소장에 드러난 ′빈틈′ 지적에 집중됐습니다.

공소장의 모호한 점들을 제시하면서 다시 고쳐보라는 ′숙제′를 내준 건데요.

그럼 검찰이 7월 6일까지 풀어야 할 숙제가 뭔지, 아주 간단히만 정리해보겠습니다.

먼저 2017년 7월, 정 교수와 동생이 코링크PE의 사모펀드인 ′블루펀드′에 14억 원을 출자하던 당시.

검찰은 출자 현황이 변경됐다는 걸 코링크가 금융당국에 의무 보고하는 과정에서 출자 약정 금액이 100억여 원으로 부풀려지는 등 허위 내용이 들어갔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호인 측은 앞서 출자자일 뿐인 정 교수는 이같은 보고를 할 의무가 없고, 실제로 보고도 코링크 회사에서 했는데 어떻게 정 교수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냐고 강하게 반문한 바 있죠.

재판부도 비슷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검찰 주장대로 정 교수가 허위 보고의 ′공범′이라면 보고 내용을 직접 작성했든지, 아니면 최소한 코링크 측과 언제 어떻게 거짓 보고를 하기로 공모했는지가 드러나야 하는데 공소장엔 그런 내용이 다 빠져 있다는 겁니다.

재판부는 또, 입시 비리 의혹과 관련해서도 같은 사실관계가 조 전 장관 공소장과 정 교수 공소장에 각각 다르게 적힌 ′디테일′까지 상세하게 지적했습니다.
#. ′증거위조, 공동정범은 처벌 못한다′는 역설

여기에다 재판부가 중요한 의문을 표한 또 한가지 지점은 바로 ′증거위조 교사′ 혐의와 관련이 있는데요.

지난해 청문회 준비 과정에서 정 교수가 코링크 관계자들을 시켜 증거를 위조하게 했다는 혐의는 과연 성립하는가.

이번 공판은 재판부의 이 의문점을 풀어가는 과정으로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오후에 증인으로 나온 이상훈 코링크PE 대표를 신문하는 과정에서도 이 쟁점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거든요.

그럼 단어 자체부터 벌써 어려운 ′증거위조 교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형법에는 형사사건 증거를 없애거나, 숨기거나, 혹은 위조한 경우에는 처벌하도록 돼 있습니다.

법조항을 보면 간단히 규정이 돼 있는데요.

[형법 제155조(증거인멸 등과 친족간의 특례)]
①타인의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 은닉, 위조 또는 변조하거나 위조 또는 변조한 증거를 사용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그런데, 여기서 혹시 발견하셨나요?

′타인의 형사사건′이라는 부분 말이죠.

′남의 사건′과 관련한 증거에 손을 댔을 때만 처벌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달리 말하면, 자신의 사건 증거를 스스로 없애거나, 숨기거나, 위조했을 때는 처벌할 수가 없단 겁니다.

범죄를 저질렀다고 굳이 모든 걸 자백해야 할 의무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에게 불리한 증거를 굳이 다 내놓을 의무도 없다고 생각하면 되겠죠.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재판장의 지적을 한 번 살펴봅시다.

[6월 18일, 정경심 19차 공판 中]
임정엽 재판장 : ″피고인(정경심) 또는 조국 씨가 코링크 관계자들에 대한 (증거위조) 교사범에 해당하는지, 공동정범에 해당하는지에 관해 (검찰은) 설명해주기 바랍니다. 교사범이면 처벌하는데, 공동정범이면 처벌이 안 되죠″

′공동정범이면 처벌이 안 된다′고 명시적으로 언급까지 했네요.

검찰은 지난해 8월 청문회 준비 당시 코링크 측이 사모펀드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조 전 장관이나 정 교수가 보고서 내용을 검토해 수정하게 하고, 최종 승인까지 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여기서 재판부의 의문은, 정 교수 부부가 증거 위조에 이정도로 깊이 개입했다는 검찰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위조를 시킨′ 정도가 아니라 ′역할을 나눠 함께 위조한′ 수준이 돼서 ′공동정범′으로 볼 여지도 있다는 겁니다.

앞에 설명드린 것처럼 자기 사건의 증거를 자기가 나서서 위조했을 땐 처벌받지 않기 때문에 검찰 논리가 자가당착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죠.
#. 검찰 ″증거위조 교사 입증 안 된 건 맞다″

그런데 이런 논리적 모순점 이전에, 증거위조 교사 혐의에 관한 재판부의 궁금증은 또 한가지가 더 있습니다.

[6월 18일, 정경심 19차 공판 中]
권성수 판사 : ″증거(위조됐다는 운용보고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만들도록 한 사람이 사전에 피고인 측에서 누가 관여했는지가 안 나타나요.(중략) 검사님 설명대로면 보고서 제출해달라는 건 청문회준비단의 사모펀드 담당자가 직접 코링크에 요청하니까 이걸 만들어서 일단 보내기 전에 피고인과 협의했다고 하는 상황이어서…″

검찰이 위조됐다고 보는 증거는 지난해 8월 21일 만들어져 청문회준비단에 제출된 ′사모펀드 운용보고서′ 단 하나인데요.

재판부가 보기에 검찰 주장을 그대로 인정한다 해도 그 보고서는 청문회준비단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것이지, 정 교수나 조 전 장관이 코링크 측에 만들라고 먼저 시킨 게 아니란 거죠.

그러니까 누가, 언제, 어떻게 위조를 시킨 건지를 정확히 모르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검사는 다소 충격적인 대답을 내놓습니다.

[6월 18일, 정경심 19차 공판 中]
검사 : ″(해당 보고서를) 특정해서 사전에 지시했다는 부분은 수사 과정에서 수사했지만, 명확하게 입증이 안 된 상태인 것은 맞습니다.″

수사를 하면서 구체적인 ′교사′ 행위를 특정해 입증하진 못했다고 인정한 겁니다.

다만, 앞서 코링크에서 언론 해명자료를 정 교수와 의논해 만든 과정 등 전후 맥락을 고려할 때 포괄적인 위조 지시가 있었던 걸로 보여서 기소한 거라고 검찰은 설명했습니다.

재판부는 검찰이 밝힌 이런 논리가 정말 맞는지 재차 확인을 했지만,

아직 정식 의견으로까지는 보지 않겠다며 의견서로 다시 정리해 제출하라고 여지를 남겨뒀습니다.
#. ′블라인드 펀드′란 과연 무엇인가?

또 한가지 근본적인 쟁점은 검찰이 증거 위조라고 보는 펀드 운용보고서의 ′블라인드 펀드′ 관련 문구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입니다.

이해를 위해 문제의 보고서가 어떻게 나온 건지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작년 8월 조 전 장관 일가의 이른바 ′가족펀드′ 의혹이 언론에서 집중 제기되자, 코링크 측은 청문회준비단에 제출하기 위해 2019년 2분기 펀드 운용 보고서를 1차로 작성합니다.

그러나 최초 만들어진 보고서는 조 전 장관에게만 전달됐을 뿐, 왜인지 청문회준비단에는 제출되지 않았던 걸로 보입니다.

이후 청문회 준비단 측이 직접 코링크에 연락해 운용보고서를 보내달라고 요청하는데, 이 때 문제의 두 번째 보고서가 다시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2차로 만든 운용보고서엔 이런 문구가 새롭게 들어갔습니다.

[코링크PE 블루펀드 (2차)운용보고서 中]
″사전에 고지해 드린 바와 같이 본 PEF(사모펀드)의 방침상 투자대상에 대하여 알려드릴 수 없음을 양해 부탁 드립니다″

검찰은 정 교수 측이 ′투자처를 알지 못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런 문구를 사후에 삽입하라고 시켰다고 보고 있는데요.

정 교수 측은 실제로 투자처를 알게된 건 의혹 보도가 쏟아진 이후였다며 ′블라인드 펀드′라는 문구는 사실대로 표현된 것 뿐이라고 맞섭니다.

실제로 오후에 증인으로 나온 코링크PE 대표 이상훈 씨는 지난주 조 전 장관의 5촌 조카 조범동 씨에 이어서 정 교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언을 내놨습니다.

[6월 18일, 정경심 19차 공판 中]
정경심 변호인 : ″(2차 보고서에) 추가된 부분이 허위내용인가요?
코링크 대표 이상훈 씨 : ″내용 자체는 허위가 아닙니다″
(중략)
검사 : ″문구 자체는 허위가 아니라고 하는데, 그 전에 W사라든지, 투자처 알려드릴 수 없다고 사전 고지한 적 있습니까?
코링크 대표 이 모 씨 : ″투자 관련해서는 정 교수에게는 어떤 내용도 전달한 적 없습니다.″

이런 증언을 계속 듣고 있던 재판부는 ′블라인드 펀드′라는 게 정확히 뭘 의미하는 것인지 직접 묻기도 했습니다.

[6월 18일, 정경심 19차 공판 中]
권성수 판사 : ″블라인드 펀드라고 했을 때 알려주지 않아야 할 것이 투자하는 회사 이름인가요, 아니면 결국 음극재 사업 이런 곳에 투자가 된다는 이런 건가요?″
코링크 대표 이상훈 씨 : ″투자대상 기업명을
공개하지 않는 겁니다″
(중략)
권성수 판사 : ″그럼 업체에 대해 알려주지 않으면 음극재에 투자한다는 정도는 알려줘도 되나요?″
코링크 대표 이상훈 씨 : ″네″

블라인드 펀드의 실질적인 정의가 뭔지.

보고서에 넣은 내용이 정말 허위였는지.

그리고 만약 허위라면 그걸 넣도록 정 교수가 실제로 시킨 적이 있는지까지…

재판부가 제기한 의문들만 보면 적어도 ′증거위조 교사′ 혐의에 대해선 검찰이 유죄 입증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이 남은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주 공판에서도 재판부는 문제의 운용보고서 등을 직접 검토·작성한 코링크 이사 2명을 증인으로 부르는데요.

이번 공판에서 나온 쟁점의 연장선에서 더 구체적인 신문이 이어질 예정입니다.

그리고 다음주에는 조 전 장관을 정 교수 재판에 증인으로 부를지 말지 고심중인 재판부의 결론도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