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측 주장을 꼼꼼히 살펴봐야 다음 공판에서 이뤄질 변호인 반박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겠죠.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법정에 프린터 챙겨온 검찰…″30초면 돼″</strong>
앞선 공판에서 변호인과 검찰 양측이 격론을 벌였던 주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정 교수 딸의 ′동양대 표창장′이 과연 어떻게 만들어졌냐, 하는 것입니다.
검찰은 정 교수가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이 표창장을 위조한 뒤 딸의 입시에 사용했다고 주장하고요.
반면 정 교수 측은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발급된 표창장이라는 게 기본적인 입장이죠.
게다가 검찰이 주장하는 위조 과정은 너무 복잡하고, 그대로 따라하려면 전문적인 이미지 편집 등 기술이 필요한데
정 교수는 사실상 이른바 ′컴맹′에 가까워서 이런 방식의 위조가 불가능했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검찰이 확보한 ′동양대 강사휴게실 PC′에선 2013년 6월에 동양대 표창장 위조에 사용된 듯한 여러 흔적과 파일이 발견되기도 했죠.
검찰은 이 PC에서 복원된 파일에서 총장 직인이 담긴 이미지와MS 워드 서식, 한글 서식 등이 시간순으로 생성된 기록까지 확보됐다며 표창장 위조의 강력한 물증이라고 강조해왔습니다.
표창장을 두고 양측 공방이 격화하다보니 재판부 고심도 깊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8월, 재판부는 ′그럼 시연을 한 번 해보면 좋겠다′는 요청을 검찰 측에 하기도 했는데요.
[8월 20일, 정경심 교수 25차 공판 中]
재판장 : ″나중에 기회를 드릴테니까 검찰청에서 실력 좋은 사람을 불러다 만들어보게 해보시죠. 그리고 변호인은 왜 파일이 거기 있는지 설명을 못하고 있어요.″
그러나 재판부의 이런 요청에 당시 검찰은 ″결과물인 파일이 발견된 이상 굳이 만들어볼 필요가 없다. 출력까지 된다는 걸 입증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는데요.
이런 맥락에서 과연 검찰이 제대로된 위조 시연을 할 수 있을 것인가가 이번 재판의 최대 쟁점이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재판부 요청 이후 두 달이 지난 어제 검찰은 정 교수가 집에서 썼다는 HP사의 프린터와 동양대 상장용지를 법정에 준비해와 표창장을 직접 출력했습니다.
이렇게 표창장을 뽑으면서 ″채 30초도 걸리지 않는다″고 강조하기도 했는데요.
다만, 검찰이 시연을 하긴 했는데, 재판부가 요청한 것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전 과정을 입증한 건 아니었고요.
출력 직전의 몇 단계만 간단히 보여줬다는 한계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럼 검찰의 이번 위조 시연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제대로 살펴보기 위해 표창장 위조를 둘러싼 쟁점 몇가지를 먼저 정리해보겠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동양대 표창장′을 둘러싼 세가지 쟁점</strong>
일단 가장 중요한 첫번째 쟁점은, 검찰이 확보한 표창장 위조 관련 물증이 쏟아진 ′강사 휴게실 PC′가 과연 적법한 증거냐 하는 겁니다.
변호인 측은 해당 PC가 동양대 재산이 아니라 정 교수 소유이고, 단지 강사 휴게실에 보관만 해놨을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검찰이 해당 PC를 임의로 제출받은 건 정 교수가 아니라 동양대 조교였죠.
따라서 남의 물건을 엉뚱한 사람한테 제출 받아온 셈이 돼서 위법한 수집이고, 재판에 증거로 쓰여서도 안 된다는 겁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일단 공판 과정에서 증거 내용 등은 살펴보고 선고를 할 때 여러 사정을 종합해서 해당 PC의 증거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따라서 이후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선 현재 검찰이 내놓은 물증의 효력이 모조리 부정될 가능성도 남아있는 셈입니다.
이렇게 ′위법수집 증거′로 판단될 경우엔 이후 설명드릴 쟁점도 전부다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건 당연하겠죠.
만약, 해당 PC가 적법하게 수집된 증거로 고스란히 인정된다면 다른 쟁점들이 또 등장합니다.
그건, 바로 해당 컴퓨터가 검찰 공소장에 적힌 것처럼 2013년 6월에 정 교수의 방배동 자택에 있었던 게 맞느냐는 겁니다.
두번째 쟁점이되겠습니다.
만약 당시 컴퓨터가 정 교수 자택이 아니라 동양대나 제3의 장소에 있었다면, 정 교수가 아닌 다른 인물이 해당 파일들을 만들어냈을 가능성도 있겠죠.
검찰은 IP주소와 MAC주소 등 컴퓨터에서 발견된 흔적들을 바탕으로 방배동에 있었던 게 확실하다고 주장하지만,
이 부분에 대한 변호인 반박도 만만치 않게 준비되고 있는 걸로 알려졌습니다.
이게 바로 다음번 공판에서 변호인 측이 주요하게 내세울 것으로 예상되는 쟁점 중 하나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실제로 검찰이 공소장과 공판 과정에서 제시한 위조 경위를 그대로 따라했을 때 문제의 표창장이 정확히 만들어질 수 있느냐는 겁니다.
앞서 변호인과 검찰이 공방을 벌인 것이 바로 이 세 번째 쟁점에 관한 것이었는데요.
이번에 검찰이 시연한 것도 이 부분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죠.
검찰이 공소를 제기한 표창장 위조 경위를 간략히 살펴보면, 최종 완성까지 걸린 시간은 30여분 정도.
검찰 주장에 따라 간략히 정리한 2013년 6월의 표창장 위조 작업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검찰이 제시한 ′표창장 위조′ 타임라인 요약]</strong>
① 먼저 이미 존재했던 아들의 동양대 상장을
스캔해 이미지 파일로 만듭니다.(16:20)
② 이렇게 스캔된 아들 상장 이미지 파일을
′MS워드′에 삽입합니다.(16:40)
③ ′알캡처′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아들 상장 하단부의 ′동양대학교 총장 최성해(직인)′ 부분만 잘라내 ′총장님 직인.JPG′파일로 저장합니다.(16:46)
④ 한글 프로그램(hwt) 표 서식으로 돼 있는
상장 양식 파일에 딸의 표창장 문구를 써넣고, 앞서 만든 직인 이미지를 붙여넣습니다. 이 과정에서 직인 파일의 비율이 바뀌면서 가로로 살짝 늘어납니다. (16:53)
⑤ 상장 일련번호와 ′최우수봉사상′이라는
명칭을 수정한 뒤 PDF로 저장합니다. (16:58)
⑥ 이 PDF 파일의 기초가 된 수정된 한글 파일을 재차 저장합니다. (16:58)
⑦ 마지막으로 ⑤번 과정에서 만들어진 PDF 파일로 표창장을 출력합니다.(출력기록은 미발견)
그러니까 최소 38분에 걸쳐 요약해도 7단계에 이르는 작업이 모두 이뤄졌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죠.
그런데 변호인 측은 앞서 이 과정에서의 빈틈에 대해 구체적인 의문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바로 ②번과 ③번 사이에 일어났어야 할 일이 한가지 빠져 있다는 건데요.
딸 표창장의 원재료라고 할 수 있는 아들 상장 스캔본을 살펴보면 총장 직인 아래쪽에 노란색 띠가 있습니다.
그런데 ③번 과정에서 저장된 직인 이미지 파일의 가로세로 크기를 원본인 아들 상장 스캔본과 비교해보면 이 노란색 띠가 분명히 들어 있어야 하는데,
실제 저장된 JPG 이미지 파일에는 노란 띠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이죠.
이 과정에서 전문적인 이미지 편집이 반드시 필요한데, 실제로 해당 PC엔 포토샵 등의 이미지 프로그램이 설치돼 있지도 않았고요.
더 나아가 정 교수가 그런 전문적인 편집을 해낼 능력도 없었다는 게 변호인 주장의 핵심입니다.
앞선 공판을 계속 방청하면서 취재진 역시도 이같은 빈틈이 왜 있는 건지,
노란 띠가 어떻게 감쪽같이 사라진 건지 계속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제로 앞선 공판에서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해 전혀 설명을 내놓지 않았고, 변호인의 추궁에도 묵묵부답이었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노란띠의 행방…″MS 워드로도 지울 수 있다″</strong>
이에 따라 검찰은 이번 공판에서 시작부터 끝까지 전 과정을 시연하는 대신에 의문의 ′노란띠 제거′ 작업 시연에 집중했습니다.
일단 MS워드 프로그램에 아들 상장 스캔본 이미지를 넣은 후에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클릭하자 ′지우기′라는 기능이 나타났는데요.
이 ′지우기′를 선택하니 스캔본 이미지 사방으로 조절 막대가 떴고요.
이 조절 막대를 아래쪽에서 위로 끌어올리자 노란색 띠 부분이 잘리면서 직인 하단이 깔끔한 흰 배경으로 바뀌었습니다.
이후에 ′프린트스크린′ 버튼을 누르자 ′알캡처′ 프로그램이 실행됐고,
화면에 떠 있는 아들 상장 하단부의 ′동양대학교 총장 최성해(직인)′만 영역을 지정해 오려낸 뒤 한글 서식에 붙여넣는 걸 보여준 겁니다.
검찰의 시연에 따르면,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 없이 정 교수가 20년 넘게 써왔다는 ′MS워드′의 기본적인 기능만으로 노란띠를 없애는 편집이 가능한겁니다.
이후 이렇게 잘라낸 직인 부분을 붙여넣은 한글 파일을 ′HP프린터′로 동양대 상장 용지 위에 출력했더니 문제 없이 표창장이 완성됐습니다.
앞서 동양대 관계자 증인 신문 과정에서 나온 ′상장 용지가 너무 두꺼워 일반적인 프린터론 용지 걸림 현상이 발생해 출력이 안 된다′는 주장 역시 반박한 겁니다.
검찰은 이렇게 모두 세 장을 뽑아서 한 장은 공판조서에 첨부하고, 한장은 재판부에 제출하고, 변호인 측에도 출력된 표창장을 배부했습니다.
이러면서 ″채 30초도 걸리지 않는다″는 자신만만한 주장을 내놓은 것이죠.
사실 엄밀히 따지면 위조 전과정이 30초면 된다는 게 아니라, 전문적인 이미지 편집도 없이 직인 부분을 오려내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다는 걸 강조한 것으로 봐야할 겁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다음은 ′변호인의 시간′‥반대 시연 예고</strong>
이날 검찰의 서류증거 조사에선 동양대 표창장 외에도 검찰이 ′7대 위조′라는 이름을 붙인 다른 경력 증명서들도 허위거나 위조됐다는 주장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검찰은 다른 서류들도 모두 직인을 오려내 붙이는 똑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졌다거나,
7가지 서류 모두에 주민등록번호가 들어 있다는 점 등을 들어서 한 사람이 같은 수법으로 위조를 한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는데요.
중간에 절차상 지연된 시간도 있었기 때문에 이날 검찰의 서류증거 조사 후반부는 매우 압축적으로 진행됐습니다.
특히 간략하게 언급하고 넘어간 건 바로 사모펀드 의혹에 관한 부분이었는데요.
입시비리와 관련해선 하루 종일 시간을 할애해 의욕적으로 주장을 펼친 검찰이 사모펀드에 대해선 30분 분량 정도로 서류증거 조사를 끝낸 것은 다소 의외였습니다.
다음 공판 기일은 온전히 변호인의 시간입니다.
변호인 측은 이번 공판에서도 검찰 측 서류증거 조사에 중간중간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는데요.
재판이 끝난 뒤에 정 교수 변호인은 취재진들과 만난 자리에서 ″검찰이 법정에서 출력한 표창장을 보면 증거로 확보된 실제 표창장과 다른 모습″이라며 본문과 직인 부분의 진하기 등에 큰 차이가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변호인도 다음번 공판에서 시연을 해보이겠다고 예고했습니다.
검찰이 제시한 타임라인을 그대로 따라갈 경우 실제 표창장과는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거죠.
29일에 이어질 다음번 공판에서 정교수측이 이를 어떻게 입증할 지 다시 한 번 상세하게 전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