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고현승

[World Now] "스가-박지원 면담 내용공개는 총리 관저의 오산"

입력 | 2020-11-12 15:48   수정 | 2020-11-12 16:34
박지원 국정원장이 한국 고위급 인사로는 처음으로 스가 총리를 만났습니다.

일본 언론들은 박 원장이 스가 총리에게 지난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에 이은 새 한일 공동선언을 제안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어제 귀국한 박원장도, 청와대 등 정부 관계자도 제안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스가 총리가 난색을 표했다는 일본 언론보도들과 달리 박 원장은 국내 언론들과의 전화통화에서 스가 총리가 면담에서 3번을 크게 웃을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고, 스가 총리도 (움직일) 여지가 있어보이더라고 말했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면담 내용 공개는 총리 관저의 오산</strong>

하지만 이렇게 면담 내용이 공개된 데 대해 일본 언론에서 비판이 나왔습니다.

마이니치신문은 ′총리와 한국 고관 회담정보 표면화는 관저의 오산′이라는 오늘자 기사에서, ″스가 정권 출범 후 첫 한국 정부 고위 관료의 방문이라 주목을 끌었지만, 관저에는 오산이 있었다″라고 썼습니다.

마이니치에 따르면, 통상 정보 분야에서는 물밑 조정을 꾀하는 경우가 많아 접촉 사실 자체를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가토 관방장관도 정례 회견에서 박 원장의 방문에 관한 기자들의 질문에 ′해외정보기관과의 협력이라는 사무 성격상 코멘트를 삼가겠다′고 답했습니다.

또, 총리 관저도 당초 기자들의 눈에 띄지 않게 박 원장을 뒷문으로 들어오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마이니치는 전했습니다.

특히 긴박한 한일 정세 속에 면담 내용이 공개되면 여론의 비판을 받을 수도 있고, 한국 정부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외무성 관계자의 우려도 전했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그런데…면담 후 기자회견까지</strong>

하지만, 박 원장은 총리 관저 ′정문′으로 들어갔고, 면담 후 기자들과 인터뷰도 가졌습니다.

또 총리 관저와 외무성은 면담 내용을 담은 문서도 배포했습니다.

이에 대해 마이니치는 ′일본 정부 고위관계자는 ″공지된 사실이기 때문에 발표했다″고 털어놨다′고 전했는데 이는 일본 정부가 ′정보 관리를 철저히 하지 못했다′는 책임을 박지원 원장에게 돌린 것이란 뜻으로 해석됩니다.

사실 박 원장의 방일 목적과 누굴 만났는지, 무엇보다 스가 총리를 만날지 여부 등은 공식적으로 공개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 언론에 속속 일정이 공개됐습니다.
특히 박 원장 본인이 스가 총리를 만나고 나온 직후에는 기자들 앞에 스가 총리의 저서 ′정치가의 각오′를 들고 나와 ″총리에게 사인을 받아 개인적으로 영광″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는 ″왜 방문 사실이 사전에 보도되는가″라고 의아해했고, 총리 관저에서는 박 원장이 ′약았다′는 불만을 털어놨다′고 마이니치는 썼습니다.

정보기관장인 박지원 원장이 이례적으로 먼저 공개 행보를 보였기 때문에 일본 정부도 스가 총리와의 회담 내용을 공개했을 뿐이라는 겁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공개행보…누구에게 득일까?</strong>

결과적으로 박 원장이 제안했다는 ′문재인-스가 선언′을 포함해 한국이 일본 측에 다양한 제안을 하며 성의를 보였다는 측면을 한일 양국에 부각시키는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강제징용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한일 기업과 국민이 성금을 내는 이른바 문희상안도 동력을 얻지 못한데 이어 신공동선언, 도쿄올림픽 정상회담 등 박지원 안 역시 현단계로선 일본에 거절당한 모양새가 됐습니다.

심지어 어제 가토 관방장관은 문재인-스가 선언 제안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고 했고 외무성 관계자는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강제동원 배상을 위한 일본 기업의 현금화 문제와 관련해 일본은 ″한국이 해결책을 마련하라″는 입장이고 한국은 ″사법부 판단에 개입할 수 없다″는 게 원칙입니다.

그러나 물밑에서는 -주로 한국의 주도로- 접촉을 이어가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일의원연맹 소속 여야 의원들은 오늘 한일관계 개선을 모색하기 위해 2박 3일의 일정으로 일본으로 떠났습니다.

한일의원연맹 회장인 더불어민주당 김진표 의원 등 7명의 국회의원은 일본 측 파트너인 일한의원연맹과 합동 간사회의 및 만찬을 하며 강제동원 문제 등을 둘러싼 대립으로 악화한 양국 관계 개선 방안을 모색할 예정입니다.

내일 스가 총리와의 면담도 예정돼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일본에서는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다음 주 일본을 방문하는 방향으로 청와대에서 조율이 진행되고 있다고 보도가 나왔습니다.
아사히 신문은 ″서 실장이 일본 기업에 일제 조선인 징용 노동자 배상을 명령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과 관련한 한국 측의 해결안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서 실장의 일본 방문이 성사되면 지난 7월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하는 안보실장에 취임한 이후 첫 방일이 됩니다.

지난달 31일 아사히 신문은 “일본 기업이 우선 배상에 응하면 나중에 한국 정부가 그 금액을 전액 보전한다”는 방안을 비공식적으로 일본 정부에 타진했으나 일본 측이 거부했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청와대는 아사히 신문의 이 두가지 보도모두 부인했습니다.

갈수록 꼬여가는 한일관계를 풀 수 있는 제안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 지..작은 변수조차 찾기 어려운 답답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