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4-05 10:50 수정 | 2021-05-28 09:52
<b style=″font-family:none;″>″관련 보고 받은 적 없다″더니…″정보 보고는 받았다″</b>
국민의힘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가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홍보기획관과 정무수석을 역임할 당시 국정원의 불법 정치관여, 사찰 정보가 담긴 보고서를 받아봤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최근 사찰 피해자들의 청구로 공개된 국정원 사찰 문건에 당시 그의 직함인 ′홍보기획관의 요청′이라고 적혀 있거나, 박 후보 재임 시기 ′정무수석′에 배포했다고 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박 후보는 꾸준히 ″본 적 없다″는 입장을 보였는데, 지난달 31일 민주당 김영춘 후보와의 라디오 토론회에선 말이 미묘하게 바뀌었습니다.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3월 31일 CBS 토론회]
″국정원의 정보보고는 <b style=″font-family:none;″>본 적이 있다.</b> 그런데 불법 사찰된 또는 사찰이라고 느낄 만한 보고서를 본 적이 없다. 도청, 미행 같은 불법적인 수단을 사용해서 사찰을 했다면 그건 정말 잘못된 것이다.″
두 가지 의도가 읽힙니다.
먼저 1) <사찰정보>와 <정보보고>를 구분해 문제의 대상을 한 차례 좁힙니다.
2) 문제가 된다고 본 사찰정보 역시 ′도청 미행과 같은 불법적 수단′을 이용한 것으로 다시 한정해 규정합니다.
국정원은 법에 따라 조직의 명칭과 몇 명이 근무하는지도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정보기관의 특성상 활동의 밀행성을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은 물론 이를 검증해야 할 기자들조차도 ″<정보보고>는 받았다″는 박 후보의 해명이 얼마나 의미 있는 해명인지, 또 어떤 점에서 문제인지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번 기회에 사찰 피해자들의 정보공개 청구와 국정원 관련자의 재판 기록에서 확보한 국정원 문건 원문을 처음으로 공개하고, 국정원의 사찰정보 작성 방식 및 유형을 살펴보겠습니다.
이와 더불어, 박 후보 해명의 신빙성도 따져보겠습니다.
<b style=″font-family:none;″>원문으로 알아보는 국정원 불법 사찰</b>
국정원은 ′사철성 정보′ 또는 직무범위 이탈 정보란 표현으로 과거 정부 시절 국정원이 작성한 불법 문건들을 묶어 부르고 있습니다. 이를 다시 문건의 목적과 작성 주체를 두고 분류하면 최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먼저, 첫째 국정원 국내 정보 파트 정보관들이 생산한 동향 보고 문건들입니다.
현 정부에서 국내 정보 조직을 없애기 전까지 국정원은 대학, 시민사회 단체는 물론 대기업과 정부 부처, 검찰·법원·국회 등 주요 권력 기관을 담당하는 정보관을 두고 있었습니다.
약 200여명의 이들 정보관은 흔히 ′아이오′(I/O, Intelligence Officer)라고 불리며 담당 조직의 동향을 보고서로 작성해 내부 첩보망에 등록합니다.
<b style=″font-family:none;″>1. 국정원 국내 정보 I/O 작성 문건</b>
2011년 국정원 I/O가 보고한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에 대한 동향 보고를 보면 언론사 행사 참석 일정이나 해외 출장 계획 등 일반적인 동정이 세세히 적혀 있습니다.
일반 동정 외에도 학생인권 관련 조례처럼 당시 보수 정부의 가치와는 맞지 않는 정책 추진에 대해서 첩보 보고서를 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일상적인 동향 파악 활동은 ′윗선′ 지시에 따라 손쉽게 ′취약점 발굴′과 이를 활용한 ′공작′으로 전환된다는 겁니다.
실제 위의 학생인권조례 관련 문건에서 국정원은 ″주민발의 청구자가 당시 한겨레 신문 홍세화 편집위원″이라고 보고하며, ″주도인물 범증(범죄증거), 증거자료 수집 및 세(勢)확장 방지를 위해 종북 단체와의 연계 여부″를 면밀히 들여다 보겠다고 했습니다.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정해야할 조례 제정 과정에도 국정원이 훼방을 놓겠다는 취지로 불법성이 명백합니다.
따라서 국정원 보고 내용에 미행 감시와 같은 불법적 수단으로 취득한 정보가 담겨 있느냐는 해당 활동의 불법성을 판별하는 일부분일 뿐입니다.
미행, 감시가 아닌 공개 정보와 지인 탐문, 내부 협조자 구축 등의 방식으로도 충분히 정보기관이 행하지 말아야 할 정치개입과 여론 공작 등의 위법·부당한 행위를 자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b style=″font-family:none;″>동향 파악에서 정치 공작으로 ′선 넘는 국정원′</b>
그 사례를 보여주는 문건입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공영방송을 상대로 벌인 이른바 ′정상화 전략′의 집행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작성한 방송 담당 I/O는 방송사 내부 동향을 전하면서 노동조합 탈퇴 계획인 직원들을 활용해 ″노-노 갈등을 유도″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또한 방송사 단체협약 개정을 앞두고 경영진이 ″협상 초기부터 강경 입장을 고수하다가 적절한 시기에 단협 일방 파기를 선언하도록 유도″하겠다고도 했습니다.
작성자인 권 모 정보관은 이후 ″문제 진행자 교체 협조 결과″, ″연예인 퇴출조치 협조 결과″를 보고했고, 방송사 임원진과 감독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에게 정부 비판적 출연진들을 교체할 것과 내부 제작진의 인사조치를 지속적으로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이 요구는 실제로 집행됐습니다.
일선 국정원 정보관(I/O)은 일상 동정과 동향 파악을 넘어 필요에 따라 직접 ′공작′ 활동을 수행하는 것을 기본 업무로 하고 있는 겁니다.
<b style=″font-family:none;″>공작 계획 담은 청와대 ′정책정보′…사찰은 아니다?</b>
당연히 일선 정보관의 판단만으로 이같은 일이 집행된 것은 아닙니다. 바탕엔 ″MBC 정상화 전략″, ″연예인 퇴출 계획′, ″주요 좌파 연예인 견제방안″ 같은 분석과 전략이 있었습니다.
국정원의 핵심이라는 분석 파트, 국익전략실의 일입니다. 국익전략실은 사회팀, 여론팀 등 분야별로 나눠 일선 정보관이 수집한 첩보를 종합, 분석해 국정원의 활동 방향을 내놓습니다. I/O가 손발이라면 이곳은 머리에 해당합니다.
<b style=″font-family:none;″>2. 국정원 국익전략실 전략 문건</b>
박형준 후보의 청와대 재임 시절 보고 문건을 만든 곳도 이곳입니다. 배포선에 그의 당시 직함인 정무수석과 홍보관리기획관이 적혀 있지만 박 후보는 보고 사실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국익전략실은 청와대가 지시하는 특별요청정보를 취합해 별도로 보고(별보)하는데, 홍보기획관 요청 사항이라는 4대강 반대 단체 관련 문건이 이에 해당합니다.
4대강 사업 관련 문건엔 교수와 기자, 환경단체 회원 등 반대 목소리를 내는 20명에 대한 ′관리 방안′이 담겨 있습니다. 친소 관계를 분석하고 전담관까지 배정했습니다.
<b style=″font-family:none;″>친소 관계 분석하고 사찰 계획까지</b>
단순 정보보고 문건이라고 치부하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친분 인사 간접 관리 라인 구축″, ″비리 적출″처럼 사찰 및 공작 계획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문건이 공개된 뒤 박 후보 역시 요청 사실과 보고 사실을 부인하며 ″청와대에 보고 된 보고서가 아니다. 국정원 보고서다″라고 깎아내렸습니다.
이어 박 후보의 정무수석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 보고 문건들이 MBC 보도로 공개됐습니다. 이건 청와대 기록에 의해 수신하고 파기한 날짜가 확인됐습니다.
내용도 문제입니다.
철도노조 탄압을 위해 노동위원회 구성에 개입하고 공정무역 단체의 광고와 대형 유통업체 공급을 방해하겠다는 불법성 짙은 계획이 써 있습니다. 이를 단순 <정보보고>로 보긴 어렵습니다.
특히 취임 2주년 국정 현안을 보고한 문건에선 이른바 방송사 ′정상화′, 전국공무원노조 불법화 계획을 명확히 담고 있습니다.
앞서 본 것처럼 현장 I/O는 ′정상화 전략′에 담긴 출연진 교체 공작에 투입됐습니다. 전국공무원노조, 전교조 등에 대한 공작 역시 집행됐습니다.
<b style=″font-family:none;″>3.심리전단의 공작 계획, 집행, 사후 보고 문건</b>
당시 청와대 사정을 잘 아는 인사는 국정원 보고에 대해 ″엄청나게 많이 왔다. 대책 부분 찢어서 담당 부서에 넘겨 참고하기도 했다″면서도 ″′찌라시′ 수준이라 크게 신뢰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청와대 보고 문건을 엄중히 봐야 하는 건, ′컨트롤타워′인 국익전략실의 청와대 보고 이후 현장 I/O와 ′심리전단′이 유기적으로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심리전단은 보수단체와 사이버팀을 동원해 갖가지 여론 공작을 전담했습니다.
<b style=″font-family:none;″>상세 해명 없이 ″아니다″ 반복, 책임감 있나</b>
박 후보는 이번 정무수석 문건엔 개개의 내용에 대응하지 않고 ″관련 보고를 받은 적 없다″고만 답했습니다. 사실상 당시 함께 근무한 실무자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태도입니다.
이는 관행과도 어긋납니다.
국정원 보고서는 청와대 연풍문을 통해 친전 형태로 전달됩니다. 국정원 관계자는 ″국정원은 대통령 보좌 기관이기 때문에 수석이 아닌 하급 비서관에게 보고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같은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 후임 정무수석들은 당시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안철수 교수 등 외부 인물을 은밀히 접촉한다″는 동향보고 등 야권 인사들에 대한 보고를 받은 것으로 검찰 조사에서 드러난 바 있습니다.
특히 노조 파괴 공작 등과 관련해 신인수 변호사는 ″10년이 지났지만 피해자들은 아직도 고통받고 있다. 국정원의 사찰과 공작에 의해서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부당하게 해고된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지난해 말 한 토론회에서 박 후보는 ″과거 정권의 <얼룩>이 있다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인정하는 것이 결코 미래를 위해 나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이가 있는 과거 정부의 과오를 이력에 대한 ′얼룩′ 정도로 보는 건 아쉽지만 나름의 책임감을 비친 발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