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5-05 12:39 수정 | 2021-05-05 18:01
<b style=″font-family:none;″><빗발치는 제보 창구된 ′육대전′이 뭐죠?></b>
요즘 우리 군이 정신 없어보입니다.
휴대전화로 ′무장′(?)한 병사들이 SNS를 통해 그동안 참고 인내하던 문제들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보는 코로나 방역 차원에서 휴가 뒤 격리된 병사들에게 제공된 부실한 급식, 또 열악한 격리 환경 문제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샤워를 열흘 동안 금지시키는 등 육군훈련소의 도무지 믿기 힘든 실태도 SNS제보를 통해 알려졌는데요. 이게 다가 아닙니다.
어제는 훈련 중에 다친 병사가 고통을 호소하는데도 꾀병 아니냐며 방치한, 어이없는 피해 사례를 한 병사의 아버지가 이번에도 SNS를 통해 세상에 알렸습니다.
그야말로 제보가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는 상황인데, 대표적인 창구가 바로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라는 페이스북 계정입니다.
병장으로 전역한 김주원씨가 지난 2016년 후배병사들 간의 소통을 도와주고자 만든 계정인데요. 김 씨는 지금 상황을 한 마디로 ′군투′라고 표현했습니다.
″작년과 비교했을 때 제보가 확실히 많아졌는데 저는 이게 군대의 미투 운동이라고 해서 ′군투′ 라고 생각해요. 미투 운동처럼 군대의 전반적인 문제들을 해결을 못한 사람들이 제보를 많이 해 주고 있거든요.″(김주원/육대전 페북 운영자)
그러면서 김 씨는 이런 문제들이 군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굳이 세상에 알려져야만 해결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고도 했습니다.
″이게 처음부터 저를 찾지는 않거든요. 다 군부대 안에서 먼저 처리를 해 달라고 병사들이 보고를 하는데, 그게 잘 처리가 안되는 거죠. 만약 처음부터 부대 안에서 처리가 잘 됐으면 이렇게 사태가 커지지도 않았을텐데..그런 부분이 좀 아쉽죠.″(김주원/육대전 페북 운영자)
<b style=″font-family:none;″><부실 급식, 열악한 시설…군은 그동안 몰랐나?></b>
그런데, 격리 중인 병사들이 부실한 급식이나 열악한 격리 시설 문제를 제기한 건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지난해 2월, 그러니까 벌써 15개월 전에 ′육대전′에 올라온 제보입니다.
비닐로 감싼 식판에 김에 버무린 밥만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반찬이나 국도 따로 없습니다.
당시 이 병사는 ″이상한 폐건물에 격리돼 있다″며 코로나 격리자들이 사용하는 열악한 시설에 대해서도 제보했습니다.
게시물에는 비슷한 상황을 알리는 추가 제보와 개선이 시급하다는 등의 댓글이 무려 5천개 넘게 달렸습니다.
코로나가 처음 확산하던 지난해 초 이미 군대 안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방역 조치들이 시작됐었고, 고통을 호소하는 장병들의 제보가 이미 그 때부터 나오기 시작했던 겁니다.
그렇다면, 군 수뇌부에서는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까요? 당시 ′주먹밥′ 제보가 올라오자 국방부 조사본부 수사관들은 육대전 운영자인 김 씨 집을 불쑥 찾아갔습니다.
″게시물이 올라가고 나서 갑자기 집으로 찾아오셨더라고요. 문을 두드리셔가지고 들어오셔서 ′해당 부대 관련해서 글을 봤는데 이 병사가 누군지 알아야 문제 해결도 해주고 도와줄 수 있다면서 신원을 알려줄 수 있느냐고…″(김주원/육대전 페북 운영자)
부실 급식, 열악한 격리시설과 관련한 대책을 만들겠다며, SNS 계정에 올린 제보자를 찾으러, 그것도 계정 운영자의 집까지 찾아간 겁니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국방부 장관 직속 기관으로, 장관이 당연히 수사의 시작과 끝을 지휘하고 그 결과를 보고받게 돼 있습니다.
당시 김 씨를 찾아간 수사관들도 장관에게 보고할 거란 말을 했다고 합니다.
″서류 같은 걸 보여주셨는데, 결재 라인이 국방부 장관까지 있더라고요. 조사를 해서 이걸 장관한테 보고를 해야한다면서 제보자 신원을 알려 달라고..″(김주원/육대전 페북 운영자)
최소 1년 전에, 군 수뇌부도 일선 부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물론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이미 알고 있었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군은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았고 병사들은 그저 견뎌야 했습니다.
<b style=″font-family:none;″><뒤늦은 대책 마련…″휴대전화 제보 통제 않기로″ 그마나 다행></b>
하지만 코로나19 관련 병사들의 고충과 호소에 군이 응답을 하기 시작한 건 1년이나 더 지난 최근의 일입니다.
지난해 7월부터 일과 후 휴대전화 사용이 전면 허용되면서, ′사진′과 심지어 ′동영상′까지 첨부된 이른바 ′파괴력′있는 제보가 잇따라 올라오기 시작한 겁니다.
김주원 씨 말대로 본격적인 ′군투′가 시작된 겁니다.
그러자 이번 논란의 중심에서 뭇매를 맞은 육군은 발빠르게 움직였습니다.
남영신 육군참모총장은 사안이 하나씩 불거질 때마다 거듭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2일에는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병사들의 눈높이에 맞춰 소통하겠다며 페이스북 계정을 급히 만들었습니다.
제목은 ″육군이 소통합니다″ 아직까지 반응은 싸늘합니다.
″전형적인 보여주기다″, ″헛수고 하지 말라″는 등 부정적인 댓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습니다.
다만 군이 병사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통제′가 아닌 ′적극 활용′ 쪽으로 기조를 잡은 건 그나마 다행스러워 보입니다.
박재민 국방부 차관은 지난 3일 MBC라디오 <표창원의 뉴스하이킥>과의 전화 통화에서 병사들의 SNS 제보와 관련해 이런 입장을 밝혔습니다.
″조속히 문제가 제기돼 해결책을 찾고 있다는 측면에선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스마트폰 사용이나 SNS 제보를 통제하기보단 자유로운 소통을 통해 불편한 점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시스템을 만들겠습니다.″ (박재민 국방부 차관, MBC라디오 <표창원의 뉴스하이킥> 전화 통화 中)
<b style=″font-family:none;″><″혹시 우리 부대?″ 곤혹스런 지휘관들></b>
군 내 제보가 잇따르자 일선 부대 지휘관들은 이른바 ′멘붕′에 빠졌다고 합니다.
′육대전′에 혹시라도 자기 부대 관련 제보가 올라오지 않는지 검색하는 게 일과가 됐다는 겁니다.
″보안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병사들의 감정적 또는 확인되지 않은 거짓 제보가 남발될 경우 군의 명예가 실추되고, 사기 저하도 우려된다″는 군 내부의 우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국방부는 이런 ′역기능′보다 휴대전화 사용을 통한 병사들의 인권 보장이라는 ′순기능′이 더 크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휴대전화가 열린 병영을 만들어가는 도구이자 장병 개개인의 복지와 기본권을 보장하는 도구가 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부승찬 국방부 대변인, 지난4일 정례브리핑)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가 침해당했을 때 ′바로′ 제보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주는 것, 사실 진작에 그랬어야 할 일입니다.
혹시라도 군이 ′군사기밀′, ′보안′을 방패 삼아 병사들의 ′언로′ 차단을 정당화해온 건 아닌지 돌이켜 볼 대목입니다.
″이제 더이상 ′덮고, 지나가면 그만′ 식의 대처로는 병사들 감당이 안된다″, ″군의 고질적인 폐쇄적 문화를 아예 뜯어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군 안팎에서 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