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1-09 13:44 수정 | 2021-01-11 10:45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20년 전 떠난 친엄마…딸이 남긴 재산을 40%나 상속?″…정당한 판결인가 </strong>
2019년 11월 24일, 유명 아이돌 그룹 ′카라′ 출신 가수 구하라 씨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갑작스런 죽음의 충격과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구 씨가 활동하며 모은 재산을 놓고 가족 간의 법적 다툼이 시작됐습니다.
구하라 씨가 9살 때 집을 떠나 이후 구씨 남매를 돌보지 않았던 어머니가 재산을 상속받겠다며 나타난 겁니다.
구 씨의 오빠 구호인 씨 등 유족은 어머니의 상속 자격을 인정할 수 없다며 소송을 냈습니다.
[구호인 씨/구하라 씨 친오빠(MBC 실화탐사대 2020. 4. 1. 방영분)]
″낳아줬다는 이유로 다 부모라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저희를 버리고 친권까지 포기한 사람이 동생이 일궈낸 재산을 가져간다는 게…법이 너무 부당하더라고요.″
오빠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1년 여의 법정 공방 끝에 어머니는 재산을 상속받게 됐습니다.
지난 달 18일, 법원이 어머니가 유산의 40%를 상속받을 수 있다고 판결한 겁니다.
″아버지 홀로 구하라 씨를 키운 특별한 사정은 인정된다″며, 아버지가 조금 더 많은 유산(60%) 을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구 씨의 유족들은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면서도, ″자식을 버린 부모의 상속권을 완전히 상실시키지 못해 안타깝다″고 밝혔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구하라 법′ </strong>
왜 법원은 어린 남매를 버리고 집을 떠났다 20년 만에야 나타난 어머니에게 유산을 상속하라고 판결했을까요? 우리 ′민법′이 그렇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혈족′, 다시 말해 ′피붙이′는 상속인이 되고, 가까울수록 상속 순위에서 앞섭니다.
가족을 살해하거나, 사망한 가족의 유언을 위·변조하는 극단적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상속권은 보장됩니다.
′낳기만 하면 부모인가′, 사람들은 분노했고, 법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이른바 ′구하라 법′이라 불리는 법안들이 쏟아져 나온 것도 그 여파였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먼저 민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첫 ′구하라법′은 20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서 폐기됐지만, 서 의원은 이번 21대 국회 자신의 1호 법안으로 다시 ′구하라법′을 발의했습니다.
부모가 자녀에 대한 부양 의무를 소홀히 했을 경우, 재판을 거치지 않고도 상속인 자격을 박탈하는 내용입니다.
최근 법무부도 비슷한 취지의 개정안을 내놨습니다.
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하거나 학대, 그 밖의 심히 부당한 대우를 했을 때, 법원의 판결에 따라 상속권을 잃을 수 있도록 헀습니다.
서영교 의원의 개정안은 윗사람의 ′양육′ 의무만을 명시했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제대로 부양하지 않는 상황에 대해선 언급이 없습니다.
윗사람이 자녀 등을 왜 제대로 못 돌봤는지 그 개별 사정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양육을 일부러 안 한 건지, 사정이 어려워 못한 건지 따지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는 겁니다.
반면 법무부 개정안은 ′재판′을 통해 좀더 신중하게 상속권 상실 여부를 결정하도록 햇습니다.
또, ′부양의무 위반′ 외에, ′학대나 그 밖의 부당한 대우′를 상속 상실 고려 조건으로 포함해, 소위 ′부모 자격′, ′자식 자격′ 없는 사람들의 상속권에 대해서도 상실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했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상속-부양의무, 대응하는 개념 아냐″ </strong>
이렇게 ′구하라법′으로 민법의 상속 규정을 바꾸면 문제는 해결될까요? 그렇진 않을 것 같습니다.
먼저, 위헌 논란의 소지가 있습니다.
이미 3년 전, 헌법재판소는 부양 여부를 따져 상속권을 결정할 수 없다고 결정한 바 있기 때문입니다.
딸이 5살 되던 해에 남편과 이혼하고, 홀로 25년 넘게 딸을 키워온 A씨.
불의의 사고로 딸이 세상을 떠났는데, 딸을 키우지도 않은 전 남편이 딸의 재산을 상속받는 건 부당하다며, A씨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하지만, 헌재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해서 상속인 지위를 박탈당하는 것은 아니″라며, 전 남편이 상속금 일부를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법정상속인 자격을 못 가진 사람이 누군가를 성실히 부양했다고 해서,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덧붙였습니다.
상속은 키우거나 돌본 대가가 아니거, 피붙이로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갖게 된 권리라는 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시각을 재확인한 겁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상속권, ′상실′보다 ′기여 인정′에 초점을″ </strong>
헌재 결정에도 불구하고 ′구하라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상속에 대한 논란이 가라앉을지 변호사들에게도 물어봤습니다.
일단 앞으로 ′상속권′을 둘러싼 법적 다툼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데는 대체로 공감했습니다.
대체 어느 정도로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상속권을 뺏는다는 건지, 개념과 범위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충분한 판례가 축적될 때까지 최소 몇 년 동안 혼란이 이어질 거란 우려도 있었습니다.
′변호사들 일거리가 늘어나겠다, 변호사들만 좋은 일 시켜주는 것 아니냐′는 회의감 섞인 반응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부양을 소홀히 한 사람의 상속권을 상실시키는 방향보다, 가족을 지극하게 부양한 사람의 기여를 인정하는 쪽으로 법이 운용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왔습니다.
상속인이 여러 명인 경우 각 상속인의 부양 기여도를 재산 분할에 적극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현지현/법무법인 덕수 변호사(2021. 1. 8)]
″기여분에 관해서 법원이 전향적으로 판단을 하게 되면 많은 부분에서 해결될 수 있지 않겠나…″
서영교 의원이 낸 ′구하라법′은 현재 국회 상임위원회에 올라가 있습니다.
또, 법무부도 자체적으로 마련한 ′구하라법′을 곧 국회에 제출할 예정입니다.
키우거나 돌보지 않아도 피붙이라면 당연히 받는 권리로 인식돼 온 상속의 개념, 이제 바꿀 필요가 있는지 우리 사회의 고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