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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처절해 차마 다 쓸 수 없는…10살 서연이의 마지막 석 달

입력 | 2021-06-11 10:05   수정 | 2021-06-11 10:33
지난 8일, 수원지방법원에선 10살 조카를 이른바 ′물고문′해 숨지게 한 이모 부부의 3번째 재판이 열렸습니다.

이날 재판에서는 10살 조카에게 이모 부부가 했던 학대 영상이 공개됐습니다.

검찰이 법정에서 공개한 영상은 13건.

지난 1월 중순부터 아이가 숨진 2월 8일까지 이모 안 모씨의 휴대전화와 집안에 있던 감시카메라에 찍힌 것들입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color:#144db2; font-family:initial;″>2021년 1월 16일 오후 4시쯤</strong>

아이는 옷을 모두 벗은 채 욕실 바닥에 쭈구리고 앉아 빨래를 하고 있습니다.

왼쪽 어깨와 허벅지에는 시퍼런 멍자국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아이가 빨래를 하는 게 늘 있었던 일인 듯 이모 안 씨는 변기 뚜껑을 닫더니 손을 씻고 욕실 나갑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color:#144db2; font-family:initial;″>2021년 1월 17일 오전 7시쯤</strong>

이날도 아이는 옷이 모두 벗겨진 상태.

불이 꺼진 깜깜한 거실에서 양손을 들고 벌을 받고 있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color:#144db2; font-family:initial;″>2021년 1월 20일 낮 1시쯤</strong>

아이가 파란색 대형 비닐봉지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모 안 씨는 아이에게 흰색 비닐봉지 안에 있는 개의 대변을 줍니다.

그리고 소리칩니다.

[안 씨/이모]
″왜 핥아먹어? 그거 아이스크림 아니야. 입에 쏙 넣어. 야, 장난해?″

이어지는 다그침.

[안 씨/이모]
″입에 쏙!″

이모는 조카에게, 아니 인간에게 할 수 없는 일을 시켰고, 겁에 질린 표정의 아이는 더 한 고통을 피하려 지시를 따랐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color:#144db2; font-family:initial;″>2021년 1월 24일 저녁 7시쯤</strong>

이모 안 씨가 또 소리칩니다.

[안 씨/이모]
″야 장난해? 네가 3일 동안 똥 먹겠다며 아니라고? 내가 너한테 그렇게 하라고 시켰니?″

개의 대변을 먹는 아이의 뒤로 안 씨의 친자녀로 추정되는 아동이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 외에도 욕실청소를 시키고, 양 손을 들고 있으라며 고함 치는 장면들도 많았습니다.

아이가 왼쪽 팔을 벌리기 힘들다고 하자 이모는 국민 체조를 시키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죄송하다며 동영상 찍는 걸 멈춰달라고 사정합니다.

영상 속 아이의 엉덩이와 어깨, 허벅지 등 신체 곳곳엔 멍이 들어 있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color:#144db2; font-family:initial;″>2021년 2월 8일 오전 11시쯤</strong>

안 씨가 ″이모부 쪽으로 걸어″라고 이야기하자 이모부 김 모 씨는 손가락질을 하며 욕설을 합니다.

[김 씨 / 이모부]
″아이, XX″

아이는 비틀거리며 방향을 바꾸려다 강아지 울타리가 세워져 있는 거실 바닥에 그대로 고꾸라집니다.

안 씨도 순간 ″어머″라며 놀라는 소리를 냅니다.

넘어지는 순간에도 아이는 뒤를 돌아 이모 안 씨를 쳐다봅니다.

이 영상이 찍힌 후 이모 부부는 아이를 욕실로 데려가 몸을 묶고 욕조에 수차례 머리를 넣는 물고문을 가합니다.

낮 12시 반쯤 이모는 아이가 물에 빠졌다며 119에 신고를 합니다.

아이는 병원으로 옮겼지만 이 영상이 삶의 마지막이었습니다.

영상이 공개되는 동안 방청석은 울음바다가 됐습니다.

일부 방청객은 이모 부부에게 욕을 하고 ″사형을 내려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이모 부부는 재판 내내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앉아있었습니다.

부부 측 변호인도 영상을 본 뒤 ″특별히 할말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color:#144db2; font-family:initial;″>″아이가 죽을 줄 알았을 것″</strong>

아이를 부검한 법의학자 이정빈 교수는 감정서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i>″갑자기 피해자가 엎어지는 것을 보고, 누군가(수사 검사에 의하면 이모라고 함)도 깜짝 놀라 순간적으로 ″어머″하고 소리 지른다.

감정인이 이 장면을 본 순간 떠오른 생각은 <쟤, 저러다 죽지 않나?>였다.

박종철 물고문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은 물고문을 당하면 죽을 수 있다고 알고 있다.

본건 동영상 장면과 박종철 물고문 사건을 겹쳐보면 <비틀비틀 걸어오다 갑자기 개 울타리 안으로 쓰러질 정도로 구타당한 아이가 머리를 물속으로 집어넣었다 뺐다 하는 물고문을 당한다면 진짜 죽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저절로 떠오를 것 같다.″</i>

법의학자는 이모에게 살해의 ′고의성′이 있었다고 판단했습니다.

경찰도 입건 당시 아동학대치사 혐의 대신 ′고의성′이 있다고 보고 살인으로 혐의를 변경했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color:#144db2; font-family:initial;″>합의서 제출한 친모</strong>

아이의 친엄마 역시 방임 혐의로 불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아이의 학대를 알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아이의 친엄마는 지난달 31일 이모 부부와 합의한 뒤 법원에 합의서를 제출했습니다.

가해자 형량을 줄이려는 시도에 아이 친엄마도 동의한 겁니다.

하지만 이 합의서로 이모 부부의 형량이 줄어들지는 미지수입니다.

법조계에서는 이 사건의 중대성과 특수성을 볼 때 재판부가 합의서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게다가 학대 방임혐의를 받고 있는 친모에게도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을 거라는 분석입니다.

친모는 아이의 유족임과 동시에 학대를 방임한 가해자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color:#144db2; font-family:initial;″>너무나 처절해 차마 쓸 수 없는 기사</strong>

재판을 지켜 보는 내내 아이가 겪은 고통이 느껴져 힘들었습니다.

행복한 웃음으로 꽃 피어야 할 10살 아이의 얼굴은 겁에 질린 표정과 피멍으로 가득했습니다.

친모조차 가해자 부부와 합의한 걸 보면 아이에게는 살아생전 자신의 편이라곤 단 한명도 없었을 것만 같았습니다.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을 텐데도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보도를 준비하면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아이가 받은 학대 영상은 보는 것 만으로도 너무 큰 고통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 글도 영상 표현을 최대한 자제해 써야했습니다.

하지만 영상이 너무 끔찍해 어른들이 외면하는 건 세상을 떠난 아이에게 또 한번 상처가 될거라 생각합니다.

다시는 이런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보는 것 만으로, 읽는 것 만으로 고통스러운 이 상황을 어른들은 견뎌낼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홀로 외로웠을 10살 서연이(가명입니다. 그렇게 세상을 떠났는데도 아이의 실명조차 가족들의 반대로 쓸 수 없습니다)를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기를, 서연이를 위해 엄정한 처벌이 이뤄지길 바라며 재판 참관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