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이 사건이 군 인권센터의 폭로에 의해 뒤늦게 주목받기 전까지 군은 가해자들에게 살인죄를 적용해달라는 유가족의 호소를 외면한 채 형량이 훨씬 가벼운 상해치사죄만을 적용했다.
가족들은 이런 군의 행동을 의심했다.
군이 자신들의 부대 관리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일부러 사건을 축소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color:#144db2; font-family:initial;″>[김진모/故 윤승주 일병 매형]
″저희 윤 일병 사건 같은 경우도 30여 일간에 폭행이 있고 나서 폭행에 의해서 사망을 했잖아요. 그러면 그 관리 감독을 했던 사람들이 책임을 져야 돼요. 근데 누가, 누군가가 책임지는 거를 꼴을 못 봐요. 군대에서는.″</strong>
<b style=″font-family:none;″>[군 관계자 30명 고소했지만 모두 불기소]</b>
윤일병 가족은 부실 수사의 책임을 물어 관련자 30여명을 차례로 고소했다.
하지만 군 검찰은 모두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별도의 군 사법체계가 존재하는 대한민국에서 군인을 대상으로 한 수사는 모두 군내 경찰과 검찰이, 1·2심 형사재판 또한 군 판사가 담당한다.
민간의 판단을 받을 방법이 하나 있긴하다.
대법원에 재정신청을 하는 것이다.
재정신청은 검찰이 불기소한 사건을 재판해 달라고 법원에 직접 요청하는 제도이다.
문제는 재정신청이 인용될(받아들여질) 확률이 극히 낮다는 것이다.
해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인용률이 평균 0.3~0.5%에 불과하다.
1000건 중에 3건에서 5건정도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995~997건의 사건은 검찰이 불기소처분하면 그대로 끝이란 말이다.
윤일병 가족들은 민간 법원의 문을 두드렸지만 끝내 좁디좁은 재정신청의 벽을 넘진 못했다.
형사 사법절차로는 더이상 군 관계자의 책임을 물을 방법이 없어진 것이다.
결국 남은 건 하나, 실날같은 희망을 걸고 국가를 상대로 민사 손해배상을 청구해보는 것 뿐이었다.
<b style=″font-family:none;″>[책임을 묻진 못했다. 그러나...]</b>
각오는 했지만 싸움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피고가 대한민국이라 그런지 소송은 매우 더디게 진행됐다.
″지쳐 나가서 떨어지길 기다린 것 같다″는 가족들의 푸념은 괜한 말이 아니었다.
그렇게 4년을 기다려 겨우 손에 쥔 판결문. 재판부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군 수사기관의 판단 등이 현저하게 불합리하고 도저히 합리성을 긍정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한마디로 당시 수사의 책임을 물을 근거가 부족하다는 말이었다.
비록 국가의 책임을 묻는데는 실패했지만 윤일병 사건은 여전히 많은 시사점을 남기고 있다.
무엇보다 이 사건은 군이 수사부터 재판까지 독점하고 있는 군 사법체계가 과연 정당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던져주었다.
군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군은 어떻게 해야할까. 죽은 자식을 되살려 돌려보낼 수는 없어도 최소한 부모가 납득할 수 있는 수사와 재판 결과를 내놔야하지 않을까. 하지만 군은 모든 것을 내부에서 알아서 처리하는 지금의 폐쇄적인 시스템을 고수하며 유족들의 불신만 자초하고 있다.
민사재판만 4년, 앞서 군사재판까지 합쳐 도합 7년을 싸워온 윤일병 가족의 투쟁기가 단지 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