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9-16 15:36 수정 | 2021-09-16 15:55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새마을 성금′ 281억 원 낸 기업가들‥전두환 만찬 초청하고 친서 보내</strong>
청와대에서 양복을 입고 줄지어 있는 사람들과 이들에게 악수를 건네는 전두환 씨. 옆에서는 부인 이순자 씨가 선물 상자를 건넵니다. 환하게 웃으며 전두환이 건배를 청하는 이 자리는 1981년 <새마을 성금 기탁자를 위한 만찬> 입니다.
이미 많이 알려져있듯 신군부 시절 기업들은 ′새마을 성금′ 명목으로 매년 수천만 원을 강제 기부했는데 기부금을 낸 기업가들을 청와대로 불러 치하했던 자리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고물상을 떠돌다 경매회사까지 흘러온 ′김대중 사찰 문서′. MBC는 이 문건을 단독 입수하면서, 영수증 묶음도 함께 확보했습니다. 새마을 성금 명목으로 강제 징수를 당했던 기업들에게 전두환의 청와대가 발행해준 영수증입니다. <새마을성금 출연 투자금융회사 영수증 사본> 제목의 2백 쪽 분량의 이 문건에는 전두환 신군부가 1981년부터 87년까지 7년 동안 한국투자금융협회 소속 회사들로부터 ′새마을 성금′ 명목으로 갈취한 흔적이 차곡차곡 모여 있었습니다.
81년 3월 16일 한국투자금융 7억1천만 원
서울투자금융 7억1천만 원
한양투자금융 7억1천만 원
82년 4월 19일 한국투자금융 5억9천4백만 원
서울투자금융 6억3천9백만 원
한양투자금융 6억3천7백만 원
대한투자금융 6억2천백만 원
82년 9월 3일 한국투자금융 2억3천7백만 원
서울투자금융 2억5천6백만 원
한양투자금융 2억4천7백만 원
대한투자금융 2억4천9백만 원
영수증이 발행된 새마을 성금 액수는 모두 총 281억 6천만 원 가량. 한국투자금융 소속 회사 32곳이 돈을 냈습니다. 7개 회사는 년 동안 매년 6~7억 원씩 성금을 냈습니다. 1981년 강남 은마 아파트 가격이 2천 5백만 원 가량이었다고 하니, 매년 강남 아파트 수십 채 살 수 있는 돈을 상납한 셈입니다. 전두환은 이런 거액을 낸 기업가들을 청와대 만찬에 불러 치하하고 친필 편지까지 써서 보냈는데, 그 편지도 MBC가 함께 입수했습니다.
″문OO 사장 귀하. 귀하께서 새마을운동을 위해 정성어린 성금 1억 5천 7백만 원을 보내주신 데 대하여 치하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새마을운동은 우리 국민 모두가 적극 참여하고 서로 협력해야만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범국민적인 운동으로서 귀하의 참여는 높이 평가될 것이며 그 성금은 값지게 쓰여질 것입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새마을운동의 활성화와 국가발전을 위해 힘써주시기 바라며 귀하의 행운과 번영을 기원합니다. 전두환″
새마을 성금 영수증 발행자는 대통령 비서실, 민정수석 비서관실, 새마을담당 비서관.
당시 ′새마을′이 붙은 각종 사업에 쓴다는 명목으로 청와대가 직접 나서 돈을 걷은 정황이 엿보입니다. 공식적으로 대통령 비서실과 민정수석 비서관실 등이 영수증을 발행한 것으로 미뤄 비공식적인 비자금이라기보다는 ′공적 자금′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회사 사정과 상관 없이 기업들이 각자 일정한 금액을 냈던 것으로 볼 때, 성금 납부 여부나 규모에 대해 기업 스스로 정할 수 없었던 ′강제 징수′였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한홍구/성공회대 교수]
″전두환 정권이 온갖 비자금 같은 것들은 영수증 없이 아마 돈을 갈취했을 겁니다. 이것도 강제징수죠. 강제징수란 게 보니까 금액이 똑같잖아요. 진짜 성금이라면 자기가 정성껏 내다보면 사람마다 회사마다 형편이 당연히 다를수 밖에 없는데 일률적으로 똑같은 금액을 납부했다는 건 지명해서 했다는 것이고. 다만 아마 이건 좀 공적인 성격이 있으니까 회사 비자금이 아니고 정식 공금을 갖고 했기 때문에 영수증 표시를 해줬을 거다 라고 생각‥″</strong>
MBC가 입수한 영수증만 34개 회사 281억 원. ′투자금융′에 속한 회사들만이니, 영수증에 나온 회사들 말고도 다른 기업들까지 합친다면 성금은 280억을 훌쩍 뛰어넘는 규모였을 겁니다. 1988년 한 일간지 지면에는 <전두환 재임 중 청와대에서 접수한 새마을 성금이 총 1천6백여억만 새마을운동중앙본부에 전달하고 나머지 1천 3백여억원은 전두환 전대통령이 지방 새마을 사업 등의 지원자금으로 직접 집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라는 기사도 실렸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영수증은 이 ′새마을 성금′의 극히 일부였던 셈입니다.
이렇게 모은 돈을 전두환은 어디에 썼던 것일까.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전씨 일가 황태자 전경환‥새마을운동자금 비자금으로 활용</strong>
새마을중앙본부 사무총장은 전두환의 막내 동생 전경환입니다. ′전씨 일가의 황태자′라고 불린 전경환은 81년 새마을 운동중앙본부 사무총장에 오른 뒤, 새마을 운동을 철저히 자신의 비자금 조성을 위한 도구로 활용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친형 전두환의 위세를 업고 은행들의 팔을 비틀어 새마을성금을 갈취하던 전경환은 결국 1988년 새마을본부 비리를 수사하던 검찰에 구속됩니다. 당시 검찰이 수사한 성금 규모만 4백 억 이었습니다. MBC가 입수한 금융투자회사 영수증만 280억 원이었던 것으로 미뤄, 당시 갈취한 성금은 밝혀진 것보다 훨씬 컸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MBC가 입수한 또 다른 문서는 <민주정의당 당무보고>. 1981년 1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문서에는 전두환의 친필 서명도 있어 대통령에게까지 올라갔던 보고서가 아닐까 추측됩니다. 목표 의석수와 선거 전략을 제시하면서, 민주정의당이 기호 1번을 차지하면 5-6%가량 더 득표할 수 있다며 등록 순서를 민정당에 유리하게 선거법을 개정하자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국회의원 선거 직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문서에는 당시 민정당의 선거 전략이 매우 세세하게 담겨 있습니다. 전두환의 서한을 보내자든가, 요충지별 전두환 순시를 제안한든가, 그리고 이런 것들이 선거법 위반은 아니라는 분석까지 첨부해놨습니다. 투표를 앞두고 김대중에 대한 견제와 더불어 당시 신군부 정권의 염려가 드러나는 보고서입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한홍구/성공회대 교수]
″그러니까 이제 민정당 입장에서는 그렇게 해서 선거에서 어느 정도 안정 의석을 확보할 수 있고 득표율을 더 많이 올리려면 총재가 여기를 방문해 주시오. 지금 요즘 같은 분위기 특히 노무현 대통령 탄핵 이후 대통령이 선거기간 중 어디 지방 다닌다는거 굉장히 위험한 일 아닙니까.″</strong>
기업과 금융기관들에게서 ′성금′을 갈취한 뒤 뻔뻔하게 영수증까지 써주고, 울며 겨자먹기로 돈을 바친 기업가들에게 ″귀하의 행운과 번영을 기원한다″고 했던 전두환과 신군부 정권. 그 행적이 담긴 보고서를 어제에 이어 <MBC 뉴스데스크>에서 전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