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스트레이트팀

'민식이법' '윤창호법' '김용균법'‥이름이 법이 된 후

입력 | 2021-12-26 21:24   수정 | 2021-12-26 21:24
오늘 저녁 8시 20분에 방송된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가 연말을 맞아 이름이 법이 된 사람들과 남겨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전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더 이상 스쿨존 희생자 없었으면″‥민식이법 그 후</strong>

2019년 가을. 9살 민식이가 한 중학교 앞 도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다 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바로 길 건너편 엄마가 일하는 가게에 가던 길이었다. 사고가 난 곳은 스쿨존이었지만 과속방지턱은커녕 신호등조차 없었다.

민식이 부모는 다른 아이들도 민식이같은 일을 당하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으로 아이들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달라고 호소했다. 여론이 움직였고, 그해 겨울 스쿨존에 과속단속카메라, 신호등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과 스쿨존 교통사고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특정범죄가중처벌법 개정안이 통과됐습니다. 이른바 ′민식이법′이었다.

스트레이트는 ′민식이법′ 통과 후 부모들이 어떻게 지냈는지 되돌아봤다. 법이 통과되자 생각지도 못한 후폭풍이 유가족을 덮쳤다. 민식이법 때문에 스쿨존에서 사고를 내면 무조건 감옥에 간다는 정보가 인터넷을 휩쓸었고, 관련 기사에는 유가족에 대한 악성 댓글이 줄줄이 달리기 시작했다. 유튜브에서 아이들 장난 때문에 교통사고를 낼 뻔했다는 동영상들이 퍼져 나가고 급기야 스쿨존에서 차를 향해 뛰어드는 어린이를 피하며 운전하는 스마트폰 게임까지 나왔다.

스트레이트는 민식이법이 통과된 뒤 실제로 어린이 교통사고가 어떻게 처벌됐는지도 살펴봤다. 지난해 5월 전북 전주에서 발생한 ′민식이법′ 시행 이후 첫 스쿨존 사망사고. ′불법유턴′이라는 과실이 명백했지만, 운전자는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법 시행 1년 동안 ′민식이법′이 적용돼 유죄가 나온 판결은 25건이었는데 그중 실형은 단 1건이었고 14건은 집행유예, 10건은 벌금형이었다.

불기소 처분이나 무죄 판결도 계속 나오고 있었다. 지난 6월 대전지법은 스쿨존에서 7살 아이를 치어 다치게 한 60대 남성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블랙박스를 분석한 결과 아이가 차도로 뛰어나와 부딪히기까지 0.6초 정도 걸렸다″며 ″아무리 빨리 멈춰도 사고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스쿨존에서 사고를 내면 민식이법때문에 무조건 감옥에 간다는 정보는 거짓 정보였던 것이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위헌이 된 ′윤창호법′‥음주운전 경각심 줄어들까 우려</strong>

음주운전으로 목숨을 잃은 청년의 이름이 담긴 법안도 있다. 바로 ′윤창호법′이다.

2018년, 군대 전역을 넉 달 남기고 휴가를 나온 22살 청년 윤창호 씨는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중상을 입었다. 40여 일을 중환자실에서 견디다 결국 눈을 감았다.

창호 씨가 중환자실에서 사투를 벌이는 동안 친구들은 창호 씨를 헛되이 보내지 않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리고 국회의원들도 직접 찾아다녔다.

친구들의 행동 덕분에 음주운전 단속 기준이 혈중알코올농도 0.03%로 강화되고, 상습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이 마련됐다.

′윤창호 법′ 시행 직후인 2019년, 음주운전사고는 15,700여 건으로 반짝 감소했다. 그러나 지난해 17,200여 건으로 다시 늘어났다. 음주운전을 하다가 두 번 이상 걸린 사람 비율도 43.7%에서 45%로 오히려 증가했다.

여기에 최근에는 헌법재판소도 ′윤창호 법′의 조항 일부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음주운전을 두 번 이상 하면 가중처벌하는 조항이 시간적 제약도 두지 않고 있어 과한 처벌이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음주운전으로 적발되고 10년 이상 흐른 뒤 다시 음주운전을 한 경우까지 가중처벌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취지였다.

윤창호 씨가 세상을 떠난 지 3년, 부모님은 아직 아들이 휴가 때 신고 나온 전투화를 치우지 못하고 있었다. 친구들은 음주운전을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윤창호법′의 취지가 잊히는 것 아닐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후속 입법을 기다리고 있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3년의 싸움‥현장에 남아있는 또다른 ′김용균′들</strong>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한 ′김용균 법′ 이후 현장은 어땠을까?

스트레이트는 부산복합화력발전소 하청 노동자인 이승주 씨를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이 씨는 지난 8월 배관 밸브를 수리하다 염산가스에 노출됐다. 원청회사 직원들이 밸브 라인을 염산으로 세척하고, 이 사실을 이 씨에게는 알려주지 않은 탓이었다.

그는 위험한 현장, 불합리한 관행을 고치는 길은 극단적인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3층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허리와 다리를 심하게 다쳐 현재 병원에서 치료 중이었다.

발전소 측은 처음엔 이 씨가 작업지시 없이 단독으로 작업한 것이라고 책임을 떠넘기다가 뒤늦게 유감을 표시했다.

스트레이트는 ′김용균법′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도급을 금지하거나 승인을 받고 도급을 줘야 하는 일의 종류와 범위가 노동계 요구보다 크게 축소됐다고 보도했다. 용균 씨가 사고를 당한 화력 발전소 현장마저 도급 금지 업종에서 빠져버리게 됐다.

김용균 씨 사고 이후 원청 발전회사는 닷새 만에 사과문을 냈다. 하지만 사고 발생 2년 1개월 뒤인 올해 1월에야 시작된 공판에서 발전회사 관계자들은 ″김용균 씨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했다, 거길 왜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위험한 일을 지시한 적이 없다.′고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1년에 9백 명, 매일 3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일터에서 목숨을 잃고 있었다. 지난 10년 동안 발전소 5곳에서 숨진 33명 가운데 32명은 하청 노동자였다.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스트레이트에 “현장이 안전해졌으면 좋겠다. 자식이 죽는다는 건 끔찍한 일이고 그런 일을 경험하기 전에 다들 막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이름이 법이 될 때</strong>

시민의 적극적인 요구로 이름이 법이 되는 사례는 2천 년대 이후 생기기 시작했다. 스트레이트는 우리 사회가 이미 제출된 법안을 외면하다가 안타까운 죽음이 조명받고 여론이 들끓으면 일단 만들고 보자는 식으로 법이 만들어지는 일이 반복됐다고 지적했다.

스트레이트는 ″피해자의 이름이 담긴 법안을 만드는 것이 그들을 기억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여겼는지 모른다″며, ″또 다른 이름이 법이 되는 안타까운 순간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사회 곳곳을 꼼꼼히 살피는 것도 우리가 김민식, 윤창호, 김용균을 기억하는 방법″이라고 방송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