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김주만

청와대 진짜 주인은 따로 있었네?

입력 | 2022-06-01 08:05   수정 | 2022-06-01 08:05
청와대의 법률적 주인은 누구일까요?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으로 옮겨졌으니, 청와대의 주인도 바뀔까요?

청와대 건물의 등기부 등본을 떼어봤습니다. 일반적으로 국가 재산은 기재부가 관리합니다. 하지만 실질적인 점유나 활용을 하는 ‘관리’는 외교부나 국방부처럼 각 행정부처가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등기부 등본에 나온 청와대의 법적인 주인, 즉 소유자는 ′국′(대한민국)입니다. 다만 다른 국유 건물과 다르게 청와대는 관리청이 따로 없습니다. 대한민국이 청와대의 ′소유자′이자 ′관리청′인 셈입니다. 이는 청와대가 명실상부하게 국가를 대표하고, 이곳이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 심장부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국가=청와대=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이런 구조는 ‘짐이 곧 국가’라는 절대왕정의 논리가 숨어있는 듯 합니다.
대통령도 청와대의 ′진짜 주인′은 아닙니다. 대통령은 잘해야 ′5년 살이′고, 이마저도 제대로 못 채우는 경우를 우린 봤습니다. 무사히 임기를 마쳐도 시간이 되면 ′도망치듯′ 방을 빼야 합니다. 청와대를 채웠던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된 정치권 인사), ′늘공′(청와대 파견 공무원)은 선거에 따라 바뀌지만, 정권이 바뀌어도 청와대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통령 경호실입니다.

<b style=″font-family:none;″>대경빌라를 아시나요?</b>

청와대는 거대한 요새 같습니다. 청와대 전면을 볼 수 있는 정문 앞 도로는 주정차가 금지돼 있고, 대부분의 청와대 주변은 철책과 두터운 숲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인들도 조금만 세심하게 청와대 주변의 숲을 바라보면 곳곳에 설치된 감시 초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초소 안에는 총을 들고 있는 경비병들이 있습니다. 군에서 파견된 군헌병 대대나 경찰 조직인 101경비단 소속입니다. 최근 101경비단에서 실탄 6발을 분실했다는 MBC특종보도가 있었습니다. 최고 권력이라고 하지만 과하다 싶은 현재 청와대의 삼엄한 경비 모습은 ′박정희 목따러 왔다′는 북한 김신조 무장대의 청와대 습격사건 이후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 시대의 ′우상′이나 ′신격화′가 당사자 보다는 우상이 필요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듯 과도한 대통령 경호는 오히려 당사자보다 그 과도함이 필요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청와대를 둘러싼 도로와 철책, 숲이 아니라 특이하게 청와대와 담을 하나 두고 있는 집들이 있습니다. 3층 높이의 작은 규모로 건물 몇 동이 청와대와 담을 맞대고 있고, 과거 중앙정보부의 안가가 있던 청와대 인근의 주택가에도 같은 이름의 빌라가 산재해 있지요. 바로 ′대경빌라′입니다.

′대경빌라′는 ′대통령 경호실′의 첫 글자를 따서 이름 붙여졌습니다. 빌라 입구에는 초소가 설치돼 있지만, 다닥다닥 붙어있는 일반 주택과 달리 북악산이 보이는 곳에 한적하게 지어져 있고, 외부인의 접근도 드물다 보니 마치 잘 꾸며놓은 숲속의 빌라촌 같습니다. 꽃이 예쁘게 핀 입구 때문에 가끔 북악산 자락과 연결된 산책로로 착각한 등산객들이 무심코 들어가는 경우가 있어, 관리인이 뛰어나와 길을 다시 안내하곤 합니다. 이들 빌라의 등기부등본을 떼 보면 대경빌라의 주인은 ′국′, 실질적으로는 대통령 경호실이 관리하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몇 년 전 청와대에 근무했던 한 ′어공′의 초대를 받고 대경빌라에 간 적 있습니다. 청와대와 바로 담을 두고 있다보니 호기심에 청와대를 향한 창문을 열면 바로 초소 경비병과 눈이 마주치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럴 때면 경비병이 로봇처럼 나지막하게 말합니다. ″문 닫으십시오.″

<b style=″font-family:none;″>대경빌라에는 누가 들어가나?</b>

대경빌라는 그 이름과 달리 경호실 소속 인원만 입주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부 기준이 있다고는 하지만, 말 그대로 내부 규정이지, 사실상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입주대상자를 결정합니다. 이 때문에 ′대경빌라′는 ′권력투쟁의 전리품′이자 가장 역동적으로 정권 교체 상황을 실감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원칙대로 하자면 입주 대상자는 큰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청와대에 최대한 빨리 가야하는 사람들입니다. 대통령 경호실 직원, 또 국정상황실이나 부속실 직원들이 입주대상자에 자주 포함되지만, 대통령의 의상이나 분장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과거 정부에서 입주한 사람이 ‘이사 갈 집을 아직 구하지 못 했다’며 방을 빼지 않아, 신구 권력의 황당한 동거가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전리품’이 된 대경빌라의 ‘웃픈’ 에피소드입니다. 몇 년 전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김의겸 의원이 흑석동 재개발 지역에 25억원 상당의 상가를 구매해 논란이 된 적 있습니다. 당시 김 대변인은 은행 대출에 거주하던 집의 전세금까지 빼서 투자하는 이른바 ′영끌′을 했습니다. 이런 베팅은 김 대변인이 대경빌라에 입주하면서 전세금 재테크가 가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치솟는 월세나 전세보증금을 걱정해야하는 시대에 관리비만 내고 최대 5년간 살 수 있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큰 혜택입니다.

<b style=″font-family:none;″>청와대는 국민품으로 대경빌라는 누구 품으로?</b>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겼습니다. 여러 논란과 추측이 많지만, 권위주의 상징이기도 했던 청와대를 일반에 개방 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평가합니다. 그럼 대경빌라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경빌라는 새로운 기준에 따라 새로운 세입자를 맞게 됩니다. 과거 대통령 집무실이 청와대에 있을 때에는 대경빌라에 입주하는 사람들에게 이유가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휴전선을 뚫고 서울까지 들어올 수 있는 또 다른 ′김신조 습격′에 대비해 대경빌라에 입주해야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대통령의 새벽 호출에 대비해 청와대에서 가장 가까운 대경빌라에 대기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긴박한 대통령의 분장이나 의상 준비를 위해서, 언제 있을지 모를 긴급 기자회견을 대비해 대경빌라에 입주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납득은 안되지만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대경빌라를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에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숙소로 사용할 외교부장관 공관의 공사가 마무리 될 때까지 서초동 자택에 머물다보니, 지금은 대통령 경호실 직원들이 민간 아파트의 정문을 지키고 있는 상황입니다.
<b style=″font-family:none;″> ′권력투쟁의 전리품’ 어디로 가나</b>

종로구 청운동 대경빌라에서 용산 국방부 청사까지는 6.5km. 아주 먼 거리는 아니지만, 광화문-시청역-서울역-남영동으로 이어지는 서울에서 가장 붐비는 길 가운데 한 곳입니다. 뛰어서 5분안에 청와대 정문에 도착할 수 있는 대경빌라와 청와대의 ′깐부 관계′는 아닌 겁니다. 경호나 분장, 의상 준비, 비상상황 등 과거에 언급된 대경빌라의 입주 조건과 필요성은 이제 더 이상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대통령 집무실을 옮겨, 청와대를 국민품으로 돌려주겠다는 약속은 뚝심있게 이행되고 있습니다. 이제 ′권력투쟁의 전리품 대경빌라′는 누구 품으로 가야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