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저녁 8시 47분, 강원도의 한 최전방 감시초소에서 경계 근무 중이던 병사 한 명이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사망한 군인은 육군 12사단 을지부대 소속 스물한 살 김 모 이병이었습니다. 지난 9월 입대한 김 이병 본인이 자원해 최전방으로 전입해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일어난 사고였습니다.
사고 발생 이후 짤막한 기사들이 연이어 보도됐습니다. 대부분 ′원인 불명의 총상′이라며 원인은 조사 중이라고 언급했지만, 일부 보도에서는 군과 경찰을 인용해 ′자살로 추정된다′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사고 다음 날 진행된 국방부 공식 브리핑에서도 육군 관계자는 ″군과 경찰이 정확한 사고 원인에 대해서 조사 중이기 때문에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밝혔습니다.
<b style=″font-family:none;″>■ ′군대 못 믿겠다′며 망연자실한 유족에게‥″그렇게 생각하시면 어쩔 수 없다″?</b>
하지만 김 이병의 유족들은 수사 결과를 잠자코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입장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돌연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황망해 있을 새도 없이, 이번 사건을 대하는 군의 대응이 미덥지 않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해외에서 급히 귀국한 김 이병의 아버지는 사고 이튿날 수사 관계자들과 처음 만났던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억했습니다.
군 수사 관계자: ″제가 숨기고 할 게 뭐가 있습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다 나오는 대로 알려드릴 겁니다.″
故 김 이병 아버지: ″이런 사건이 터지면 내 입장에서는 군대를 100% 못 믿습니다.″
군 수사 관계자: ″그렇게 생각하시면 어쩔 수 없고요. 저희가 뭐 믿어달라고 그렇게 얘기할 수는 없는 거고…″
故 김 이병 아버지: ″군대에서 사건이 생겼는데, 군대에서 (조사)한 것을 누가 믿습니까?″
유족의 귀를 의심케 하는 군의 대응은 또 있었습니다. 사고가 난 지 반나절이 채 지나기 전이었던 지난달 29일 오전, 군 유가족 지원팀으로부터 장례식은 어떻게 할 것인지 묻는 전화가 왔던 겁니다.
故 김 이병 형: ″유가족 지원한다는 곳에서 어떤 아저씨가 전화로 거의 서비스직 직원처럼 ′혹시 장례식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라고 물어봤어요. 그래서 제가 너무 빠른 것 같다고 말했고‥ 누가 사람이 죽었는데 눈앞에서 ′언제 끝나요′라고 물어볼까요?″
<b style=″font-family:none;″>■ ′왼쪽 가슴에 난 총상′이 사망 원인‥유서는 아직 확인 안 돼</b>
유족에 따르면, 김 이병의 왼쪽 가슴 부분에서 총상이 한 군데 확인됐습니다. 총상 이외에 사망으로 이어질 만한 요인은 없었다고 합니다. 이에 더해 탄환 한 발이 김 이병의 왼쪽 가슴을 관통해 거의 수평 방향으로 빠져나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유족은 전했습니다. 다만 화약 흔적 등이 어떻게 남았는지 여부 등은 감식 중입니다. 또 초소 내부를 비추는 고정식 CCTV에는 초소 바깥에서 경계 근무를 서고 있던 김 이병의 모습이 잡히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고 현장에 김 이병이 남긴 유서는 없었습니다. 김 이병의 휴대전화를 디지털 증거 분석한 결과, 현재까지 유서나 죽음을 암시하는 메모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인터넷 검색 기록에서도 극단적 선택과 관련된 내용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수사당국은 김 이병과 함께 근무하던 선임 근무자를 비롯해, 같은 부대원들을 대상으로 별도로 조사를 진행 중입니다.
<b style=″font-family:none;″>■ 수더분하던 아들, 보고 싶은 만화로 수다 떨던 동생‥″갑자기 세상 떠날 리 없다″</b>
유족들도 차분히 군과 경찰의 수사 결과를 기다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김 이병 사망 사고의 원인을 설명하는 군의 방식이었습니다. ′김 이병이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것은 물론, 중간중간 사고 내용에 관해 설명하는 군의 태도가 극단적 선택 가능성에 무게를 둔 것처럼 느껴졌다는 것이 유족 측의 입장입니다.
故 김 이병 아버지: ″말하는 뉘앙스는 ′자살이다′ 그런 식으로 흘리더라고요. 그것만 유독 강조하더라고요. 제 아들을 두 번 죽이는 겁니다.″
故 김 이병 형: ″자살 방법에 대해서 (총기를) 난간에 걸친다든가, 이렇게 두 손으로 든다든가, 이렇게 설명하기도 했고요.″
유족들은 10여 년 동안 해외에서 살았던 김 이병이 휴학까지 해가며 입대했고, 훈련소를 수료하고 최전방으로 자원해서 갔다는 점에 비춰봐도 ′극단적 선택′을 논하기에는 다소 이르다고 주장합니다. 사고 전인 지난달 중순에도 가족들과의 메신저 단체 대화방에 ′휴가는 200일쯤 뒤 나갈 것 같다′고 수다를 떨고, 입대 동기들과 ′군 적금을 모았다가 전역하면 여행을 가겠다′는 담소를 나눴던 김 이병이 돌연 스스로 세상을 등질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故 김 이병 아버지: ″아들이 ′군대 가서 몸 만들어 온다′고 했습니다. 관물대에 병영 노트에도 지형지물 이런 것을 다 적어놨어요, 암기해야 하니까. 수사관도 ′이 정도로 메모했으면 적응하려고 노력한 거′라고 하고‥ 그렇게 노력하는 애가 왜 자살을 하겠습니까?″
故 김 이병 형: ″동생이 입대하기 전에 말했어요. 군대 안 가느니 군대 1년 반 힘들게 갔다 오고 평범하게 사는 게 낫다고‥ 전역하면 뭘 할지 계획도 짜고 있었고. 동생이 ′이 방송은 꼭 봐야 된다′, ′군대에서도 챙겨볼 거다′ 이러면서 기대하던 만화들이 참 많았거든요.″
<b style=″font-family:none;″>■ ′운명의 장난′처럼 들어온 제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알렸지만‥</b>
김 이병이 혹시나 말 못 할 사정으로 스스로 세상을 떠났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체념하려던 순간, 유족들에게 익명의 제보가 전달됐습니다. 사고가 난 지 꼭 사흘째였습니다. 익명을 반드시 보장해달라며 신신당부하며 전해진 제보 내용은, 김 이병의 사망이 ′극단적 선택′이 아닌 ′총기 오발사고′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유족들은 단지 익명의 제보로 무시하고 넘기기에는 어려운 내용들이 많았다고 말합니다. 유족들도 모르고 있던 사고가 난 초소 번호를 언급하는가 하면, ′손전등을 주우려다가 오발 사고가 났다′는 비교적 구체적인 정황도 설명했습니다. 군 내부 관계자가 아니면 알기 어려울 법한 내용이 담겼다고 유족들은 여겼습니다.
故 김 이병 형: ″마음을 접으려고 하는데 그 제보가 왔더라고요, 정말 운명의 장난인 것처럼‥″
故 김 이병 아버지: ″저도 초소가 몇 초소인지 몰랐습니다. 물어보니 군에선 맞다고 하고‥ ′자살은 아니다, 내용이 이렇다′ 들으니까 나보다 더 잘 알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 그대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유족들은 군 수사 관계자들에게 이런 익명 제보 내용을 전달했다고 합니다. 익명의 제보 내용이 반드시 맞다고 볼 수 없으니 사실 관계를 정확히 밝혀주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총기 오발 사고 여부 가능성에 대한 설명 혹은 조사 중이라는 답변이 아니라, ′제보 자체가 신빙성이 없다′는 말뿐이었다고 합니다.
故 김 이병 아버지: ″′무전이 전파가 되기 때문에 초소에 있거나 내무반에 있는 몇 명만 아는 게 아니고, 부대 전체가 (사고 사실을) 알기 때문에 제3자가 듣고 제보했을 수도 있다, 신뢰성이 좀 떨어진다′고 그러네요. 하여튼 제보 내용이 신빙성이 떨어지는 걸로 자기네들은 그렇게 판단을 하고 있다고…″
<b style=″font-family:none;″>■ 군 ″다양한 가능성 열어놓고 수사 중″‥유족 ″억울한 사람 없게 수사해달라″</b>
이번 사건과 관련해 육군은 ″군과 민간 경찰에서 합동으로 조사 중이고, 해당 부대 장병 대상 참고인 조사를 비롯해 유가족이 입회한 가운데 디지털 포렌식 등을 실시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유가족이 제기한 문제를 포함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 중이고, 유가족에게 관련 내용을 지속해서 공유하고 있다고도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유가족 지원팀이 유가족에게 장례를 강요하지 않았고, 매뉴얼에 따라 유가족이 희망할 경우 진행되는 장례 절차에 대해 안내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유족 측이 강조하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그 누구도 억울한 사람 없이, 있는 진실 그대로만 알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만약 김 이병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하더라도, 숨기는 것 없이 사실만을 밝혀달라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극단적 선택이 아닌 총기 오발사고 같은 또 다른 사고 가능성에 대해서도 열어놓고 한 치의 의심 없는 명명백백한 수사를 해달라는 뜻입니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진실이 알고 싶습니다. 납득할 수 있는 근거를 바탕으로, 있는 사실을 그대로 밝혀내는 것만을 바랄 뿐입니다. 조용히 가슴에 묻으려던 아들의 죽음을 공론화하기로 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김 이병 아버지는 투명하고 공정한 군 당국의 수사를 바란다면서도, 조금이라도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혹시 있다면, 용기를 내달라고도 거듭 부탁했습니다.
故 김 이병 아버지: ″전방 부대가 조용할까 싶으면 늘 사고가 안 납니까. 사고가 한 번 터졌으면 재발을 막기 위해 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지, 임기응변으로 넘어갈 생각만 하고‥ 그냥 명명백백하게 밝혀지면 됩니다. 내 아들을 위해서 나머지 애들을 억울하게 만들지는 말아라, 그냥 있는 그대로만 하면 됩니다.″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에 따르면, 군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판정했지만 유족 등이 납득할 수 없어 국가에 진상규명을 호소한 사건은 지난달 기준으로 모두 983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