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이재민

[서초동M본부] '비밀의 철옹성' 국회 정보위‥헌법재판소가 빗장 풀었다

입력 | 2022-01-28 15:23   수정 | 2022-01-28 16:20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국회 회의, 공개가 원칙</strong>

국회 회의장이라고 하면 대부분 본회의장을 떠올립니다. 국회의원 300명이 모두 모여서 회의를 하는 곳인데요. 국민을 대신해서 일을 하는 자리인 만큼, 회의 내용을 전부 공개합니다. TV로 중계할 때가 있고, 인터넷에 국회 의사 중계 시스템도 있고, 회의록도 공개합니다.

본회의장에서 회의를 하는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법을 만들고, 바꾸고, 예산과 결산을 하는 실무 작업은 주로 상임위원회에서 맡습니다. 상임위원회도 본회의처럼 공개하고 방청도 가능한데요. 다만 아무나 들어오는 일을 막기 위해서 상임위원장 허가를 받도록 했습니다. 시끄럽게 하거나 난동을 피우면 퇴장당할 수도 있고요. 원칙적으로 누구나 신청을 하면, 국회에서 하는 모든 회의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들어갈 수 없는 곳도 있는데요. 바로 정보위원회입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정보위만 비공개 규정</strong>

정보위는 상임위 17곳 가운데 국가정보원을 담당하는 곳인데요. 회의장 모양부터 다른 상임위와 다릅니다. 다른 상임위는 위원장 중심으로 양쪽에 의원들이 쭉 앉아 있는데, 정보위는 그냥 원탁에 둘러앉습니다. 정보위원장과 국정원장이 마주 보고, 양 옆으로 여야 의원들이 앉는 형태입니다.

다른 회의는 다 들어가서 볼 수 있는데, 정보위 회의에는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기자들은 회의장 문 앞에서 서성이거나 복도에 앉아 있다가, 회의가 끝나면 그제서야 의원들에게 ″안에서 무슨 얘기 하셨나요?″라고 물어봅니다. 의원들은 대부분 답하지 않습니다. 국가 기밀처럼, 혹시라도 해서는 안 될 말을 할까봐죠. 주로 정보위에서 여야 간사를 맡고 있는 의원들만 합의한 내용 안에서 얘기를 합니다. 간혹 같은 내용을 놓고 여야 해석이 다른 경우가 있었는데요. 그래도 회의 내용을 모두 공개하지는 않았습니다. 정보위 ′비공개′ 원칙을 국회법으로 정해 놓았기 때문이죠.
해당 법이 생긴 날은 정보위가 탄생한 1994년 6월 28일입니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 즉 안기부가 권한을 남용하지 않도록 감시하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보위가 처음 생길 때 국회에서 국가 기밀을 보호하기 위한 여러 논의가 있었는데요. 회의를 비공개로 하는 방침을 놓고는 여야가 크게 다른 의견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정보위 회의에 참석하는 국회의원이나 보좌관·공무원이 국가 기밀을 바깥에 얘기하면 안 되겠죠. 그렇지만 국정원장 후보자 의견을 듣는 인사청문회나, 시민들이 내용을 알 필요가 있는 공청회같은 경우에는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는데요. 2005년 국회 개혁 특별위원회에서도 얘기가 나왔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문제 제기에 공청회·인사청문회만 공개</strong>

2005년 7월 28일 국회법을 개정하면서, 공청회나 인사청문회를 할 때는 공개할 수 있다는 조항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2013년에 국회 입법조사처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미국 정보위원회도 비공개가 원칙인데요. 다만 정보를 공개해서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결정하면 알릴 수 있습니다. 독일 의회통제위원회도 국가 기밀 사항만 빼고 매년 보고서를 냅니다. 정말 안보에 중요한 사항만 빼면 공개를 할 수 있을 텐데, 시민단체에서는 한국 정보위가 너무 숨기려고만 한다고 비판했죠.

모순이 쌓이다 보면 문제가 톡 튀어나올 때가 있는데요. 2018년이 그때였습니다. 국정원 사찰 논란·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의혹 등을 지적하며 국정원 개혁 활동을 해 온 ′국정원 감시 네트워크′가 정보위 회의를 보게 해 달라고 신청했는데, 국회가 거부했습니다. 국정원 감시 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조지훈 변호사는 ″국가 안보에 관한 사항도 아니고, 그냥 개정 법률안에 대한 논의를 하는 자리였는데, 아무리 봐도 너무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결국 헌법재판소 판단을 구하는 헌법 소원까지 내게 됐죠. 국회 측에서는 ″이미 비공개하기로 의결해서 입법을 했기 때문에 헌법 위반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항변했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헌법재판소, 정보위 회의 공개 결정</strong>

헌법재판소는 어제(27일), 국회법 조항이 ′알 권리′와 ′평등권′을 침해한다면서 위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재판부는 정보위 회의를 공개하지 않는 법이 ″국민의 감시와 견제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국가 안보를 위해서 필요할 때는 공개하지 않을 수 있지만, 무조건 숨기면 안 된다는 겁니다. 재판관 9명 중에 7명이 찬성했고 2명이 반대했는데요. 반대 의견을 낸 이은애·이영진 재판관은 ″정보위의 모든 회의는 실질적으로 국가 기밀에 관한 사항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돼있으므로 국가 안전 보장을 위해 비공개가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앞으로 정보위가 열리면, 국회의원들은 회의 내용을 공개해야 합니다. 정말 필요하다면 회의를 비공개로 전환할 수 있는데요. 공개할지 말지 내용을 따져 보고, 출석한 의원 절반 이상이 찬성해야 비공개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번거롭더라도, 회의에 참여하는 구성원의 실질적 합의나 회의 내용을 고려한 위원장의 결정을 통해 공개 여부를 자율적으로 정하라는 취지″라고 강조했습니다. 비슷한 사례로 국회 국방위원회에서도 먼저 회의를 공개하고, 국가 안보에 관한 내용이 나오면 비공개로 전환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제도 고쳤지만, 운영이 문제</strong>

헌재 결정에 따라 국회에서는 법을 바꿔야 하는데요. 회의를 공개하되, 국가 안보에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이 있으면 비공개로 할 수 있도록 예외 조항을 둘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걱정되는 부분도 있는데요. 비공개 의결을 남발하는 경우입니다. 의원들이 회의를 시작한 뒤 서로 인사만 나누고 ″비공개로 전환하겠습니다″라고 하면 헌재가 기껏 내린 결정이 유명무실해질 수 있습니다. 조지훈 변호사는 ″앞으로 국회 정보위 소속 국회의원들의 의지가 중요하다″면서, ″형식적으로만 회의를 공개한다면 시민 사회에서 비판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시민 사회가 국가정보원을 감시할 수 있는 문이 열렸지만, 정보를 어디까지 공개할지는 국회 몫으로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