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PD수첩팀

[PD수첩] '사실을 말해도 죄가 된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냐 유지냐

입력 | 2022-04-05 22:55   수정 | 2022-04-05 22:55
- ‘내가 입은 피해를 말했을 뿐인데’ 한순간 전과자가 된 이들
- 악용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법, 피해자를 역으로 공격하는 수단이 되다
- ‘사실적시 명예훼손법’ 헌법재판소 5대 4 합헌 결정, 유엔의 공식 입장은?

5일 밤 PD수첩 <사실을 말한 죄>에서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피해를 본 사람들에 대해 살펴봤다. 형법 307조 1항.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없는 사실을 만들어 처벌받은 게 아니라 사실을 말해 고소당한 사람들. 그들은 학부모나 직장인, 주부 등 평범한 시민이었다.

이진숙(가명) 씨와 18년간 법적 혼인 관계로 지낸 전남편은 판사 출신 변호사였다. 2019년 이 씨는 전남편에 대한 폭로가 적힌 팻말을 들고 거리에 섰다.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리려 했다. 전남편 측은 사무실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이 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그의 팻말 내용이 모두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이 씨는 전남편의 외도 정황이 찍힌 영상 캡처와 녹취록 등을 경찰에 제출했지만, 도리어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재판에 넘겨졌다. 팻말에 적힌 사실이 전남편을 특정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재판부는 이 씨에게 1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전남편은 “(이씨를)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기소했다고 해서 허위사실이 진실로 바뀌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열네 살, 어린 나이에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던 문수현(가명) 학생. 4년 전, 부반장을 맡고 공부도 잘했던 그는 처음 학교 친구 9명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렸지만, 가해 학생들에게 사회봉사 등의 처분을 내리는 데 그쳤다. 따돌림은 수현 씨가 전학을 가서도 계속됐다. 가해 학생들은 2년 6개월 동안, SNS 단체대화방에서 그에게 심한 욕설을 퍼부었다. 견디지 못한 그는 단체 대화방을 캡처해 자신의 SNS에 올렸다. 이것이 독이 됐다. 한 달 뒤인 2020년 12월에 열린 학교폭력 대책 심의위원회에선 이로 인해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로 처분을 받았다. 심지어 가해학생들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수현 학생을 고소하기도 했다. 그의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명예훼손 고소·고발 건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10년 약 15,000건에서 2020년 약 35,000건으로, 10년 사이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법에 대해 “사법 자원의 낭비고 전과자를 양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법 자체가 (사실을) 말한 사람에게 불리하게” 돼있기 때문에, 정보를 교환하는 것만으로도 잠재적인 범죄 상태에 놓인다는 것.
사실적시 명예훼손법을 악용한 사례는 또 있었다. 2018년 2월 신진영(가명) 씨는 본인 SNS에 강제추행을 당했다는 글을 올렸다. 2012년, 직장 동료들과 함께한 1박 2일 엠티에서 일어난 일. 상대는 신 씨가 일하던 방송사의 기자(팀장)였다. 신 씨의 미투로 기자는 해당 기자는 감사를 받게 됐고 3주 뒤, 기자는 그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기자는 허위사실 입증이 어려울 경우,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처벌해달라고 했다. 동시에 해당 기자는 추행 사건과 관련해 신 씨가 자신에게 제기한 고소를 취하할 것을 요구했다. 압박을 이기지 못한 신 씨는 고소를 취하할 수밖에 없었다.

2018년 7월, 검찰은 신 씨의 명예훼손에 대해 혐의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당시 사회적으로 미투 운동이 활발하던 상황에서 운동에 동참한 것이고, 주된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고 봤다. 신씨는 “미투에 참여한 것이기 때문에 공익에 의한 위법성 조각으로 죄가 되지 아니함. 그 네 줄이 없어지면 저는 유죄가 되겠죠”라고 말했다. 지난 2월, 해당 사건과 관련해 민사 재판부도 해당 기자의 손해배상을 결정하며 신 씨의 손을 들어줬다. 신 씨를 고소했던 가해 기자는 PD수첩의 연락을 답하지 않았다.
유엔은 2011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대한민국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라고 권고했다. 유엔 시민적 정치적 권리위원회 소속 호세 산토스 파이스 위원은 “명예훼손의 범죄화가 개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필수적인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국인 최초로 해당 위원회에 선출된 서창록 위원은 “형사 처벌한다는 것은 신체의 자유라는 중요한 인권을 훼손하는 일”이라며 “‘거기까지 가서는 안 된다’라는 것이 국제법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제 인권법에서는 기본적으로 명예훼손을 형법으로 처리하는 것을 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우리나라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 관련 문제가 제기된 지도 10년이 지났다. 반복된 유엔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는 2016년과 2021년, 두 차례에 걸쳐 해당 법이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표현의 자유’ 보장이 우선인가, ‘인격권 보호’가 우선인가. 법을 폐지할 경우 그에 따른 부작용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 후에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둘러싼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가 답을 내놓을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