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손구민

[서초동M본부] '검수완박' 해외는? 미국·독일·영국·일본까지 총정리

입력 | 2022-04-15 11:42   수정 | 2022-04-15 11:55
<b style=″font-family:none;″><″미국 연방검사는 중대범죄 사건을 수사한다″></b>

′연방 검사 캐스린 루믈러는 에너지 기업 엔론의 최고 경영진을 수사하고 있다. 루믈러는 사건 관련자 누구에게서든 증언을 받아내야만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법무부가 엔론을 수사하기 위해 구성한 ‘엔론 태스크포스’의 최연소 멤버였다.′

미국 퓰리처상을 수상한 언론인 제시 에이싱어가 쓴 책 <치킨쉬트 클럽(Chickenshit Club>은 루믈러 검사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루믈러 검사는 먼 훗날 법무부 차관을 거쳐 오바마 행정부에서 백악관 법률보좌관실 고문을 지냈습니다.

이 책은, 최근의 미국 검사들이 왜 대기업 범죄를 제대로 척결하지 못하는지를 지적하면서, 과거 검사들이 어떻게 대기업 수사를 잘 해왔는지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미국 최대 에너지 기업 엔론은 2001년 말 분식회계, 탈세, 뇌물공여 등으로 문제가 불거져 파산했습니다. 이른바 ′엔론 스캔들′에 검사들과 연방수사국(FBI), 금융당국이 총동원돼 수사에 나섰습니다. ‘엔론 태스크포스’는 사건 관계인 1800명을 조사해, 최종 22명이 법원에서 유죄를 받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선 흔히 미국은 검사가 수사하지 않고 연방수사국(FBI)이나 경찰이 주로 수사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중대범죄 사건은 경찰이 아닌 검사가 분명 수사합니다. 뉴욕에서 금융 범죄를 수사하는 한 한국계 미국 검사는 기자에게 “복잡한 기업 비리 사건 등은 경찰과 금융당국의 협조로 검사가 주도해 수사한다”고 설명했습니다.
<b style=″font-family:none;″><정권교체기 정국 집어삼킨 ′블랙홀, ′검수완박′> </b>

검찰의 직접 수사기능 폐지, 이른바 ‘검수완박’이 정권 교체기 정국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됐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검찰청법에서 검찰의 수사권을 명시한 조항을 삭제하는 ′검수완박′ 방침을 당론으로 확정했습니다. 빠르면 이번 달 안에 검수완박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습니다. 아직 법안이 공개된 건 아니지만, 알려진 바로는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말 그대로 ‘완전히’ 없앤다는 겁니다.

검찰의 직접수사권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범죄 등 6대 범죄에 한해 직접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수사개시권′입니다. 그리고, 경찰이 송치한 사건을 직접 보완할 수 있는 ′보완수사권′입니다. 이걸 둘 다 없애겠다는 게 민주당의 검수완박입니다. 참고로, 검사의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은 이미 지난해 1월부터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없어졌고요.

검찰이 검수완박 추진에 반대하는 이유는 그동안 언론에 많이 나왔습니다. 여기서 더 설명하는 건 생략하겠습니다.

민주당 등 검수완박 찬성론자들은 검찰 권력을 견제해야 하고, 수사와 기소 분리는 세계적인 추세라고 강조합니다. 반면, 검찰 등 검수완박 반대론자들은 검찰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고 해도 아예 수사권을 뺏는 건 선진국에서 찾아보기 힘들다고 주장합니다.

검수완박 찬성·반대 양측 모두 근거로 내세운 세계적 추세, 선진국의 사례, 실제로는 어떨까요?
<b style=″font-family:none;″><″미국 검찰은 수사한다″‥경찰과 협력은 어떻게?></b>

앞서 미국 사례로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미국부터 보겠습니다. 미국 법무부 장관은 연방 검찰총장을 겸합니다. 장관 겸 검찰총장은 전국 93곳의 연방검찰청을 지휘합니다.

연방검찰은 간첩, 테러, 연방공무원의 부패 범죄, 주요 경제범죄, 범죄지가 2개 주 이상에 있는 범죄를 직접 수사합니다. 물론 기소도 합니다. 연방검찰은 FBI에 수사지휘를 할 수도 있습니다. 한국에는 검찰에 검사와 수사관이 같이 있다면, 미국은 수사와 기소를 하는 검사들이 모인 검찰청과, 수사만 하는 수사관들이 모인 FBI가 구분된 것입니다.

연방검찰과 별개로 각 주마다 지방검찰청들도 있습니다. ′주 검찰총장′이 있고, 지방검찰청 검사장들이 있습니다. 주검찰청은 주 전역에 걸친 사건을 직접수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미국 검찰은 경찰이 송치한 사건을 직접 보완수사할 수 있지만,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미국 경찰은 검찰과 수사 초기 단계서부터 협력합니다. 경찰은 수사 현황을 실시로 공유하고, 검사는 혐의 입증에 필요한 증거가 뭐가 있는지 얘기합니다.

검사의 수사지휘권이 폐지된 우리나라에선 일선에서 혼란이 빚어지고 있죠. 심지어 권한을 두고 검경이 여러차례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수사지휘권조차 없는 미국 검찰은 어떻게 경찰과 궁합이 잘 맞을까.

뉴욕 검찰에 연수를 다녀온 한 부장검사는 그 이유를 미국 경찰의 인사평가 시스템이라고 봤습니다. 그는 기자에게 ″미국 경찰은 자기 사건을 검사가 기소해줘야만 성과를 공식 인정받는다″고 설명했습니다. 검사가 경찰의 인사 승진 등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구조인 거죠. 검찰에 송치하면 기소 여부는 상관 없는 국내 경찰 인사 제도와는 다른 점입니다.
<b style=″font-family:none;″><우리 형사법 모델 독일, ″검찰에 수사관이 없다″?></b>

유럽으로 넘어가 봅니다. 우리 형사법은 독일법 체계에서 따왔다고 하니, 사실 영미권 나라보다는 독일의 사례를 보는 게 더 맞을 수도 있겠습니다.

독일 검찰은 직접수사권과 경찰 수사지휘권, 기소권을 모두 보유하고 있습니다. 민생 범죄는 경찰이 수사하고, 대형 사건은 검찰이 수사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2015년 폭스바겐 ‘디젤 게이트’ 사건도 검찰이 직접수사해 전·현직 폭스바겐 임원들을 대거 기소했었죠. 일견 과거의 우리 검찰과 비슷해보입니다.

그런데 차이점이 있습니다. 독일 검찰에는 수사관 인력이 따로 없습니다. 그래서 검사가 사건을 직접수사해도, 경찰이 도울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즉, 경찰이 우리나라의 검찰 수사관 같은 역할도 하는 셈입니다.

독일 검찰은 우리나라처럼 법으로 6대 범죄로 직접수사 범위를 제한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통상 공직비리와 중대 경제 범죄를 위주로 직접수사 한다고 합니다. 이걸 중점검찰청 제도라고 부릅니다. 중점검찰청은 금융, 조세 등 전문 분야의 범죄를 전담하는 검찰청들로, 전국에 49개가 있습니다. 중점검찰청 소속 검사들은 수사와 기소를 둘 다 담당합니다.
<b style=″font-family:none;″><수사·기소 분리의 모델 영국, ″경찰권력 견제 위한 제도″></b>

영국은 좀 특이합니다. 우선, 수사와 기소를 완전히 분리시킨 모델입니다. 그래서 검수완박 찬성론자들은 영국의 사례에 관심을 갖습니다.

영국은 산업혁명 이후인 1829년 경찰 제도를 처음 만들었습니다. 이때 경찰은 수사와 기소권을 전부 가졌습니다. 경찰이 직접 재판에 들어가 피고인과 다투는 공소유지도 담당한 거죠. 이후 1985년이 돼서야 영국은 검찰을 만들었습니다. 경찰의 막대한 권한을 분리하기 위해서입니다.

영국 검찰은 처음에는 수사권과 기소권 없이, 재판에 들어가는 공소유지 권한만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2003년 비로소 경찰의 기소권도 검찰로 넘어갔습니다. 이에 따라 수사는 경찰이, 기소는 검찰이 하는 이른바 수사·기소 분리가 이뤄진 겁니다.

민주당에서 말하는 수사·기소 분리 모델을 영국이 실천하고 있는 건데, 차이점이 좀 있습니다.

우선 영국은 역사적으로 ‘사인소추’가 가능한 나라입니다. 사인소추란 개인이 개인에게 형사소송을 제기(소추)해 법원의 판단을 받을 수 있는 제도입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검찰의 힘이 비교적 약할 수밖에 없는 거죠.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우리나라와 문화가 다르다는 점을 전제로 해야겠습니다.

또 영국 검찰은 경찰 수사지휘권이 없는 대신, 경찰은 수사에 착수하려면 검사의 승인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경찰은 수사에 착수하면 미국처럼 검사와 수사 초기 단계부터 협의를 합니다. 수사하는 내내 검사와 소통하기 때문에 검사가 이후 보완수사를 직접 하거나 요구할 필요도 없죠.

수사·기소 분리 원칙에 예외도 있습니다. 영국 중대범죄수사청(SFO)은 대형 경제 범죄에 한해서 수사와 기소, 재판까지 책임집니다.

영국이 검찰을 만들 무렵인 1980년대 당시, 영국에는 기업들의 복잡한 불법회계와 탈세 사건들이 늘었다고 합니다. 이런 복잡한 사건들을 경찰이 수사해오면 검찰은 사후 기록만 보고 재판에 들어갔으니, 재판에서 이길 가능성은 낮았습니다.

그래서 영국 정부는 검찰을 설립한 지 3년 만에 법무부 산하에 SFO를 만들어 대형 경제 사건에 한해서는 수사, 기소, 재판까지 다 맡긴 겁니다.
<b style=″font-family:none;″><일본></b>

마지막으로 이웃나라 일본을 짧게 보겠습니다. 일본 검찰은 부패범죄, 기업범죄, 탈세 및 금융범죄를 특별수사부 3곳, 특별형사부 10곳에서 직접수사를 합니다. 특별수사부는 도쿄, 오사카, 나고야에 위치해 있고, 특별형사부는 도쿄와 오사카, 나고야를 제외한 10곳에 있습니다. ′부서′ 개념이지만 우리나라로 치면 지방검찰청급 규모입니다. 그 외 일본 검찰청은 경찰의 송치 사건을 기소합니다. 현재의 우리나라처럼 대부분의 사건은 경찰이 수사하되, 중대범죄는 검찰이 수사합니다.
<b style=″font-family:none;″><해외 선진국 사례들에서 참고할 것들은></b>

정리해보겠습니다. 미국·독일·일본은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되, 중대범죄에 한해 예외적으로 검찰에 수사권을 부여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적 추세′와 비슷했던 셈입니다. 나라마다 수사 개시 범위가 다를 수 있지만 어쨌든 우리나라도 6대 범죄(중대범죄)에 한해서 직접수사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영국 사례처럼, 역사적인 문화 차이를 뒤로 하고 우리나라도 검찰 수사권을 완전히 없앨 수는 있습니다.

비교해 본 주요 국가들과 우리나라와의 차이점도 보입니다. 검찰과 경찰의 관계입니다. 미국의 경우 인사평가 시스템을 통해 검경의 협력을 유도했습니다. 독일에선 수사관 없는 검찰이 경찰 없이는 수사를 할 수 없게 돼 있습니다. 영국에선 반대로 경찰이 수사하려면 검사의 승인을 받도록 경찰을 견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검찰·경찰이 수사권 범위를 두고 갈등을 반복했습니다. 이번에도 검사들은 “경찰을 못 믿는다”, 경찰들은 “검사만 잘났냐, 우리도 수사할 수 있다”며 공방이 오가고 있죠.

영국이 검찰청을 뒤늦게 세운 점도 인상적입니다. 우리나라에선 늘 검찰의 권한이 막강해 경찰에게 권한을 떼어주는 방식의 논의가 활발했습니다. 반대로 영국에선 경찰이 너무 막강해지면서 아주 뒤늦게 검찰을 만들어 권한을 나눠줬습니다. 영국의 수사·기소 분리 사례를 참고하면서도 조심히 살펴야 할 지점입니다.

또, 영국 사례에선 ′중대범죄수사청′ 역시 잘 살펴봐야겠습니다. 고위공직자 범죄를 수사하고 기소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세울 때도 이 사례가 많이 언급됐습니다. 고위공직자 범죄, 대기업 범죄 등 복잡한 사건들은 수사와 기소가 함께 가야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잘 참고해야겠습니다.

외국의 사례는 다 제각각 그 나라 형편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외국 사례를 그대로 우리나라에 적용할 수도 없습니다. 이미 논의에 불이 붙은 이상, 우리 현실에 맞게, 시민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제도를 만들도록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