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손하늘

참사 한 달 만에 드러난 무전기록‥"특이사항 없다·상황 몰랐다"더니

입력 | 2022-11-29 16:08   수정 | 2022-11-29 18:06
가을밤, 서울 이태원 한복판에서 158명이 숨졌습니다.

그로부터 딱 한 달이 지났습니다.

그날 밤 단편적 사실의 조각들은, 국회와 언론은 물론 여러 시민들의 노력으로 지난 한 달 사이 그 윤곽이나마 그릴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나 사고 예방과 사후 수습의 핵심 책임기관인 경찰 내부의 사정은 안갯속이었습니다.

정확하게, 어떤 보고와 지시가 오갔는지, 참사 한 달이 되도록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에 참사 책임자이자 업무상 과실치사의 피의자를 겸하고 있는 당사자들의 일방적인 진술만이 국회에 울려 퍼졌습니다.

[이임재/당시 서울 용산경찰서장]
″정말 죄송합니다. 부끄럽고 참담하지만 그때까지 정확한 현장 상황을 몰랐기 때문에…″
″112상황실장에게 상황을 물었더니 ′사람이 많고 정체되고 있으나 특이사항은 없다′고…″

MBC는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 김교흥 의원실을 통해 참사 전후 용산경찰서와 서울경찰청의 112 지령망 무전 녹취록을 입수했습니다.

112 지령망은 용산경찰서 상황실과 이태원파출소, 교통경찰관은 물론 당시 마약단속에 투입됐던 형사과 관계자들까지 청취할 수 있는 핵심적인 무전망입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인파 많은데 일손부족″ 다급한 무전 20차례‥그런데도 ″특이사항 없다?″</strong>

그날 저녁 6시34분, 해밀톤호텔 골목에서 ″압사당할 것 같다″는 첫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그 직후부터 참사 직전까지 용산경찰서 112지령망 무전에는 ″인파가 너무 많아 조치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무전이 모두 20차례 등장합니다.

시간대별로 보면 오후 7시대 ″이태원에 사람이 워낙 많다″는 내용 등이 6차례 오갔고, 오후 8시대는 ″이태원파출소 건너편으로 경찰관을 빨리 보내달라, 인파경고″라는 내용이 1차례만 오갔습니다.

그러다 밤 9시대로 넘어오면서 13차례 다급한 무전이 집중됐습니다.

″매우 혼잡한 상황″이라며 ″한 번에 많은 인파가 터져 나와 매우 혼잡하다″ ″교통경찰관과 지역경찰관이 근무하고 있는데 일손이 부족하다″ ″(이태원로) 차선을 하나밖에 확보 못 했는데 경력(경찰력)이 (사람들을) 밀어서 1개 반을 확보했다″는 무전 등이 1시간새 모두 13차례 오갔습니다.

참사 40분 전인 밤 9시33분에는 112상황실장이 아주 구체적인 지시를 합니다.

″인파가 순간적으로 많이 몰리고 있어서, 이태원역 출구에 경력을 배치해 10명 단위로 20초 간격으로 지하철역으로 내려보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럼에도 이임재 용산경찰서장은 국회 현안질의에 출석해 ″밤 9시57분쯤 112상황실장에게 상황을 물었더니 ′사람이 많고 (교통이) 정체되고 있으나 특이사항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무전으로 드러난 보고와 지시 내용을 보면 용산경찰서 112상황실장은 당시 이태원 현장을 모를 수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112상황실장이 용산경찰서장에게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것인지, 용산경찰서장이 보고를 받고도 국회에서 위증을 한 것인지 국정조사를 통해 밝혀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상급기관인 서울경찰청 112상황실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서울경찰청 112망 무전 내역을 보면 밤 9시1분 ″지시번호 10602번으로 대형사고 및 위험방지건이 있는 상황″이라며 ″핼러윈 이태원 관련하여 확인을 잘 해주시고, 질서관련 근무해 달라″는 언급이 등장합니다.

그냥 안전사고도 아니고 ′대형사고′ 우려를 스스로 인지해놓고는, 10층 자신의 방에 동떨어져 근무 중이던 류미진 당시 상황관리관에게 보고도 하지 않았고, 이렇다 할 지시도 내리지 않은 것입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참사 20분 뒤 ″가용경력 전부 보내라″‥″심정지만 60명″ 현장 보고도</strong>

참사 직후 1시간 가까이를 녹사평역 교통정체로 허비해 ′늑장대응′ 논란의 중심에 선 이임재 당시 용산경찰서장.

그래서 이 전 서장은 예방뿐만 아니라 사후 수습에도 책임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습니다.

하지만 이 전 서장은 국회 현안질의에 출석해 ″정말 죄송하다″며 ″부끄럽고 참담하지만 그때까지(이태원파출소에 도착할 때까지) 정확한 현장 상황을 몰랐기 때문에…″라며 책임을 피했습니다.

보고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자신은 상황을 알 수도 없었고, 현장 건너편 이태원파출소에 도착해서야 상황을 인지하고 제대로 지시를 내렸다는 겁니다.

과연 그럴까, 이 전 서장이 무전망에 처음 등장하는 시각은 참사 20분 뒤인 밤 10시35분입니다.

″가용 경력을 형사1팀부터 해가지고 여타 교통경찰관까지 전부 보내라″고 지시합니다.

이 전 서장이 이런 지시를 내리기 직전, 용산경찰서 무전망에서는 ″여성 비명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이 다 깔리려고 한다″ ″사람이 많아서 계속 신고가 들어오는 상황″ ″압사당하게 생겼다″는 보고가 그야말로 빗발쳤습니다.

이 전 서장은 이 같은 무전 내용을 관용차 안에서 듣고 있다가, 관용차에 부착된, 혹은 휴대용 무전기로 ′가용경력 총동원′이라는 지시를 내리기에 이른 것으로 보입니다.

이 전 서장의 첫 지시 이후 당시 마약단속 등에 투입됐던 형사팀과 강력팀은 물론 교통경찰관들이 해밀톤호텔 앞으로 총동원됐습니다.

밤 10시59분, 현장에 교통정리를 위해 투입됐던 교통경찰관이 ″60명 정도 심정지 상태″라고 보고했고, 그로부터 50초 뒤에는 강력6팀장이 ″30명 정도가 의식불명″이라고 보고했습니다.

이미 이 정도 규모로도 대형 참사로 분류될만한 상황이었지만, 당시 뒷짐을 지고 걸어서 이태원파출소에 도착한 이 전 서장은 10분 뒤에 파출소 옥상에 오르고서야 무전망에 다시 등장합니다.

지시 내용은 ″해밀톤호텔 두 쪽 골목에서 차도 쪽으로 인파를 밀어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때까지 차도는 교통통제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고, 1분 뒤 첫 교통통제 지시가 내려옵니다.

이 전 서장은 밤 11시18분에야 ″응급환자가 나갈 수 있도록 계속 비상로를 확보하라″며 구체적으로 지시했습니다.

비로소 해밀톤호텔 뒷골목에 경력이 배치되면서 밀집해있던 수백 명의 인파가 갈라졌고, 그 사이로 1백여 명이 줄줄이 실려 나왔습니다.

참사 1시간 3분 만이었습니다.

국회 ′용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별위원회′ 김교흥 의원은 ″무전녹취록을 통해 서울 용산경찰서장의 거짓 증언이 드러났다″며 ″심각한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국정조사를 통해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습니다.

(자료제공: 더불어민주당 김교흥 의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