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금기종

엔데믹 그리고 혼란스러웠던 그해 1월

입력 | 2022-09-18 07:39   수정 | 2022-09-18 07:46
″코로나19 대유행의 끝이 보인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지난 14일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발언의 주요 근거는 사망자 수 감소입니다. WHO는 지난주 코로나19로 인한 전 세계 사망자 수가 2020년 3월 이후 가장 적었다고 밝혔습니다.

WHO의 코로나19 주간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11일 전 세계 코로나19 관련 사망 건수는 전주 대비 22% 감소한 1만935건을 기록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신규 확진 건수는 28% 감소했습니다.

에티오피아 보건부 장관과 외교부 장관을 역임한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끝′이란 단어를 쓰면서 신중하게 단서도 달았습니다. ″우리는 코로나19 대유행을 끝낼 위치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마라톤 선수가 결승선까지 뛰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래야 한다″.

그는 결승선의 주요 이정표로 지속적인 방역과 함께 세계 각국이 코로나19 백신 접종률 70%라는 목표를 빠짐없이 달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길고 긴 팬데믹 터널의 끝은?</strong>

테워드로스 총장은 앞서 지난 6월 29일 기자회견에서 ″대유행이 끝나지 않았다″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이 때만해도 전 세계 사망자 수는 정체 상태, 확진자 수는 증가 추세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아직 도달하지 못했지만 끝이 보인다″는 발언은 팬데믹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신호로 해석됩니다. 로이터는 이번 발언이 코로나19 발병 이후 WHO에서 발표한 가장 긍정적인 평가라고 전했습니다.

WHO가 코로나19 대유행의 종식을 선언한다면, 그건 곧 2020년 1월 30일 선포한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의 해제가 될 것입니다. 당시엔 아무도 몰랐던, 길고 긴 팬데믹 터널의 끝인 거죠. 코로나19는 사라지지 않겠지만 독감처럼 엔데믹(풍토병)이 될 것입니다.

국내 전문가 중엔 교역을 비롯한 전 세계적 일상 회복 시점을 6개월 후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정기석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코로나19 특별대응단장은 그제(16일) ″현재 코로나19 비상대응체계에서 일상적인 코로나19 대응체계로 전환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의학저널 랜싯, WHO와 각국 정부 직격</strong>

공교롭게도 WHO 사무총장이 기자회견을 하던 그날, 주목할 만한 보고서가 공개됐습니다.

보고서 발표자는 저명한 의학전문지 ′랜싯′의 코로나19 위원회. WHO와 각국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내용입니다. 랜싯의 코로나19 위원회는 전 세계 전문가 28명으로 구성돼 있고, 산하 태스크포스에는 각 분야 전문가 173명이 참여했습니다.

랜싯 위원회는 보고서에서 ″WHO는 몇 가지 중요한 문제에 대해 너무 조심하고 너무 느리게 행동했다″고 비판했습니다. 만시지탄의 실책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바이러스의 사람 간 전염 가능성에 대한 경고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 선포
○바이러스 확산을 늦추기 위한 국제여행 규약 지원
○마스크 사용에 대한 지지
○바이러스의 공기 전파(에어로졸 전파) 인식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2020년 1월, 그때는 설마설마</strong>

WHO와 각국 정부는 왜 이런 비판에 직면했는지, 잠시 코로나19 발생 초기로 가보겠습니다.

코로나19는 2019년 마지막 날, 중국이 WHO에 보고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날 중국 관영 중앙TV(CCTV)는 우한에서 원인 불명 폐렴 환자 27명이 집단 발병했다고 처음 보도했습니다.

이듬해 1월 3일, 중국 공안은 안과 의사 리원량을 소환 조사했습니다. 그는 나흘 전 의사들의 단체 채팅방에 사스 유사 바이러스의 발병을 경고했습니다. 리원량은 코로나19에 감염돼 2월 7일 사망했는데, 신종 바이러스를 처음 알린 의사로 추모를 받았습니다.

1월 5일, 중국 우한시는 원인불명 폐렴 환자가 59명으로 늘고, 그중 중증 환자가 7명인 상황에서, ″현재까지 사람 간 전염 사례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습니다.

1월 14일, WHO는 신종 코로나로 확인된 바이러스의 확산 가능성을 언급하면서도 ″사람 간 전염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위험도를 낮게 판단했습니다.

1월 15일, 우한시는 ″사람 간 전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입장을 살짝 바꾸면서도 ″위험은 비교적 낮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무렵은 중국에서 첫 사망자가 나오고, 홍콩에서 우한을 다녀온 10여 명이 발병한 지 며칠이 지난 뒤였습니다. 무엇보다 중국 명절인 춘제를 앞두고 대이동이 시작되는 시점이었습니다.

1월 20일, 중국 베이징과 선전까지 환자가 발생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첫 확진자가 나왔습니다.

1월 23일, 우한시는 이날 도시 긴급 봉쇄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골든타임을 놓친 뒤였습니다. 훗날 우한시 1인자인 당서기는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며 후회했습니다.

같은 날, WHO 긴급 위원회는 국제적 비상사태 선포 단계는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당시 테워드로스 사무총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중국 안에선 비상사태지만, 국제적인 비상사태는 아니다” “중국 외 지역에서는 현재 사람 간 전염에 대한 증거가 없다.″

1월 24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중국은 바이러스를 봉쇄하기 위해 매우 노력해 왔다” “미국민을 대신해서 시진핑 주석에게 감사하고 싶다″고 썼습니다.

1월 26일, 실제 감염자가 3만~20만 명 사이라는 영국 전문가의 경고가 나오고, 홍콩대학은 감염자가 2만5천 명에 육박했다는 추정치를 공개했습니다.

1월 27일, 미국 정부는 우한시가 있는 후베이성에 최고 단계인 4단계 여행경보를 발령하고, 중국 전역에 3단계 경보를 발령했습니다.

1월 30일, WHO는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습니다. WHO는 3월 11일에는 팬데믹을 선언했습니다. 이미 110여 개 나라에서 12만 명 넘게 감염된 뒤였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방역의 기본 규범 준수·국가 간 협력 실패‥해법은?″</strong>

랜싯 위원회는 WHO를 비롯한 국제기구와 각국 정부의 대응이 ″신뢰할 수도 없고 효과도 없다″고 혹평했습니다. 너무 많은 정부들이 기본 규범을 준수하는데 실패했고, 강대국들은 협력에 실패했다는 겁니다. 각국 지도자들이 내놓은 전략은 제멋대로였다고도 했습니다.

물론 WHO와 각국 정부를 마냥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은 모든 게 분명해졌지만, 그때는 수많은 정보가 뒤죽박죽이었습니다. 신호(정확한 정보)와 소음(틀린 정보)을 가려내기 쉽지 않았습니다. WHO는 2009년에 신종플루(H1N1) 바이러스가 발생했을 당시 위험을 과대평가했다가 백신 사재기 등 혼란을 겪은 기억이 있습니다.

랜싯 위원회는 앞으로 닥칠 전염병 사태에 더 잘 대처하기 위한 해법으로, WHO의 예산과 권한 기능을 강화하고, WHO가 적시에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전 세계 차원의 새로운 자문위원회 구성을 제안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