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박윤수

여야 논평 전수조사‥여 "검수완박" - 야 "대통령 순방"서 공격성↑

입력 | 2023-06-20 15:18   수정 | 2023-06-20 15:31
정치인들은 매일 여러 가지 말들을 쏟아냅니다.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언론의 조명을 받고, 또 기삿거리가 되곤 합니다.

매번 거대 양당이 번갈아서 집권하기 때문일까요? 우리 정치인들의 말 상당수는 상대를 비방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걸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귀에 팍팍 꽂히는 단어로 상대를 때릴수록, 지지자들로부터 ′시원하다′는 호응을 얻죠. 이런 모습은 매일 아침 여야 회의부터 반복됩니다.


<i>″국민의힘이 원래 ′적반하장′, ′후안무치′ 전문이기는 한데…″ (16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 / 이재명 대표)

″민주당 의원들은 중국까지 찾아가 ′조공외교′에 나서고 있습니다.″ (16일 국민의힘 원내대책회의 / 이철규 사무총장)</i>


언론은 정치인들의 말을 다룹니다. 그 과정에서 각종 비방이나 혐오 표현들을 그대로 전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그러다 보면 가끔 ′언론이 정치 양극화를 넘어 정치 혐오를 부추기고 있는 게 아닌가′ 반성하게 됩니다.

MBC는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박종희 교수에게 의뢰해 지난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내놓은 대변인과 원내대변인 논평을 전수 조사했습니다. 박 교수는 논평에 사용된 언어들의 ′공격성′을 지수화하기 위해 카이스트 오혜연 교수팀의 ′KOLD′(Korea Offensive Language Database)를 사용했습니다.

KOLD는 네이버 뉴스나 유튜브 댓글의 공격성 정도를 측정하는 도구인데요. KOLD를 이용해 여야 논평에 사용된 언어들의 공격성을 수치화하고, 이 값으로 여야 ′정치의 언어′가 얼마나 공격적이었는지 따져봤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해 12월 27일 ′윤석열 정권은 깜깜한 골목길 불량배 행태를 즉각 중단하길 바란다′고 한 민주당 논평은 5.96점, 지난해 5월 26일 ′민주당스럽다′거나 ′민주당의 내로남불 행보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표현이 본문에 담긴 국민의힘 논평은 6.03점의 공격성 점수를 받았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대선 전 與, 대선 후 野 공격성 증가 </strong>
지난해 국민의힘의 논평은 3천988개, 더불어민주당의 논평은 3천881개로 비슷합니다. 여야 모두 하루 평균 10개 이상 논평을 쏟아냈습니다. 그래프의 빨간색 곡선은 국민의힘, 파란색 곡선은 민주당 논평의 일별 공격성 지수입니다. 그리고 20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지난해 3월 9일을 기준으로 세로 점선을 그었습니다.

눈에 띄는 점은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낸 논평의 공격성이 민주당보다 크게 높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민주당도 대선 직전까지 공격성이 상승하는 모습이지만, 국민의힘에 비해서는 공격성 점수가 낮게 나타났습니다. 당시 야당이던 국민의힘이 전임 문재인 정부는 물론,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상대로 훨씬 적극적인 공세를 폈다는 뜻입니다.

대선이 끝나자, 여야 모두 뚝 떨어졌던 공격적 언어 지수는 5월부터 서서히 증가합니다. 특히 민주당 논평의 공격성이 이전보다 커지면서, 아예 역전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야당이 된 민주당이 본격적으로 정부 여당 비판에 나선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런 민주당의 공격성이 작년 9월과 10월을 지나면서 빠르게 상승한 것도 눈에 띕니다. 박종희 교수는 ″윤 대통령의 9월 해외 순방 중 벌어졌던 ′비속어 논란′과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등의 영향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10.29 참사에 대한 정부의 미흡한 대응으로 지난해 11월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30%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당시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가장 강하게 정부 여당을 비판했습니다.

이때부터 국민의힘도 대응 수위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검찰이 대장동과 성남FC 등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와,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 등 전임 문재인 정부에 대한 수사를 동시에 진행했던 지난해 10월 말부터는 국민의힘의 공격성도 빠르게 상승한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그리고 연말이 되면서, 양 당의 공격성은 거의 균형을 이뤘다는 게 박 교수의 분석입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장기 분석 : 대선 패배한 정당, 공격성 급등</strong>
박종희 교수팀은 2007년 7월부터 지난해까지 15년 6개월 동안 여야 논평 4만 102개(국민의힘 1만 5천124개, 민주당 2만 4천978개 : 양당 전신 포함)도 분석했습니다. 그러니까 2008년 17대 대선부터 지난해 20대 대선까지 장기 분석을 한 건데, 예상대로 대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논평 수가 급증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양 당 논평의 공격성도 측정해 봤습니다. 그래프에서 알 수 있듯, 대통령 선거 직전에는 여야 모두 공격성이 높아집니다.

과거부터 장기간 높게 유지됐던 민주당의 공격성은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19대 대선을 전후로 급격하게 낮아졌습니다.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다시 국민의힘을 앞질렀습니다. 주로 대선에서 패배한 정당이, 또 대선 기간 동안에는 선두주자보다는 추격자가 더 공격적인 경향을 보인다는 것을 과거 여야 논평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지난해 與 ′검수완박′ - 野 ′대통령 순방′ 이슈서 공격성↑</strong>

다시 지난해 논평 분석으로 돌아오겠습니다. 2022년 한 해 동안 여당과 야당이 각각 공격성을 드러냈던 이슈는 무엇이었을까요? 아래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각형의 왼쪽 부분에는 민주당이, 오른쪽 부분에는 국민의힘이 집중적으로 공격했던 주제가 적혔습니다. 양 당이 공격성을 드러낸 주제일수록 더 위에 배치했고, 각 당이 적극적으로 주도한 이슈는 글자를 더 크게 적었습니다. 이른바 ′토픽 분석′입니다.

먼저 국민의힘을 보겠습니다. ′검수완박′과 ′김혜경 소고기′, ′유동규′ 등이 부각됐습니다. 특히 윤석열 정부 출범 직전 민주당이 강력하게 추진했던 검찰 수사권 분리 법안, 이른바 ′검수완박′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안건조정위원회를 앞두고 불거진 ′위장 탈당′ 논란에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향해 ′집단 광기′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비난했습니다.

<논평-1>
″민주당의 독선적이고 전투적인 강경파 집단 광기에 국회의원이 소신과 양심을 밝히면 악마화시키고, 면밀한 검토와 각계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는 법원 측 의견에는 국회가 우습냐며 으름장과 막말도 서슴지 않는다. (중략) 유례가 없는 꼼수와 무리수, 막말까지 동원하는 것 자체가 검수완박이 정당성과 당위성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다.″ (2022년 4월 21일 국민의힘 김형동 수석대변인 논평)

마찬가지로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부인 김혜경 씨가 ′경기도 법인카드로 소고기를 결제했다′는 것도 공격적으로 비판했습니다. 글자 크기가 ′검수완박′보다도 큰 걸로 볼 때, 국민의힘이 지난해 가장 적극적으로 주도한 이슈로 평가받았습니다.

<논평-2>
″후안무치한 ′살림의 여왕′ 김혜경 씨의 알뜰한 아침 식사 해결법으로 국민들은 코로나로 힘겨운 시기를 보낼 때 이 후보 부부는 도민의 혈세로 ′공짜 아침 식사′를 즐기고 ′한우′, ′초밥′ 등으로 호의호식한 것이다.″ (2022년 2월 4일 국민의힘 선대본부 허정환 상근부대변인 논평)


반면 민주당은 대통령의 해외 순방, 그리고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 문제를 가장 주도적으로 비판했고, 동시에 이들에 가장 큰 공격성을 나타낸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과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낙마한 정호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박순애 전 교육부 장관에 대해서는 비판을 쏟아냈지만, 이들에 대한 공격성은 윤 대통령의 해외 순방 이슈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습니다.

<논평-3>
″윤석열 대통령의 순방은 총체적 무능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중략) 국민은 무능과 거짓으로 점철된 윤 정부에 대해 실망을 넘어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2022년 9월 25일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 논평)

<논평-4>
″부패 세력, 적폐 세력, 국기문란 세력 모두 방생해 주는 것이 법치주의에 걸맞은 결정인지 묻습니다. (중략) 적폐 청산 수사로 인기를 얻은 윤 대통령이, 이제는 적폐 세력과 한배를 타고 국정을 운영하게 생겼습니다.″ (2022년 12월 27일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 논평)

<논평-5>
″정호영 후보자는 ′한 점 부끄럼이 없는 것′이 아니라, ′부끄럼 자체를 아예 모르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기까지 합니다.(2022년 4월 23일 민주당 신현영 대변인 논평)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내년 4월 22대 총선‥ ′진흙탕 싸움′ 언제까지 </strong>

정치는 국민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중요합니다. 하지만 많은 국민들은 정치에 냉소적입니다. 난무하는 공격과 막말들, 선을 넘은 혐오 표현들은 국민들이 정치를 냉소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일 겁니다.

내년 4월 10일, 22대 총선이 치러집니다. 이제 300일도 남지 않았습니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여야는 지금보다 훨씬 가시돋친 말들을 주고받으며 상대방을 흠집 낼 것입니다. 그런 ′정치의 언어′를 언론은 또다시 전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런데 유권자들은 언제까지 이런 ′말 폭탄′과 ′진흙탕 싸움′을 지켜봐야 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