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05-14 08:53 수정 | 2023-05-14 09:42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font-size:23px″>■ 민식이, 동원이, 승아‥그리고 은결이</strong>
지난 10일 경기도 수원의 한 어린이보호구역, 스쿨존에서 또 한 생명이 사라졌습니다. 우회전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는 순간에 교차로로 진입해 우회전을 한 시내버스 한 대, 초록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던 8살 조은결 군은, 이 버스에 치여 숨졌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던 평범한 하루가 생의 마지막이 됐습니다.
은결 군의 아버지는 ″옷이 완전히 피투성이였다, 너무 아파보였다″며 ″이제 안 아팠으면 좋겠다″고 눈물을 보였습니다. 교차로엔 우회전 신호등이 있었지만 버스 기사는 ″신호를 보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불과 한달 전엔 대전에서 9살 배승아 양이, 작년 12월에는 서울 강남에서 9살 이동원 군이 모두 스쿨존에서 만취운전 차량에 참변을 당했습니다. 유족들은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음주운전 가해자들을 엄벌해달라″는 입장과 함께 아들과 딸의 이름을 공개했습니다.
지난 2019년 7살 고 김민식군 사고를 계기로, 스쿨존 사고를 엄격히 처벌하는 ′민식이법′이 만들어졌고, 시행된 지는 3년이 지났습니다. 어느 곳보다 안전해야 할 학교 다녀오는 길, 스쿨존 교통사고에 대한 처벌이 어떻게 이뤄졌을까요?
MBC는 지난 1년간 법원에서 확정된 스쿨존 사고 판결문 93건을 전수 분석했습니다. 93건 가운데 단 1건만 실형을 선고 받았고 나머지는 모두 집행유예나 벌금형에 그쳤습니다.
전체의 절반이 넘는 51건은 집행유예, 37건은 벌금형. 3건은 잘못이 크지 않다며 처벌을 미루는 선고유예였습니다.
징역 8개월의 실형을 받은 운전자는 교통법규 위반으로 8번(징역형의 집행유예 1건 포함)이나 처벌받고도 또, 스쿨존에서 신호를 어겨 5살 어린이를 크게 다치게 했습니다. 피해자 측의 엄벌탄원과 이례적인 교통 위반 전과가 반영된 결과입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font-size:23px″>■ ′음주·뺑소니′ 사고인데‥ 집행유예</strong>
집행유예와 벌금형이 많은 이유를 판결문에서 찾아봤습니다. 재판부가 작성한 사유로는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가 61건 등장했고,′초범 또는 동종 전과가 없다′ 50건으로 두 번째로 많았습니다. 대부분 두 가지 이유를 충족해 형 집행을 유예받거나,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음주나 ′뺑소니′인 경우에도 법원은 선처를 했습니다. 혈중알코올농도 0.2%가 넘는 만취 운전으로 횡단보도 인근에 서 있던 6살 어린이를 치고, 도주까지 한 화물차 운전자. 이 운전자에겐 음주운전 전과가 3번이나 있었지만, 법원은 ″전과가 이미 10년이나 지난 일″이고 ″합의를 했다″며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습니다.
혈중알코올농도 0.199%로 음주 운전을 하다 어린이 2명을 다치게 한 운전자도,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으로 선처받았습니다. 이 운전자 역시 음주운전 적발 전과가 있었습니다. 어린이를 치고 차에서 내리지 않고,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운전자 6명도 모두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3년 전 민식이법 시행 당시, 높은 형량에 운전자가 과잉 처벌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컸습니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어린이를 피할 수 있느냐며 운전자들의 불만 섞인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실제 도로 위에서 사고 원인을 제공한 건 누구였을까요?
우려와 달리 열에 여덟은 운전자 잘못이 컸습니다. 판결에 담긴 93건의 사고 가운데 50건이 운전자의 신호위반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40%에 달하는 37건의 사고 역시, 운전자가 앞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부주의하게 운전하다 난 사고였습니다. 술을 마신 운전자가 2명, 무면허 운전자도 1명 있었습니다. 93건 중 77건, 82%가 운전자 과실 때문이었고, 피해자의 과실이 인정된 경우는 16건에 불과했습니다.
스쿨존 안 교차로에서 우회전을 하면서, 잠시 멈추긴커녕 스마트폰에 한눈을 팔며 파란불을 보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아이를 부딪힌 운전자. 스쿨존을 지나며 차량 안에 벌레를 잡는다는 이유로 앞을 제대로 보지 않다가, 인도 방호울타리를 치고, 인도에 서 있던 5살, 7살 아이를 크게 다치게 한 운전자도 있었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font-size:23px″>■ ″아이가 갑자기 뛰어들어 무단횡단했다″고 하자 법원 대답은?</strong>
물론 아이들의 잘못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지난 2021년 부산의 한 스쿨존에서 무단횡단하던 7살 어린이가 차에 치였습니다. 사고 운전자는 ″반대편에서 오는 차량 뒤로 어린이가 무단 횡단해서, 미리 발견하거나 예측하기 어려웠다″며, 잘못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무단 횡단하는 어린이를 발견했을 때엔 이미 너무 가까이 있어, 즉시 멈췄어도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당시 어린이가 반대편 인도에서 10초간 차량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차도를 횡단하려고 시도하는 상황이 확인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어린이 보호구역을 진행하던 운전자에게는 전방과 좌우를 철저히 주시하고 시야가 가리는 방향에서도 어린이가 나타나는 돌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운전할 의무가 있다″며 사고 운전자의 잘못을 꼬집었습니다.
언제든 어린이가 나타날 수 있는 스쿨존이고, 인도에 서서 건너려는 의사를 10초간 보이고 있었다면 당연히 운전자가 주의를 기울여 속도를 줄이거나 멈춰 섰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또한 ″어린이는 성인에 비해 지각능력과 상황판단능력,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이 부족하고, 언제든지 예측 밖의 행동을 할 수 있으며, 주로 뛰어다니는 경향이 있고 몸이 작아 잘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작은 충격으로도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어린이는 원래 뛰어다니는 존재, 크게 다치기 쉬워 보호가 필요하다는 어쩌면 당연한 얘기를 다시 한번 강조한 겁니다.
최근 1년간 확정된 판결에 다행히 사망사고는 없었습니다. 3년으로 범위를 넓혀 ′민식이법′ 시행 뒤 확정된 사망사고 판결문 5건을 더 살펴봤습니다.
지난 2020년 5월, 전북 전주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SUV차량이 2살짜리 유아를 덮쳤습니다. 차량은 불법유턴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민식이법′ 시행 뒤 첫 사망사고가 발생한 겁니다. 1심 결과는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습니다. 아이가 숨진 사고 5건에서도 실형은 단 1건 뿐. 4건은 집행유예로 사실상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솜방망이 처벌″에 대해 법조계에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① 과실범
기본적으로는 교통사고는 말 그대로 ′사고′라서, 법적으로는 과실범이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고의가 아닌 실수라는 점을 고려해주고 있다는 겁니다. 우지혜 변호사는 ″실형 선고로 인신구속까지 시키는 것은 피고인에게는 회사 해고나 가정 파탄 같은 사회 생활 단절의 의미까지 가지고 있어, 과실범에게 재판부가 실형 결정을 하는 것을 조심스러워 한다″고 말했습니다.
② 양형기준의 부재
혐의에 따라 법정형의 범위가 넓으면, 판사마다 다른 판단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법원은 양형기준을 따로 설정하는데, 민식이법에는 처벌 수위의 대략적인 틀인 양형기준조차 없었습니다. 변호사들마저 ′수도권 법원이 다른 지역보다 처벌이 약하다′, ′판사마다 다르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할 정도였습니다. 결국 대법원은 최근 ′민식이법′ 시행 3년 만에, 뒤늦게나마 양형기준을 마련해 7월부터 적용할 예정입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font-size:23px″>■ 스쿨존 사고 처벌 강해질까? ″음주 사망사고 내면 최고 15년형″</strong>
대법원의 새 양형기준은 스쿨존 음주운전으로 아이가 다치면 최고 10년 6개월, 음주 사망사고를 내면 최고 15년, 뺑소니까지 하면 징역 23년형에 처할 수 있다고 명시했습니다. 대법원 관계자는 ″형량이 너무 낮다는 국민적 감정 요구에 따라 양형위원회에서 양형기준을 만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운전자의 잘못이 명백한 경우라면 처벌수위가 꽤 높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전과가 있거나 재범 위험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경우엔 집행유예가 아닌 실형 선고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양형기준은 권고적인 효력만 있어 판사들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양형기준 범위에서 벗어날 경우 사유를 기재해야 하기 때문에 대다수가 기준에 맞춰 선고합니다. 윤준석 변호사는 ″기준이 생겼으니 일률적이고 일관된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가중처벌과 감경요소가 정해진 만큼 전보다는 처벌 수위가 올라갈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우지혜 변호사도 ″운전자가 음주운전이나 도주를 한 경우 지금까지와 비교하면 상당히 양형 기준을 올려서 처벌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습니다.
새 양형기준은 7월부터 적용되지만, 검찰은 이미 구형량을 높이고 있습니다. 지난 2일 검찰은 스쿨존에서 만취운전 사망 사고를 내고 도주한 ′이동원군 사건′ 가해 운전자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하면서 ″최근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양형 기준을 대폭 상향한 점을 고려해달라″고 덧붙였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font-size:23px″>■ 스쿨존 사고 막으려면‥″시설 보완·교통문화 개선 동반해야″</strong>
물론 엄벌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스쿨존 사고 예방을 위해 전문가들은 시설을 보완하는 것과 교통문화를 개선하는 것, 두 가지 측면을 언급했습니다.
① 시설 보완
판결문에서는 스쿨존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현실이 엿보였습니다. 3년 전 시행된 ′민식이법′은 스쿨존에는 반드시 신호등을 설치하라고 규정했는데, 4건 중 1건꼴로, 스쿨존인데도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나 교차로에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운전자가 스쿨존에 진입한 걸 바로 알아챌 수 있도록 스쿨존 구조 자체를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며 해외 사례도 언급했습니다. 예를 들면 일부러 도로를 S자로 만들거나, 울퉁불퉁하게 만들어 운전자가 자연스럽게 알게 만든다는 겁니다.
이는 운전자들이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도록 하는 물리적 장치로 교통 안정 조치(traffic calming measures)라고 하는데,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에서는 폭넓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아주대 시스템공학과 유정훈 교수는 ″누구든지 운전하다가도 자연스럽게 ′스쿨존 들어가네′라고 자연스럽게 인지할 수 있도록 그렇게 구조를 바꿔주면, 우리가 자율 신경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가도 물리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② 교통문화 개선
최근 어린이 사망사고가 발생한 수원 교차로는 우회전 신호등이 설치된 곳이었습니다. 우회전 신호등이 설치된 건 전국에 52곳뿐인데, 그 중 한 곳에서 우회전 사고가 난 겁니다. 버스는 우회전 신호등이 황색에서 빨간색으로 바뀌는데도 그대로 횡단보도 쪽으로 우회전했습니다.
시설이 갖춰져도 사고를 막지 못한 겁니다. 우회전할 때 일시 정지하는 건, 교통 선진국에선 당연한 교통 예절인데 우리나라에선 멈추지 않고 빠르게 지나가려는 운전자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스쿨존에서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노인 10만 명당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자 수 9.7명, 한국은 OECD 나라 가운데 노인 보행자 사망자 수에서 1위 자리를 10년째 차지하는 불명예를 안고 있습니다. 보행자가 있는 곳에선 안전운전이 습관처럼 자리 잡도록 문화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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