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10-23 09:24 수정 | 2023-10-23 10:05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참사 예고 첫 신고, 문제의 골목 지목했다</strong>
작년 10월 29일 저녁 6시 34분. 한 여성이 경찰에 112신고를 접수합니다.
″이태원 해밀턴 호텔 골목 이마트24, 사람이 내려 올 수 없는데 계속 밀려 올라오니까 압사당할 것 같아요. 겨우 빠져나왔는데, 통제 좀 해주셔야 될 것 같은데요. 지금 너무 소름끼쳐요.″
신고자는 ′겨우 빠져나왔다′, ′압사′, ′소름끼친다′는 표현을 써가며, 3시간여 뒤 참사가 발생한 좁은 골목의 위험성을 정확히 예고했습니다.
″그 골목이 굉장히 좁은 골목인데, 이태원 역에서 내리는 인구가 다 올라오는데 거기서 빠져나오는 인구와 섞이고 있어요″
MBC가 확보한 이태원 수사기록에 따르면, 신고 여성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의 조사에서, 신고 당시 상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자녀 한명, 남편과 저녁을 먹으러 나왔는데 이미 이태원 거리는 이동 자체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남편을 앞세우고 가는데 어느새 자녀가 인파에 압박을 받고 있었고, 간신히 한 주점 앞 공간에서 숨을 골랐습니다.″ 그녀가 말한 곳은 바로 참사가 난 골목 주변이었습니다.
신고 여성은 또 ″그 골목을 잘 안다″며 경사가 심하고 위험해 다른 길로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결국 외식을 포기하고 귀가했지만, ″상황을 알리기 위해″ 경찰에 신고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당시 이태원파출소 출동일지엔 다행히 <강력 해산 조치>했다고 기록됐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다치고 난리′라는데 ″인도로 안내 후 종결″</strong>
그런데, 강력 해산했다는 조치 이후에도 참사 직전까지 ′압사′를 우려하는 신고는 계속됐습니다. 내용은 더 긴박해지고, 신고 간격도 짧아집니다.
같은날 오후 8시 9분, ″사람들이 너무 많아 넘어지고 다치고 난리″라는 신고. 이미 부상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내용인데도, 이번엔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대상자들 인도로 안내</strong>했다는 엉뚱한 내용으로 종결 처리됐습니다. 당시 용산서 112상황실 근무자는 검찰 조사에서, ″출동자가 현장을 파악하고 있을거라 생각했다″고 출동요원에 책임을 돌렸습니다.
이어 오후 8시 33분엔 또다시 ″인파가 너무 몰려서, 길바닥에 쓰러지고 막 사고 날 것 같다″, ″좀 큰일 날 것 같다″는 신고가 접수됩니다. 위치 역시 첫번째 신고자가 잠시 몸을 피했다는 주점과 동일한 곳이었습니다. 신고자는 추후 수사팀에 ″자신이 80kg 넘는 체구인데도 한번에 밀렸다, 여성 2명이 쓰러지는 것을 목격했다″고 긴박했던 당시를 전했습니다.
MBC가 입수한 당시 이태원파출소의 112신고사건처리표에 따르면, 이 신고는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세계음식거리에 경찰관 배치됨을 고지</strong>하는 것으로 마무리됐습니다. 용산서 112상황실의 무선 지령도, 파출소 현장요원의 출동도 없었습니다. 파출소에서 입력한 메시지를 확인한 용산서 112상황실은 별다른 문제 의식 없이 그대로 최종 종결처리 했습니다.
20분 뒤 접수된 신고도 마찬가지. ″압사 당하고 있어요, 아수라장이에요″라는 신고는 신고자와 통화해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주변에 경찰관 배치를 알리는 것</strong>으로 종결됐습니다. 이때도 용산서 112상황실 팀장은 이태원 파출소 현장 근무자 판단을 문제 삼았습니다. ″위험한 상황이라면 무전 보고했을 것″이란 얘깁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전화로 안내? 신고자들 ″전화 온 적 없다″ 진술</strong>
더 황당한 건, 전화로 경찰관 배치 등을 전화로 안내했다는 처리 내용조차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점입니다. 수사보고서에 담긴 신고자들의 진술 내용에 따르면, 전화로 처리했다고 돼 있는 내역과 달리 최소 2건의 신고는 실제 통화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경찰관 배치됨 고지</strong>로 종결 처리 내역이 기재된 오후 8시33분 신고자는, ″따로 전화 받거나 조치사항을 통보 받은 적 없다″고 진술했습니다. 또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경찰관 배치를 알렸다</strong>고 써 있는 오후 8시53분 신고자 역시 ″너무 끔찍해서 한강진역쪽으로 빠져나왔다″며 ″경찰 조치는 모르고, 따로 연락온 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전화 종결 처리조차 불명확한 이 신고는 생명과 신체에 위험이 있는 것으로 보고 ′코드 1′으로 분류한 신고였습니다.
참사 발생 추정 시간은 밤 10시 15분. 이때까지 ″대형사고 일보직전″, ″진짜 사람 죽을 것 같다″는 긴박한 신고가 추가로 들어왔지만, 경찰의 안이한 대응이 반복됐습니다. 결국 11번의 신고, 즉 159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11번의 기회는 무시됐고, 끝내 참혹한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참사 막자는 시민 신고에도 작동 안한 112시스템</strong>
당시 신고한 시민들에 대한 수사보고서와 진술서에 따르면, 참사를 예고한 이들은 자신의 안전보다 혹시 모를 사고로 다칠 다른 이들을 우려해, ″인근 가게로 피신하고″, ″무대 위로 뛰어올라″ 심지어 ″호텔 담벼락을 넘어선 뒤″ 112 신고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러나, 자발적 신고에도 112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습니다.
신고 중 2건은 서울청 112상황실 차원에서 소방본부에 공동 대응을 요청했지만, 소방본부는 당사자가 안전해 구급자가 필요 없다는 이유로 별다른 대응 없이 취소 처리했습니다. 소방당국이 연락해보니 ″현장 교통 통제와 질서유지가 필요한 상황″이었고, 이는 ″경찰 업무″라는 겁니다. 역으로 용산서 112상황실 지령요원은 소방공동 대응 요청이 취소됐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더욱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인명 피해가 우려되는 재난에 공조하겠다는 취지가 무색하게, 서로를 핑계삼은 겁니다.
경찰 매뉴얼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112신고접수 매뉴얼은, ″다수 신고자의 중복 신고를 동일 사건으로 예단해선 안되고 비출동 종결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대형 재난, 재해 등 동시다발 신고로 예상되는 경우 전 근무자에 전파해야한다″고 돼 있습니다. 압사 우려를 전한 11건의 신고가 이에 해당합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대통령 없는 대통령 관저부터 걱정한 용산서장</strong>
이태원 파출소 근무 직원은 MBC에 당시 ″성추행 등 다른 신고에 출동하고 있었다″며 ″어떻게 일일이 다 나가냐″고 반문했습니다. ′현장 출동 없는 전화 종결 처리′는 불가피한 현실이라는 고백입니다. 하지만, 이날 인력 문제는 경찰 지휘부가 마음만 먹었다면 해결될 수 있었다는 게 검찰 시각입니다. 용산 대통령 집무실을 상대로한 집회를 관리하기 위해 불과 1.8킬로미터 거리에, 60여개 기동대가 배치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용산서의 관심이 어디에 쏠렸는지를 보여주는 사건도 수사 기록에 나타납니다. 삼각지 부근 대통령실 집무실 앞 집회가 참사 1시간여 전인 밤 9시 최종 종료되면서, 이임재 전 용산서장은 늦은 저녁 식사 뒤 이태원 파출소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10시쯤 도착한 녹사평역에서부터 차가 꽉 막히면서, 이 전 서장은 용산구청쪽으로 방향을 튼 뒤, 다시 경리단길과 남산소월로 등을 거쳐 크게 우회하게 됩니다. 걸어서 15분이면 도달한 거리인데도, 이태원 파출소에 밤 11시 5분 도착할 때까지 1시간 이상 더 흘려보냅니다.
운전요원은 검찰에서 ″서장이 차가 이렇게 막히면 대통령 관저는 어떻게 하냐고 물었고, 관저도 순찰할 필요가 있겠다고 가자고 해서 이동했다″고 돌아간 이유를 진술했습니다. 검찰은 재판에 증인으로도 나온 이 운전요원에게 ″관저 앞 교통이 시민의 안전과 관련이 있냐″고 꼬집었고, 운전요원은 ″이해는 할 수 있었다″고 답했습니다. 다만 운전요원은 변호인의 반대 심문에 ″이 전 서장이 대통령 관저에 가자고 한 건 아니″라고 진술을 변경하면서도, ″′한남동엔 관저도 있지 않냐, 상황을 다 돌아보자′한 건 맞다″고 증언했습니다.
이때 관저는 내부 수리 등을 이유로 비어있었습니다. 이 전 서장이 아직 윤석열 대통령이 입주도 하지 않은 관저 앞 교통상황을, 이태원 핼러윈 인파 관리보다 더 신경 쓴 것으로 보이는 대목입니다. 이 전 서장이 이동 중이던 밤 시간엔, 압사 우려 신고가 이어지고, 인파 관리를 하라는 무전이 전파됐습니다. 이에 대해, 이 전 서장은 ″앞으로 관저에 대통령이 오면 어떻게 하냐는 취지일 뿐″이라며 ″무전은 듣지 못했고, 당시 긴박한 상황인 줄 몰랐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MBC는 10.29 이태원 참사 수사기록 1만 2천여쪽을 확보해 분석했습니다. 기록엔 경찰과 소방관, 공무원, 또 생존자와 목격자 등 169명의 진술과 161건의 수사보고서가 담겨 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정말 과중한 업무 때문에 경찰이 112신고 대응에 실패했는지를 살펴봤습니다. 또 본연의 업무인 범죄와 위험 신고 대응이 아닌, 경찰이 다른 상황에 주의를 기울여온 정황도 발견했습니다. 오늘(23일)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뉴스데스크</strong>에서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