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장슬기

여론조사는 잘못이 없다?‥'샤이'보다 '샤우트' 유권자

입력 | 2025-01-12 08:55   수정 | 2025-01-12 12:46
여론조사로 시끄러운 한 주였습니다. 딱 일주일 전 발표된 직무 정지 상태의 대통령 지지율이 40%(아시아투데이-한국여론평판연구소, 1월 3일-4일, ARS)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부터 시작됐는데, 취임 초기를 제외하고는 보기 어려웠던 숫자라 더 화제가 됐습니다.
지난 금요일까지 모두 12건의 조사가 발표됐는데, 이 가운데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 여부를 물은 건 4건 입니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에는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에 대해 여론조사를 실시하지 않았습니다. 보통 우리가 ′대통령 지지율′이라고 이야기하는 건 사실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입니다. ′대통령으로서 직무를 얼마나 잘 수행하고 있다고 보느냐′나 ′대통령으로서 국정운영을 얼마나 잘하고 있습니까′라고 묻는 게 보통인데, 직무가 정지되어 있으니 물을 수가 없는 겁니다. 대통령과 관련한 조사는 영어로 ′job approval rating′이라고 부릅니다. 대통령으로서의 일(job)을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측정한다는 의미일 겁니다.

그런데 윤 대통령 지지를 물었던 한국여론평판연구소의 경우 ′지지하느냐′를 물었습니다. 하지만 ′지지하느냐′와 ′잘 하고 있느냐′는 측정할 수 있는 내용이 서로 다릅니다. 김봉신 메타보이스 부대표는 ″지지하느냐고 묻는 것은 관성적인 지지 습관, 그러니까 투표 행위와 더 비슷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합니다. 김 부대표는 ″보통은 지지하느냐고 물었을 때 가장 높은 수치가 나오고, 그 다음이 직무 평가, 호감도 순″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결국 질문에 따라 측정되는 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탄핵 직전 발표됐던 한국갤럽의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 11%(24.12.10~12, 전화면접, 한국갤럽 자체조사)나 탄핵 직후 발표된 NBS의 16%(24.12.16~18, 전화면접, NBS 자체조사)와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겁니다.

다만, 이런 질문 방식의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40%라는 숫자는 작지 않습니다. 정치적인 상황을 제외하고 여론조사의 방식과 응답자의 측면에서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b style=″font-family:none;″>① 여론조사 도대체 누가 답하는 거야?</b>

사람이 묻는 전화면접과 기계가 묻는 ARS는 결과에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선거가 가깝지 않은 시점에 지지 정당을 물어보면, 보통 전화면접에서는 20%, ARS에서는 10% 정도가 ′지지 정당이 없다′거나 ′잘 모르겠다′고 답합니다. 그래서 ARS에 정치적 관심이 많은 고관여층이 더 많이 표집된다는 가정을 합니다. 비단 ARS뿐만 아니라 전화면접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정치 참여 방식 중 하나인 여론조사에 더 많이 응답한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가장 오랜 기간 정치 여론조사를 진행한 한국갤럽에 따르면, 똑같이 1천 명을 조사하더라도 때에 따라 자신의 이념 성향을 진보라고 답한 응답자가 더 많은 기간이 있고, 보수라는 응답이 더 많은 기간도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부터 문재인 정부 초반까지는 자신을 진보라고 생각하는 유권자들이 좀 더 많았고 이후에는 비슷하거나 보수가 좀 더 많은 수준이었던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념 성향이라는 건 한 번 결정되면 잘 바뀌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유권자들의 이념 지형이 바뀌었다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여론조사에 응답하는 ′정치적 고관여층′이 달라졌다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인 설명으로 보입니다.

정한울 ′한국사람연구원′ 원장은 이에 대해 ″여론조사는 정치적 울분이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응답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선거에서 패배하거나,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렸거나, 또는 정치 상황에 크게 화가 난 진영의 응답자들이 더 적극적이라는 겁니다. 이런 경향은 ARS에서 더 크게 드러난다고 설명했습니다. 정치적인 의사를 표현하고 싶은 유권자들에게 비용이 가장 적게 드는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직후 실시한 ARS와 전화면접 결과를 보면, 국민의힘은 두 조사형식 사이에 지지율 차이가 크지 않았습니다. 반면 민주당 지지율은 ARS가 전화면접보다 10%p 넘게 더 높았다는 점에서 이러한 경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b style=″font-family:none;″>② 누가 정치적 고관여층인가?</b>

이번 주 나온 여론조사 결과들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탄핵과 내란죄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더 많이 화가 나고 더 적극적으로 여론조사에 응답하는 건 보수층이라는 분석입니다. 물론 탄핵을 찬성하는 유권자들도 영하10도의 추위를 불사할 만큼 화가 많이 나 있긴 하지만, 현재 더 다급한 사람은 탄핵에 반대하는 유권자층이라는 겁니다.

정기적으로 여론조사를 발표하는 한 조사업체 관계자는 ″평소보다 조사 시간이 짧게 걸렸다″고 말했습니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등록된 데이터를 확인해보니 12.3 비상 계엄 이전과 비교해서 3시간 정도 단축됐습니다. 이는 여론조사 전화를 받자마자 끊어버리는 ′응답 거절자′가 다른 때에 비해 적었다는 의미입니다. 보통 선거를 앞둔 경우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 관계자는 ″현재 정치적으로 활성화된 사람이 많다는 의미″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주에 나온 조사 중에 응답자의 이념 성향을 물은 조사를 보면, 진보 성향의 유튜브 채널에서 운영하는 ′여론조사 꽃′과 2003명을 조사한 조원씨앤아이-스트레이트뉴스 조사를 제외하고는 보수가 진보보다 최대 1.7배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갤럽 기준으로 지난해 11월과 12월 보수와 진보 응답자가 비슷하거나, 진보가 더 많았던 걸 고려하면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진 셈입니다.

<b style=″font-family:none;″>③ ′샤이′ 이니고 ′샤우트′ 유권자</b>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과 탄핵 정국 이후에는 ′샤이 보수′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응답하기에 부끄럽거나 보수라는 것 자체를 숨기고 싶어하는 경향이 관측됐다는 겁니다. 당시 자유한국당은 ′샤이 보수,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토론회를 열고 보수층의 응답률이 떨어져 민심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만약 이번에도 비슷한 매커니즘이 작동했다면, 이번 주 여론조사에도 보수층 유권자들은 ′샤이′해 여론조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2025년의 보수층은 ′샤이′하기보다는 오히려 ′샤우트′를 하고 있습니다. 9년 전과 매우 다른 행보입니다. 왜 이렇게 양상이 다른지 한 조사회사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에는 유튜브가 이 정도로 활성화되어 있진 않았다″고 원인을 진단했습니다. 유튜브가 도대체 어떤 영향을 미쳤다는 걸까요?

일반적으로는 내가 소수 의견을 가졌다고 느껴질 때 의견 표명을 꺼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고립에 대한 두려움과 주류에 속하고 싶은 인간의 본성 때문에 그렇다고 하는데, 그러면서 점점 소수의 의견이나 집단은 약화되는 ′침묵의 나선 현상′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다루는 유튜브가 나타나면서, 더 이상 내가 소수라고 판단하지 않게 됐다는 겁니다. 실제로는 내가 소수 의견을 가졌더라도 말입니다. 게다가 당시 자유한국당과 다르게 ′탄핵 트라우마′를 내세우고 있는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과 궤를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 관계자는 또 알고리즘으로 비슷한 콘텐츠만 반복적으로 추천하는 유튜브의 ′필터 버블′을 통해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졌다는 진단도 했습니다. 양극화를 좀 더 쉬운 말로 풀면, ′비토′ 정서가 강하다는 겁니다. 상대방 진영은 절대 안 된다는 겁니다. 이때 상대 진영에 대한 반감과 혐오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내가 지지하는 정파에 대해서는 옳고 그름이 흐려지는 경향도 함께 발생합니다.

<b style=″font-family:none;″>그래서, 여론조사 필요한가요?</b>

정치적 격변기에는 여론조사가 ′널뛰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선거 때 나오는 여론조사에서도 ′골드 크로스′ 등이 발생할 때는 여론조사마다 결과값이 크게 다르게 나옵니다. 비상계엄과 탄핵, 그리고 현직 대통령 체포 시도까지, 헌정 사상 ′처음′이라는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여론조사 역시 ′처음′ 겪어보는 상황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만큼 조사를 해석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명태균 씨 조작 사태 이후 여론조사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여론조사는 여전히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정치도구입니다. 유권자에게는 정치 지형을 알려주고, 정치인에게는 올바른 결정을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번 주 나온 조사들을 믿을 수 없다는 분들도, 이 조사를 믿어야 한다는 분들도 앞으로 나올 여론조사의 ′추이′을 찬찬히 뜯어보면 진짜 여론이 무엇인지, 답이 나올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