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구나연

다자주의 부순 트럼프의 역설‥시험대 오른 '가자 평화위'

입력 | 2026-01-31 10:00   수정 | 2026-01-31 13:08
<div class=″ab_sub_heading″ style=″position:relative;margin-top:17px;padding-top:15px;padding-bottom:14px;border-top:1px solid #444446;border-bottom:1px solid #ebebeb;color:#3e3e40;font-size:20px;line-height:1.5;″><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ab_sub_headingline″ style=″font-weight:bold;″>초청장 하나로 시작된 외교적 시험대</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div></div>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초청장이 국제사회를 뒤흔들었습니다. 가자지구 평화 재건을 명분으로 삼은 ′가자 평화위원회′에 참여해달라는 겁니다. 60여 개 국가가 초청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한국 역시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정부는 ″적극 검토 중″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div class=″ab_sub_heading″ style=″position:relative;margin-top:17px;padding-top:15px;padding-bottom:14px;border-top:1px solid #444446;border-bottom:1px solid #ebebeb;color:#3e3e40;font-size:20px;line-height:1.5;″><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ab_sub_headingline″ style=″font-weight:bold;″>다자주의 부정해 온 트럼프의 역설</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div></div>
<blockquote style=″position:relative; margin:20px 0; padding:19px 29px; border:1px solid #e5e5e5; background:#f7f7f7; color:#222″>″글로벌 거버넌스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오늘부터 미국은 스스로 결정할 겁니다. The era of global governance is over. From this day forward, America will decide for itself.″</blockquote>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두 번째 취임 연설에서 다자주의를 시대착오적인 질서로 규정했습니다. 글로벌 거버넌스의 종말과 함께 미국의 단독 결정을 선언했습니다.

그의 말은 곧 행동으로 옮겨졌습니다.

<blockquote style=″position:relative; margin:20px 0; padding:19px 29px; border:1px solid #e5e5e5; background:#f7f7f7; color:#222″>″국제기구들은 미국 국민이 아닌 자기들 관료 조직을 위해 존재합니다. International organizations exist to serve their own bureaucracies, not the American people.″</blockquote>

약 2주 뒤, 트럼프는 세계보건기구 WHO 탈퇴를 결정하는 특별 행정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동안 미국이 제공한 가치와 돈, 인력에 비해 미국에게 돌아온 것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국제기구의 정당성 자체를 부정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은 유엔으로 향했습니다.

<blockquote style=″position:relative; margin:20px 0; padding:19px 29px; border:1px solid #e5e5e5; background:#f7f7f7; color:#222″>″유엔은 말만 하고, 우리는 행동한다. The UN talks. We act.″</blockquote>

가자지구 재건에 대한 구상을 묻는 질문에 트럼프는 유엔을 평가절하하고 무력화했습니다.

지난 7일, 결국 트럼프 행정부는 66개 국제기구에서의 탈퇴 방침을 공식화했습니다. 그 안에는 유엔 관련 기구 31개가 포함됐습니다. 백악관 팩트시트와 국무부 발표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그렇게 유엔을 등진 트럼프가, ′가자 평화위′라는 새 판을 짠 겁니다.

<div class=″ab_sub_heading″ style=″position:relative;margin-top:17px;padding-top:15px;padding-bottom:14px;border-top:1px solid #444446;border-bottom:1px solid #ebebeb;color:#3e3e40;font-size:20px;line-height:1.5;″><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ab_sub_headingline″ style=″font-weight:bold;″>″본 적 없는 국제기구″</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div></div>
트럼프 대통령이 보낸 초청장에는 헌장 초안이 동봉됐습니다.

외신을 통해 알려진 헌장 초안에 따르면 의장은 ′미국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가 맡습니다. 임기에 대한 규정이 없고, 의장 교체나 해임 절차에 대한 언급도 없어 사실상 그에게는 종신적인 지위가 부여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회원국 임기는 최대 3년, 즉 3년마다 가입 여부를 갱신해야 합니다. 하지만 예외가 존재합니다. 정관 발효 첫해에 우리 돈 1조4700억 원에 달하는 현금 10억 달러를 초과 기여하면 임기를 무기한으로 연장할 수 있게 합니다.

외교가에서는 대체로 ′전례 없다′, ′본 적 없다′는 반응이 나옵니다. 유엔과 NATO, G7 등 기존 국제 질서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구조의 기구가 등장한 셈입니다.

다자주의의 기본 원칙과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유엔 헌장은 ′모든 회원국의 주권 평등′을 원리로 선언합니다. 각국이 힘, 크기와 무관히 같은 자격을 부여받는다는 의미입니다. 트럼프가 구상한 가자 평화위는 현금 10억 달러가 의무적인 가입비가 아니라고 강조하지만, 결국 그 돈을 낸 나라와 내지 못한 나라 사이 구분이 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발언권에 차등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우리 정부가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이유도 이곳에 있습니다.

따져볼 게 많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헌장 초안과 유엔 안보리의 기존 가자 관련 결의안을 종합해 보면 국제법적으로 문제 삼을 만한 요소는 없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표면적으로는 각국의 자발적 참여를 권장하고, 인도적 목적을 가지며, 유엔 헌장과도 충돌하지 않습니다. 강제력이나 군사행동을 수반하는 내용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유엔 안보리가 직접 결의안을 채택한 만큼, 국제법적으로 존재 근거도 명확한 셈입니다.

<div class=″ab_sub_heading″ style=″position:relative;margin-top:17px;padding-top:15px;padding-bottom:14px;border-top:1px solid #444446;border-bottom:1px solid #ebebeb;color:#3e3e40;font-size:20px;line-height:1.5;″><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ab_sub_headingline″ style=″font-weight:bold;″>합법성이 곧 ′통제 불가능성′?</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div></div>

국제법상 위법 행위에 대해서는 제재 수단이 존재합니다. 기괴하지만 합법적인 시도에 대해서는 국제 사회가 개입할 여지가 극히 제한됩니다.

트럼프의 ′가자 평화위′ 구상이 딱 그러하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합법성이라는 방패 뒤에서 국제사회의 제재·차단 명분을 원천적으로 약화시킨 겁니다. 막을 방법이 없다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초청장을 받은 60여 개국 중, 대다수 국가들이 명확한 의사를 밝히지 못하고 골머리를 앓는 이유입니다. ′가자지구 평화 재건′이라는 명분 자체는 반대하기 어려운 만큼, 결국 각국은 미국과의 관계, 기존 국제질서에 대한 입장, 향후 확장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종합해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적 셈법에 따라 참여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중국을 예시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게도 ′가자 평화위′ 초청장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시진핑 국가주석은 최근 ′유엔 수호′를 언급하며 우회적으로 가자 평화위 출범을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미국과 패권 경쟁 구도에 있는 중국은, 미국이 단독 의장을 맡는 국제기구로 갈아탈 유인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현 체제가 국익에 부합하다는 판단입니다.

유럽 다수 국가들도 부정적인 입장입니다. 가자지구 문제보다는 트럼프식 외교에 대한 반감을 표현하는 것으로 읽힙니다. 참여 여부를 빌미로 관세 압박을 행사하고, 초청·배제를 기준으로 국제 사회를 가르려는 행위를 거부하는 겁니다.

<div class=″ab_sub_heading″ style=″position:relative;margin-top:17px;padding-top:15px;padding-bottom:14px;border-top:1px solid #444446;border-bottom:1px solid #ebebeb;color:#3e3e40;font-size:20px;line-height:1.5;″><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ab_sub_headingline″ style=″font-weight:bold;″>′가자′에서 멈출 것인가</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div></div>
가자 평화위의 확장 가능성에 대해서도 고려해보아야 합니다.

유엔을 대체하기 위한 국제기구를 구상한 것 아니냐는 우려는 일찍이 제기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공식 석상에서 관련 질문이 나올 때마다 이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가자 평화위가 표방하는 ′분쟁 종결 + 재건′의 프레임은 가자지구뿐 아니라 레바논, 예멘, 나아가 우크라이나에까지 확장 적용될 수 있습니다. 가자 사태가 해결되면 평화위의 역할이 다른 분쟁에까지 확대할 가능성이 있는 겁니다. 가자 평화위로 시작하는 이 기구가 어디까지 커질지 아무도 담보할 수 없습니다.
출범 초기에는 ′초청장′이라는 이름으로 각국에 참여에 대한 선택권을 맡겼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습니다. 프랑스에는 초청 거부를 이유로 관세 압박을 가했고, 캐나다는 트럼프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가 초청 대상에서 공개 배제됐습니다.

각국의 외교적 선택이 존중받지 못하고, 강대국 미국과의 관계에서 보상과 불이익의 문제로 전환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div class=″ab_sub_heading″ style=″position:relative;margin-top:17px;padding-top:15px;padding-bottom:14px;border-top:1px solid #444446;border-bottom:1px solid #ebebeb;color:#3e3e40;font-size:20px;line-height:1.5;″><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ab_sub_headingline″ style=″font-weight:bold;″>한국의 선택은</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div></div>
지난 목요일, 관훈토론회에서 관련 질문을 받은 조현 외교부 장관은 ″갑작스러운 통보인 만큼 평가할 시간이 필요하다″면서도 ″평화위가 유엔을 대체하지는 못한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우선 국제 질서 동향을 유심히 살피며 유사 입장국의 선택을 예의주시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웃나라 일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참여 여부를 두고 심사숙고 중입니다. G7 국가로서 비슷한 입장에 있는 국가들과의 내부 조율도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다카이치 총리가 취임 이후 아직 한 차례도 방미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4월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전 방미를 추진하며 ′평화위 참여′에 대한 대답을 들고 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한국에게 주어진 선택지 중, 비용 없는 선택지는 없습니다. 다자주의 복원이 아닌, 다자 형식을 빌린 새로운 미국 중심 질서의 시험대에 가까운 가자 평화위. 우리 정부는 지금, 통제할 수 없는 실험에 동참하는 첫 국가 중 하나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끊임없이 물어야 합니다.

한국의 선택은 참여 여부를 넘어, 앞으로 어떤 국제질서의 편에 설 것인가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