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앵커: 엄기영,백지연

경남 김해 금관가야 왕릉 발굴[전용성]

입력 | 1990-07-10   수정 | 199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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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 가야 왕릉 발굴]

● 앵커: 경상남도 김해시 대성동의 고분군에서 금관가야의 왕릉으로 추정되는 고분이 처음으로 발굴이 됐습니다.

특히 이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금관가야의 활동 영역이 일본에까지 확산이 됐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어서 그동안 일본 측이 주장해 온 임라일본부설을 (판독불가) 중요한 자료로 평가가 되고 있습니다.

부산 문화방송 전용성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 기자: 여기 갈퀴 모양의 청동 방패 장식이 우리나라에서는 (판독불가)로된 파형동입니다.

또 저기 묻혀 있는 원통 모양은 당시 제사장의 권위를 상징하는 통형등입니다.

이 유물들은 (판독불가) 당시 금관가야의 활동 영역이 일본에까지 크게 미쳤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중요한 유물로 평가가 되고 있습니다.

경성대학교 박물관 팀은 경남 진해시 대성동 고분군의 구릉의 정상부에 축조되고 출토 유물이 호화스럽다는 점 또 지금까지 발견된 묘 가운데 최대 규모인 길이 8미터가 넘는 대형 목각료라는 점에서 수장급의 왕릉묘가 확실하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이번에 처음 출토된 파형동기와 동형동기는 연대상으로 금관가야에서 일본으로 건너갔을 가능성이 높아 그동안 일본이 주장해 온 임라일본부설은 설득력을 잃게 됐습니다.

● 신경철(경성대 사학과 교수): 제2세기에 자리 잡고 있었던 가야가 4세기 말 5세기 초 이른 시기에서 교섭 능력이 대외 활동이 해외까지 확대되고 있었다.

그러한 것을 증명해 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 기자: 또 대성동 고분에서 150여점의 철등이 다량 출토되고 금동 말안장이 발굴된 것은 금관가야가 철을 장악한 강력한 정치 집단이며 문화적, 정치적으로 선진 지역이었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부산에서 MBC 뉴스 전용성입니다.

(전용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