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앵커: 이상열,김은주

해마다 수백명 사망, 실종되는 현대판 노예선 원양어선[최용익]

입력 | 1991-12-22   수정 | 1991-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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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수백 명 사망, 실종되는 현대판 노예선 원양어선]

● 앵커: 현대판 노예선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바로 해마다 백 수십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고 있는 원양어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요즘과 같은 개방된 시대에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은 간부급 선원들의 상습적인 폭행과 수십 년 동안 내려온 구조적인 비리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용익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기자: 지난 18일 부산 해양경찰청 강당에서는 오징어잡이 원양어선 백구발진호에서 작업도중에 실종된 선원 2명이 이배의 유족과 이배의 간부선원들 사이에 난투극이 벌어졌습니다.

계속되는 고통에 견디다 못해 조업중간에 귀국한 선원에게 실종소식을 전해 듣고 배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던 유족들의 그동안 싸인 원한이 폭행혐의자인 간부선원들을 보자 폭발한 것입니다.

그러나 육상에서 멀쩡한 사람이 원앙어선을 타고 나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숨진 채 돌아오는 일은 이 사건 이외에도 줄을 잇고 있습니다.

현대판 노예선이라 불리는 원양어선.

경찰통계만으로도 1년에 120여명 이상이 실종되거나 변사체로 발견되고 있는 현실은 원양어선의 작업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그대로 드러냅니다.

놀라운 것은 원양어선 이외에도 작년 한 해 동안 연근의 어선과 상선 등 바다에 떠 있는 선박에서 숨지거나 사라진 사람들이 모두 800명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육지에 있는 어느 단일산업체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일찍 해결책이 마련됐을 법한 원양어선업계의 선상폭력문제는 오랫동안 사회적 관심으로부터 소외돼 있었습니다.

● 이상철 씨(제2미사호 승선): 조타실로 들어와 때려가지고 그것보다도 물에 빠져 죽인다 이거예요.

너 같은 놈 한 놈 죽여도 그물한번 잘 하면 된다 이거예요.

죽어라 내버려둬도 그물만 잘 잡으면 된다.

이런 식으로 내가 그 소리 듣고 사실 누워서 숨을 못 쉴 정도로 그것을 인정을 안 해주는 거예요.

● 김용관 씨(태창76호 승선): 배 청소하는 것 있어요.

고조리대라고요.

그것으로 때리고 방망이로 치고 양산하다.

기분 나쁘고 고기는 안 들어오고 일이 안 돌아간다 아닙니까?

그러면 항해사 불러가지고 귀뺨 바로 때립니다.

● 기자: 선원이 되려는 사람들은 반드시 해운만청 산하의 선원인력관리사소를 거쳐야 하지만 대부분의 원양어선 선원들은 신문에 나오는 무허가 직업소개소 광고를 보고 목돈을 쥐어 보겠다는 단순한 생각만으로도 배가 오르고 있습니다.

● 인터뷰: 맨날 육상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한번 경험도 살려보고 싶고 그래가지고 들어갔는데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무허가더라고요.

배타고 다니니까는 거기는 전혀 해당사항이 없고 오히려 속여가지고 우리 소개비로 먹고 살더라고요.

● 기자: 그러나 선원수급을 맡고 있는 항만청은 없는 인력을 만들어 낼 수 없다며 불법소개소를 방치해 놓고 있는 상태입니다.

원양어선의 가장 큰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선박이 워낙 낡았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원양어선 선박들이 20년 이상 되었지만 선주들은 선박현대화를 위한 투자를 하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소위 도합제라는 이름으로 선주들이 자기이익만 챙길 뿐 선원복지를 위한 재투자에는 시선조차 돌리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 여상주 씨(제53세양호 갑판장): 재주는 곰이라고 돈은 누가 먹는다고 그런 식이죠.

가령 내가 작년에 고기를 650톤 계약에 1,300톤 잡았는데 선장은 한 몇 천 받았을 것입니다.

몇 천만 원 받았지만 나한테 돌아오는 건 돈 6백만 원 돌아왔어요.

하급선원들은 3백 몇 십만 원, 400만원....

● 유기준(변호사): 선원들 작업환경이 굉장히 열악합니다.

예를 들면 700평 이하 같은 경우에는 선주들이 지금 선원법에 있어서 선원을 보고하는 규정이 배제되고 있습니다.

근로기준법에서 마찬가지로 근로자 재임하는 국가에서 보조금 주는 것 마찬가지인데 선원들이라고 거기에 배제될 수 없거든요.

● 기자: 선상폭력의 원상이 되고 있는 원양어선의 작업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위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원양어선은 바다위의 포로 수용선으로 남을 수 없게 되고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선원구인난이 가중될 경우 결국 원양어업이라는 업종자체가 막을 내리게 될 것이라는 경고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입니다.

(최용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