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앵커: 엄기영,김지은

보스니아 내전 1년[최명길]

입력 | 1993-04-06   수정 | 1993-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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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 내전 1년]

● 앵커: 세계 어느 나라도 선뜻 개입하려 들지 않는 전쟁,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내전이 오늘로 꼭 1년을 맞았습니다.

유럽의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문명의 참상, 국제부 최명길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 기자: 밤도 낮도 없는 365일 간의 전쟁, 보스니아를 구성한 3개 종족은 이제 더 이상 죽고 다친 사람의 수를 세지 않습니다.

포격은 생활의 한 부분이 됐고 언 땅에 아들과 친구를 묻고 돌아서는 슬픔도 일상사가 됐습니다.

84년 화려한 모습으로 동계올림픽을 유치했던 사라예보가 폐허로 변하게된 출발점은 1년 전 오늘,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가 국민투표를 통해서 유고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UN이 이를 승인하면서부터입니다.

420만 인구 중 약 3분의 1인 세르비아계는 철수를 거부해 온 연방군과 합세해서 사라예보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무차별 파괴와 살육이 이어졌습니다.

확인된 사망자만 만 3천, 실종자 13만 명, 그리고 200만 명이 고향을 떠나 유랑하고 있습니다.

작년 4월 6일 이슬람계와 세르비아 간의 전투가 시작된 뒤 양측은 수십차례 휴전에 합의했지만 포격이 멎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

제네바와 런던에서 내전 종식을 위한 평화협상이 마라톤처럼 이어졌지만 나라를 10개로 나누자는 밴스 오웬안은 수용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지난 1년 사라예보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단지 참혹하게 숨져간 어린아이들의 모습, 뼈만 앙상한 수용소의 포로들, 언 땅위에 나뒹구는 시체, 그리고 전기마저 끊긴 지하실에서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 굶어죽은 동물원의 호랑이와 배회하는 곰, 사라예보의 시간은 얼어붙어버렸고 날짜를 기억하며 사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지난해 6월부터 UN과 NATO는 사라예보 공항을 점령하고 인도적인 구호활동을 계속해왔지만 내전을 해결할 능력은 없습니다.

미국의 개입 가능성도 희박합니다.

교회의 장례 음악과 무덤 앞에 흐느끼는 병사의 눈물은 끝이 보이질 않습니다.

짐짝마냥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 오늘 사라예보에서 한 서방기자는 이렇게 타전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곳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은 인간성은 부정됐고 용기는 침묵했다는 것이다.”

MBC뉴스 최명길입니다.

(최명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