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앵커: 엄기영,백지연
임채성 일병 탈영과 서울 진입과정[이윤재]
입력 | 1993-04-19 수정 | 1993-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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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성 일병 탈영과 서울 진입과정]
● 앵커: 오늘 인질 난동사건은 임 일병이 강원도 철원에서 서울의 도심까지 무려 일곱 군데의 검문소를 유유히 통과했다고 하는 점에서 더욱 충격이 클 수 밖에 없습니다.
임 일병의 탈영에서부터 서울까지 들어온 과정, 그리고 허술했던 군ㆍ경 검문검색의 문제점을 사회부 이윤재 기자가 보도합니다.
● 기자: 탈영병이 수류탄 22발과 소총을 들고 철원군 금난면 소속 부대에서 탈영한 시간은 오늘 새벽 3시40분, 2시간이 지난 새벽 5시40분쯤 인근의 남 일씨 집에 나타나 민간인 옷으로 갈아입은 뒤 남씨로 하여금 남씨 소유의 봉고 승합차를 몰게 해 서울로 향합니다.
1시간30분 뒤인 7시10분쯤 경찰검문소가 나타나자 검문에 응하지 않고 내뺍니다.
다음 검문소는 이곳으로부터 13㎞ 떨어진 철원군 다목리검문소, 군ㆍ경합동검문소입니다.
이렇다 할 제재 없이 무사통과입니다.
남대천강을 따라서 40분여를 달리자 세 번째 검문소인 포천군의 도평리검문소가 나타납니다.
역시 이것도 형식적인 검문 절차만으로 통과입니다.
이어 이동면 장암검문소와 일동면 일동검문소, 이 두 곳의 검문소에서도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습니다.
서파검문소를 거쳐 마지막으로 광릉내검문소가 나타납니다.
이곳에서 비로소 제지를 받습니다.
경찰이 검문에 불응해 뺑소니친 뒤 2시간20분이나 지나서였습니다.
임 일병은 군의 제지를 무시하고 서울에 진입해 한낮 도심의 난동을 시작했습니다.
더구나 도심 한복판에서 시민을 인질로 삼아 난동을 부리는 동안에도 군과 경찰은 제대로 손을 쓰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더해 주고 있습니다.
임 일병이 탈영한 뒤 발견된 일기장에는 거지가 되더라도 이승보다는 저승이 낫다는 글이 적혀 있어 군 수사당국은 개인의 신상문제를 비관해 이 같은 짓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MBC뉴스 이윤재입니다.
(이윤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