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데스크조국현

"7억 중국인도 못 한 일"…윤봉길 의사의 그날

입력 | 2019-01-01 19:44   수정 | 2019-01-01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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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힘들게 첫발을 내디뎠지만 풍전등화와도 같던 임시정부가 독립운동의 구심점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윤봉길 의사의 폭탄 투척 의거였습니다.

당시 중국의 장제스 총통은 7억 중국인이 하지 못하던 일을 한 명의 조선인이 했다고 얘기하면서 임시정부 지원에 나섰습니다.

상하이가 기억하는 윤봉길 의사를 조국현 기자가 만났습니다.

◀ 리포트 ▶

상하이 중심가의 주택가.

나라를 뺏긴 후 중국으로 건너와 평생을 조국 광복에 바친 경상도 선산 사람 김해산의 집이 있던 곳입니다.

1932년 4월29일 거사 그날, 윤봉길 의사는 이 집에서 김구 선생과 아침을 먹었습니다.

김구 선생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아끼던 자신의 시계를 건넸다고 합니다.

[MBC 무한도전 <위대한 유산> 중]
″선생님, 제 시계의 시간은 이제 한 시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제 시계) 바꿔차시지요. 우리 지하에서 만납시다.″

윤봉길 의사와 헤어진 김구 선생이 초조하게 거사 소식을 기다리던 독립운동가 김의한 지사 집터에는 이탈리아 음식점이 들어섰습니다.

이날 김구 선생은 한동안 입에 대지 않던 술을 마셨습니다.

[김자동/김의한·정정화 지사 아들]
″(김구 선생이) 어머니한테 ′술 한 병 사오라′해서 어머니가 나갔는데, 호외가 다시 나왔어요. 중국 사람이 (폭탄을 던진 게 )아니라 조선 청년이라고 다시 나왔다는 거야. ′잘됐다′고…″

내부 분열과 재정 고갈 등으로 유명무실해져 가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윤봉길 의사의 희생으로 다시금 동력을 얻게 됐습니다.

의거는 일본과 맞서고 있던 중국인들이 대일 항전의식을 되새기는 계기로도 작용했습니다.

김구와 윤봉길에 대한 전기소설 세 편을 쓴 중국 소설가 샤넨성씨.

한국 독립운동가들의 기상은 현대 중국인에게도 전해져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샤넨성/중국 소설가]
″윤봉길 의사는 한국의 국민적 영웅이자, 중국인에게도 영웅입니다. 또 전 세계의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도 역시 영웅입니다.″

지금은 루쉰 공원으로 이름을 바꾼 홍코우 공원 안에는 윤봉길 의사를 기리는 비석과 기념관이 있습니다.

스물다섯에 처형당한 한국인 독립운동가를 여전히 영웅으로 기억하고 있는 중국인들은 이 공원에 한국인들의 발길이 뜸해지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상하이에서 MBC뉴스 조국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