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조희형

'그날' 이후 5년…생존, 그 이후의 삶의 의미

입력 | 2019-04-16 07:32   수정 | 2019-04-16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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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5년 전 침몰한 세월호에서는 승객 172명이 구조됐습니다.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고통, 나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하지만 생존자들은 고통의 기억에서 조금씩 벗어나면서 삶의 의미를 찾아 나가고 있습니다.

조희영 기자입니다.

◀ 리포트 ▶

5년 전, 장 씨는 세월호에 탑승한 단원고 2학년 1반의 학생이었습니다.

장 씨는 단원고를 졸업한 뒤 대학 응급구조과에 진학해 올초에 졸업했습니다.

[장애진/세월호 생존자]
″도움을 받은 만큼 돌려줘야 된다고 생각도 하고, 그 직업은 초기대응을 할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에…″

90도로 기울어진 세월호에서 가까스로 탈출했던 기억, 응급 구조 실습을 나갈 때면 그때의 상처가 되살아나기도 합니다.

[장애진/세월호 생존자]
″환자 처음에 심폐소생술 하게 됐었어요. 근데 그 이후에 뭔가 그냥 떨렸다고 해야 되나. ′심정지 환자입니다′ 그러면 떨리더라고요.″

하지만, 장 씨는 자신의 손등에 노란 리본을 새겨넣을 만큼 그 기억을 결코 놓지 않고 있습니다.

5년 전 그날, 살아남은 또 한 사람.

배 안에서 소방호스를 몸에 감고 승객들을 구조해 내 ′파란 바지 의인′으로 알려진 김동수 씨입니다.

당시 화물차 기사로 일했던 김 씨는 지금은 아내와 제주에서 공원 관리인으로 살아갑니다.

매일 수십 킬로미터 숲길을 걸으면서 마음을 달래보지만, 쉽진 않습니다.

[김동수/세월호 생존자]
″(숲에 놀러온 학생들이) 재잘재잘 거리는 것이 저한테는 그날 학생들이 ′아저씨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우린 살 수 있어요′ 이렇게 하는 소리로 들려요.″

그래서 김씨는 세월호 5주기를 앞두고 마라톤을 하기로 했습니다.

[김동수/세월호 생존자]
″그거라도 안 하면 미칠 것 같아가지고 그냥 계획없이 짰어요.″

세월호의 생존자 저마다 사는 모습이 다르고, 상처의 깊이와 아무는 속도도 차이가 큽니다.

다섯번째 봄, 힘겨웠던 그들의 작은 변화가 이제 시작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MBC뉴스 조희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