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김정현

[오늘 다시보기] 이한열 사망(1987)

입력 | 2019-07-05 07:26   수정 | 2019-07-05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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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오늘 이한열 열사가 27일간 사경을 헤매다 결국 숨졌습니다.

[1987년 7월5일 뉴스데스크]
″심장 정지 상태로 들어가서 긴급 심폐 소생술을 시도했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고문과 억압이 자행되던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1987년 1월에 발생한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은 민주화 운동의 촉매제가 됐습니다.

하지만 4.13 호헌 조치는 군정 종식과 대통령 직선제 도입을 원하는 국민의 열망을 한순간에 꺾었습니다.

[전두환/전 대통령(1987년 4월13일 발표)]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력을 낭비하는 소모적인 개헌 논의를 지양할 것을 선언합니다.″

박종철 치사 규탄대회를 하루 앞둔 1987년 6월 9일, 군사정권 종식을 요구하는 연세대생 수백명이 교문 앞에 모였습니다.

앞줄에 섰던 연세대 2학년 이한열은 머리에 경찰이 쏜 최루탄을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한열이를 살려내라! 한열이를 살려내라!″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됐고, 6월 29일 기어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는 선언으로 이어졌습니다.

[노태우/당시 민주정의당 대표(6·29 민주화 선언)]
″여야 합의하에 조속히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하고 새헌법에 의한 대통령 선거를 통해서…″

″이한열의 죽음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함께 전두환 정권의 잔인성에 대한 전 국민적 분노를 이끌어냈습니다.

이 같은 분노는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됐고, 폭압적인 군사정권을 끌어내리는 계기가 됐습니다.

오늘 다시보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