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데스크양소연

[법이 없다] "당신 고소한 사람 여기 삽니다"…신상 노출 여전

입력 | 2020-04-21 20:16   수정 | 2020-04-23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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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꼭 필요하지만 국회에 잠들어 있는 법안을 알아보는 <법이 없다> 순서입니다.

성 범죄 피해자가 가해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을 때 피해자의 집 주소까지 가해자한테 전달되는 걸 아십니까?

이 걸 막기 위한 법안이 국회에 올라와 있지만 20대 국회는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양소연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지난 2015년, 당시 21살이었던 정 모 씨.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정 씨는 카페 직원 회식에 참석했다 매니저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했습니다.

이듬해 매니저는 형사재판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정씨는 가해자를 상대로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배상하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승소했습니다.

그런데 판결문을 받아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자신의 이름과 주소 같은 신상정보가 적힌 판결문이 가해자에게도 그대로 전달됐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정 모 씨]
″정말 많이 당황스럽고, 무섭고 그랬어요. 가해자한테 제 신상정보라는 게 다 모두, 하나의 가림 없이 갔으니까…″

불안한 마음에 정신적 피해는 더 커졌습니다.

[정 모 씨]
″개명을 하고 전화번호도 열 번 이상은 바꿨어요. 불안해서 바꿨어요. (SNS도) 원래 쓰던 거에서 탈퇴하고…″

하지만 법원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답뿐입니다.

민사소송법에 원고의 개인정보를 가리고 피고에게 보낼 근거조항이 없다는 겁니다.

[정 모 씨]
″′제 주소가 다 노출된 상태로 갔는데 (이게) 맞느냐′고 했더니 ′법이 그렇다. 어쩔 수 없다. 그게 싫으면 아예 소송을 걸지 말았어야 됐다′(고)…″

정 씨는 자신과 같은 2차 피해 사례를 막기 위해 ′성범죄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가해자에게 보내는 걸 막아달라′는 국민청원을 직접 올렸고, 25만명이 동의하기도 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에서는 지난 2018년과 2019년 두 차례나 ′민사소송법 일부개정안′이 발의됐습니다.

하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당사자 특정이 안 되면 민사소송에서 집행이 안 되기 때문에 실익이 없을 거″란 의견이 제시되는 등 입법에 속도가 나지 않고 있습니다.

법원행정처는 또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김정혜/한국여성정책연구원]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판결문 단계에서까지 보호하기 위한 입법적인 시도는 필요한 거라고 생각이 들고요. 보복의 우려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낙인의 우려라든지, 내용이 퍼져나갔을 때 피해자가 받을 수 있는 또 다른 2차 피해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피해자의 개인정보 노출 우려가 있는 건, 민사 소송에서만이 아닙니다.

형사 재판 때 피고인에게 손해배상을 명하는 ′배상 명령′ 제도에서도 ′배상 신청인′, 바로 피해자의 이름이 판결문에 기재될 수 있어 함께 개선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정 모 씨]
″그 사람이 저를 찾을 수 있는 단서들을 다 지우고 싶었어요. 그러면 찾기가 어려워지지 않을까. 그럼 적어도 저한테 아무 일은 안 일어나지 않을까…″

<법이 없다> 양소연입니다.

(영상취재 : 김재현 / 영상편집 : 유다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