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데스크손은민

"참화 속에서 피운 꿈"…대구 피란학교를 아시나요

입력 | 2020-06-25 19:41   수정 | 2020-06-25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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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전쟁 통에도 문을 연 학교가 있습니다.

바로 피란민을 위한 천막 학교입니다.

여기에서 아이들은 언어를 익히고 문학과 역사를 배우면서 절망의 시기에 희망을 키웠습니다.

대구 피란 학교 이야기를 손은민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천막으로 지붕을 치고 판자로 얼기설기 벽을 만든 교실.

그마저도 없어 폐허가 된 언덕에서 칠판 하나를 앞에 두고 다닥다닥 모여 앉아 수업을 듣습니다.

6.25 전쟁 당시, 대구의 피란 학교 모습입니다.

[안병영/전 부총리(당시 피란학교 재학생)]
″노천 교실에서 수업했어요. 말이 노천이지 언덕에 큰 나무에 칠판을 걸어놓고 선생님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1950년 6월 전쟁이 일어나고 서울을 빠져나온 피란민 수십만 명이 대구로 밀려들자 이듬해, 학업이 중단된 아이들을 위한 학교가 세워졌습니다.

먹을 것도, 지낼 곳도 없이 모두 가난하고 비참한 삶이었지만, 가르치고 배우고자 하는 열의만은 절실했습니다.

[현미/가수(당시 피란학교 재학생)]
″5살짜리, 2살짜리 (동생은) 상다리에 묶어놓고…왜냐하면 그때 당시에 나쁜 사람들이 잡아갈까봐. 그리고 거기에서 a,b,c,d를 배우고…″

[채현국/효암학원 이사장(당시 피란학교 재학생)]
″학교가 아니고 (유일하게) 사람이 생기가 도는 곳입니다. 그 굶는 판에 온갖 세계 문화 이야기를 얼마나 잘해주시는지…″

전쟁이 끝나자 하나, 둘 고향으로 돌아갔고 1954년, 피란 학교도 문을 닫았습니다.

3년 동안 2천400여 명의 학생들이 이 학교를 거쳐갔습니다.

이제 여든을 넘은 졸업생들은 그때 배움이 없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마종기/시인(당시 피란학교 재학생)]
″그때(피란 학교 시절)부터 제가 글을 쓰기 시작했죠. 아마 그 학교가 없었으면 적어도 제가 학교를 제대로 다니기가 힘들었을 거고…″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힘은 어쩌면 대구 남산동의 이 조그만 학교에서 시작됐는지도 모릅니다.

MBC뉴스 손은민입니다.

(영상취재 : 한보욱(대구) / 영상제공 : 대구교육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