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 폭염으로 이름을 떨친 1994년과 2018년 8월도 올해와 비교하면 상대가 안 될 정도입니다.
이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지 서울과 싱가포르의 8월 최저기온을 비교해 봤습니다.
열대야의 본거지인 싱가포르보다 서울의 최저기온이 높은 날이 31일 중 21일이나 됐습니다.
열대야 대결에서 싱가포르가 서울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 열기의 근원은 우선 이례적으로 팽창한 아열대 고기압입니다.
예년 8월에 북태평양 고기압은 일본 남해안 근처에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이렇게 크게 팽창해 우리나라 남부와 서태평양, 중국을 뒤덮었습니다.
[김백민/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
″(북태평양 고기압이) 한반도 남쪽 지역을 거의 다 덮으면서 한 달 가까이 이렇게 정체했었던 경우는 거의 기록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더 상층에는 티베트 고기압도 발달하면서 우리나라는 가마솥 같은 열돔에 갇혀 기록적 폭염에 시달렸습니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이처럼 거대하게 덩치를 키운 건 그만큼 많은 열을 대기와 바다로부터 공급받았기 때문입니다.
[김백민/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
″뜨거운 해수면 온도로 인한 열팽창으로 인해서 북태평양 고기압이 더 강하게 발달할 수 있는 그런 조건들을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올해 서태평양에서는 적어도 3가지 열원이 동시에 출현했습니다.
지난해 강하게 발달했던 엘니뇨가 뿜어낸 열기, 지구온난화로 역대 최고치로 수온이 상승한 바다가 뿜어내는 열기, 그리고 태평양 장주기 자연 변동인 PDO 입니다.
전문가가 아니면 생소한 PDO는 엘니뇨나 라니냐에 비견되는 자연 변동의 하나로, 왼쪽이 PDO 지수가 음일 때의 바닷물 온도, 오른쪽이 양일 때의 온도입니다.
PDO 지수가 음일 때 북서 태평양의 수온이 더 높아지는데요.
올여름은 PDO 지수가 관측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해 수온이 급등했습니다.
그 여파로 지금 한반도 주변은 물론 일본과 북태평양 전역에서 이례적인 고수온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올해 우리 바다는 오랫동안 기후를 연구해 온 연구자들조차 놀랄 정도입니다.
[김백민/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
″올해 가장 이례적인 것은 (바다의) 고수온입니다. 올해처럼 이례적인 바다를 구경한 적은 없었습니다.″
이런 충격은 기록으로도 입증됐습니다.
국립수산과학원의 해양조사선을 타고 동해로 나갔습니다.
채수기를 이용해 바닷물 온도와 성분을 측정합니다.
바닷물 온도는 여름이 시작되기 전부터 비정상적으로 높았습니다.
[한인성/국립수산과학원 기후변화연구과장]
″올해 상반기 우리 바다의 평균 수온이 선박 관측에서는 15.2도를 기록했고 이는 1968년 관측 이후 최근 57년간 가장 높은 수온을 경신했습니다.″
수온이 예년 수준을 최고 4~5도나 웃돌고, 30도가 넘는 해역도 속출했는데 사람으로 치면 40도를 넘는 고열과 같습니다.
고열로 신음하는 바다는 여러 가지 현상으로 증상을 드러냈습니다.
울산 앞바다를 점령한 노무라입깃해파리 떼입니다.
초록빛 바다 위에 점점이 떠 있는 게 해파리입니다.
큰 것은 1m가 넘고, 무게는 성인 몸무게의 2~3배에 달합니다.
어민들은 이렇게 많은 해파리는 처음 본다고 말합니다.
어민 생계를 위협하고 사람이 쏘이면 위험한 강 독성 해파리입니다.
강원도를 제외한 대부분 해역에는 고수온 특보가 발령됐고 전남 남해안에는 적조 특보가 내려졌습니다.
전 해역의 양식장이 큰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폐사한 양식 어류가 수천만 마리를 넘어 최악의 피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태평양에서는 예년 수준을 뛰어넘는 뜨거운 바닷물이 끊임없이 대마난류와 동한난류를 타고 한반도로 밀려오고 있습니다.
[한인성/국립수산과학원 기후변화연구과장]
″(수온 상승은) 가속화되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동아시아의 기온 상승과 저위도로부터 공급되는 해류의 열 공급 증가가 원인으로 생각됩니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엄청난 열기와 뜨거운 바다는 지구온난화 없이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한인성/국립수산과학원 기후변화연구과장]
″지구가 배출하는 열의 90% 정도는 바다가 흡수하게 되어 있죠. 온실가스 배출로 인해 지속적으로 육상이나 대기에서 증가한 열을 바다가 흡수하면서 바다의 수온도 상승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로 지구의 대기와 바다에 축적되는 열기, 엘니뇨와 태평양 장주기 변동 같은 자연적인 변동이 배출한 열기가 한꺼번에 중첩되면서 극단적인 폭염이 발생했다는 분석입니다.
바다와 대기는 여전히 뜨겁습니다.
지금부터는 위험한 태풍에도 대비해야 합니다.
[차동현/UNIST 지구환경도시건설공학과 교수]
″태평양 장주기 변동성을 의미하는 PDO 지수가 있는데 지금 상당히 음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한반도 주변 해수온이 상당히 높고 우리나라 상층의 제트 기류가 약해져서 태풍이 북상할 경우 강도가 계속 유지될 수 있게 됩니다.″
온실가스를 더 빨리 줄이고, 위험해진 지구에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