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계약서 내용을 보니, 사실상 건물주가 마음대로 임대료를 올릴 수 있다, 이런 거네요. 저러니까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나오는 거겠죠.
◀ 허일후 ▶
처음에는 자기들도 필요해서 들어와 달라고 해놓고, 나중에 보니까 너무 싸게 줬네. 이런 거잖아요.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르다. 이 말이 생각나네요.
◀ 김지경 ▶
사실 김일도 씨만 해도 코로나19로 어렵다고는 하지만, 돈을 많이 번 성공한 사업가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다뤄도 될까 고민이 좀 있었습니다.
하지만 건물주와 임차인의 관계가 얼마나 불평등한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아닌가 생각해서 다루게 됐습니다.
◀ 조승원 ▶
그런데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있잖아요. 임대료를 1년에 5% 이상 못 올리게 법으로 정한 거 아닌가요?
◀ 김지경 ▶
법이 있긴 한데, 다 법의 보호를 받는 건 아닙니다. 서울시의 경우 환산보증금 9억 원 까지만 적용됩니다.
요즘 명동이나 홍대 같은 주요 상권들은 웬만하면 다 환산보증금 9억이 넘기 때문에, 사각지대가 많은 거죠.
◀ 허일후 ▶
김일도 씨만 해도 돈 많이 번 사업가인데, 더 어려운 분들이 많을 거 아니에요.
◀ 김지경 ▶
그렇습니다. 임차인들을 괴롭히는 불공정한 계약은 더 많습니다. 건물주는 절대 손해보지 않는 계약. 지금부터 이 사례들을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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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홍대 앞에 있는 애경그룹의 쇼핑몰입니다.
식당가라고 적힌 5층에 올라갔는데 곳곳에 하얀 가림막이 쳐져있습니다.
2년 전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음식점이 12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세 곳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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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가 넘은 시각
돈까스 집 손님이 단 한명입니다.
식당이야 식사 때가 지나서 그럴 수 있다 치고, 카페는 좀 다를까?
마찬가지입니다.
손님이 딱 한 테이블에만 있습니다.
빵을 만들면 파는 것보다 버리는게 더 많아서 아예 조금씩만 만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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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손님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상인들을 정말 괴롭히는 건 ′최소보장임대료′입니다.
최소보장임대료.
임대료를 정할 때, 매출액의 일정 비율, 또는 미리 정한 최소보장임대료 가운데 더 많은 걸로 내는 겁니다.
장사가 잘되면 거기에 비례해서 임대료를 더 많이 내고, 장사가 안되더라도, 최소한으로 정한 액수만큼은 임대료로 내야 합니다.
왜 이게 그렇게 심각한 문제인지 따져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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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쌀국수집이 건물주인 애경과 맺은 계약서입니다.
매출액의 12%, 또는 최소보장임대료 1,413만원 가운데 더 많은 돈을 임대료로 내야 합니다.
코로나19가 심각하던 지난 3월.
한 달 매출은 1,653만원이었습니다.
매출액의 12%는 198만원
하지만 최소보장임대료 1413만 원이 더 많으니 이 돈을 내야합니다.
부가가치세까지 합하면 임대료만 1천5백만 원이 넘습니다.
여기에 관리비로 6백만 원 넘게 또 나갑니다.
건물 주인에 내는 돈만 한 달에 2천4백만 원입니다.
전체 매출보다도 많은 돈입니다.
결국 770만 원 빚을 내서 건물주에게 줬습니다.
3월만 그랬을까?
바로 다음 달인 4월에도 건물주에게 준 돈은 전체 매출액보다 3백만 원 많았습니다.
5월에는 건물주에게 낼 돈 모두 내고 나니, 달랑 127만 원 남았습니다. ///
그래봐야 1천만 원 넘는 인건비와 재료비까지 나가면, 고스란히 손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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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홍대
2018년 8월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경의중앙선과 공항철도, 2호선이 지나는 교통의 핵심 요충지.
거기다 젊은 유동인구가 많은 홍대입구역에 있습니다.
[송OO/AK&홍대 카페 사장]
″그러니까 처음에 여기 왔을 때 들었던 이야기들은 위에 상주 근무하는 인력들이 뭐 몇천 명 있고.″
하지만 기대만큼 상권이 빨리 활성화되지 않았습니다.
시작부터 최소보장임대료가 상인들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상인들이 비대위를 꾸리고 항의하자, 애경 측은 12개월 동안 최소보장임대료 대신, 매출 비율대로 받겠다는 협상안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협상은 결렬됐습니다.
[송OO/AK&홍대 카페 사장]
″6개월에 해당되는 미니멈 개런티를 제해줄 테니까 더 이상 이런 비대위 행동을 하지 말고. 이 이후에는 어떤 반론도 제시하지 않는다는 서명을 해라.″
그러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았습니다.
[장OO/AK&홍대 카페 사장]
″제가 교직에서 한 20년 넘게 있다가 그 돈을 전부 다 투자해서, 제가 평생 번 돈이에요. 제 노후와 제 가족의 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돈을 전부 다 여기 다 투자한 거죠.″
버티지 못하고 문닫는 가게들이 속출했습니다.
문 닫는데도 돈이 듭니다.
위약금에 시설복구비 몇천만 원을 또 물어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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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경 측의 입장을 들어봤습니다.
[AK플라자 홍보팀장]
″저희가 할 수 있는 마지노선 맥시멈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거를 손해 보면서 하면 저희 직원들도 다 집에 가야겠죠.″
어쨌든 계약은 지켜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AK플라자 홍보팀장]
계약 조건을 모르고 들어오는 임차인은 하나도 없을 거예요. 상업을 이미 하고 계신 분이니까 초보도 아니고. 이런 상권이나 이런 분석을 다 통해서 오신 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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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보장임대료.
하이브리드 임대료라고도 합니다.
장사가 잘 될 때는 임대료가 한도 끝도 없이 오릅니다.
하지만 장사가 안 되면 그 손해는 고스란히 상인들이 떠안습니다.
너무 불공정한 계약은 아닐까?
상인들이 공정위에 약관 심사를 청구했지만 아직 결론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김남주/변호사]
″과거에 소작할 때 농사, 전근대적인 지주와 소작 관계에 있을 때, 소출액의 3분의 1, 소출액의 한 40%. 이렇게 소작료를 받았었거든요. 그때는 최저 수익보장처럼 ″적어도 한 마지기당 얼마를 내라.″ 이런 건 없었어요. 소작이 안 좋으면 안 좋은 대로 그거의 몇 퍼센트를 가져가는 방식이었지, 최저수익 보장은 없었거든요. 그때 조선 시대보다 후행한 그런 제도가 아닌가.″
이런 식의 계약은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곳곳에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대구MBC 7월 24일 보도]
″한 대형마트가 최소보장임대료란 걸 내세우면서 점표 임대료를 천만원 가까이 꼬박꼬박 받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인터뷰)″집사람하고 저하고 아침부터 나와서 일을 해도 오히려 마이너스…″
롯데, 신세계 같은 주로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 복합몰 상당수가 이런 식의 계약을 맺고 있습니다.
정치권이 압박하자 홈플러스는 일단 연말까지는 최소보장임대료를 적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임일순/홈플러스 대표이사]
″이 어려운 시기에 저희 상생의 의지, 그리고소상인들과 함께 하는 그런 노력의 결과들이 위기를 잘 극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고요.″
하지만 대부분이 대기업들은 이런 계약을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동주/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
″최저보장임대료로 소상공인들의 등골을 빼먹으니까 이게 정말 상생하는 건지, 욕을 먹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이 드는데요.″
[임영록/신세계프라퍼티 대표]
″의원님 앞에서 흔쾌히 혼합임대료를 안 하겠다 말씀드릴 수 없느냐 하면, 사실 대형쇼핑몰 하나 만드는데 9천억에서 한 1조 정도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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