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법을 개정하긴 했는데, 그게 선언적 조항일 뿐이고, 현실적으로 건물주가 안 받아주면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거네요.
◀ 허일후 ▶
지금 당장 폐업할까 말까 피를 말리고 있는데, 몇 년 걸릴지 모르는 소송으로 해결하라. 이건 좀 무책임한 거 아닌가요?
◀ 김지경 ▶
사실 이번 취재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인터뷰 섭외였습니다. 정말 어려운 분들은 인터뷰를 거절했습니다. 임대료를 깎아달라고 읍소하든, 아니면 폐업을 하든, 일단 손해를 최대한 줄이려면 건물 주인과의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 허일후 ▶
법은 멀고, 건물주는 가깝군요.
◀ 조승원 ▶
그런데, 만약에 이 사태가 오랫동안 계속돼서 임차인들이 망하면, 건물주들도 결국 힘들어지잖아요?
◀ 김지경 ▶
그렇죠. 지금까지 코로나 사태로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임차인들 얘기를 주로 했는데, 사실 앞으로는 건물주들도 문제입니다.
◀ 허일후 ▶
누가 누굴 걱정하나 싶긴 한데요, 사실 저만 해도 요즘 온라인 쇼핑으로 물건 사지, 마트나 백화점 안 가거든요. 그러니까 대형마트나 백화점들도 다 어렵다고 하잖아요.
◀ 김지경 ▶
더 큰 문제는 코로나19가 끝나더라도, 이런 추세가 바뀔 것 같지 않다는 겁니다. 이제 소매업의 종말, 자영업자의 종말이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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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신촌 현대백화점 12층에 있는 커피공방입니다.
통인동에서 커피콩 볶는 카페로 유명했습니다.
그 유명세를 타고 지난해 10월 백화점에 입점했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코로나19 사태가 닥쳤습니다.
[박철우 대표/통인동 커피공방]
″사실 차입을 통해서 해서 버티고 버틴 게 지난 여름까지의 상황이었고, 여름부터는 다 매각을 통해서 버텨왔어요. 창고의 보증금을 빼서 1천만 원짜리 창고를 보증금 2백만 원짜리 창고로 옮긴다든지.마지막 보루였던 2천만 원짜리 보증금 월세, 그걸 7월에 처분을 하고 지금은 직원들이 돈을 꿔주고 있어요. 직원들이…직원들이 돈을 꿔주기도 하고. 직원들이 신용대출을 받아서. 근데 또 이제 신용대출이 막혔잖아요.″
여기도 문제는 최저보장임대료 계약입니다.
장사가 안 돼도, 꼬박꼬박 내야하는 돈이 450만 원입니다.
″최저보장 수수료가 적용되는 시기를 조금 늦춰주시면 안 될지, 액수를 450에서 약간 하향을 해주시면 안 될지. 결론은 어떠한 변화도 불가. 장기화될 거라면 더더구나 이건 불가하다는 답변을 받았죠.″
커피공방의 임대인은 현대백화점이 아닙니다.
OTD라는 업체입니다.
″빌딩숲, 숨은 공간을 찾아내고 도시인들의 삶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독창적인 문화공간을 만듭니다.″
OTD는 새로운 사업 모델을 내세웠습니다.
백화점이나 마트의 상가를 통째로 빌린 뒤, 맛집들을 모아 새 상권을 만들고, 중간에서 임대료 차이를 챙기는 겁니다.
일종의 오프라인 플랫폼 사업인 셈입니다.
정부의 예비 유니콘 기업으로 뽑혔지만, 코로나19로 입점 가게들은 물론, OTD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OTD 코퍼레이션]
″커피공방 입장에서도 현재 상황이 조금 어려운 상황으로 불편함을 겪고 계신데, 저희도 동일하게 그런 과정들을 겪고 있기는 해서. 그분들이 돈을 벌어야 저희가 돈을 벌어지는 구조로 짜여진 판인데, 수익구조 자체가 그렇게 큰 수익을 벌 수 있는 구조 형태가 아니어서…″
건물 주인인 백화점은 어떨까?
[현대백화점]
″고객들의 휴식이라든가 문화생활을 위해서 그 서점 부분에 대해서 OTD에게 다 맡겼습니다.″
백화점은 매출액의 8%를 OTD에게 받기로 계약했습니다.
하지만 장사가 안 됩니다.
백화점 한 층을 통째로 빌려주고 받은 돈이 한 달에 200만 원 정도밖에 안 됩니다.
임차인, 플랫폼업체는 물론, 건물주까지.
모두가 위기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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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로 ′소매업의 종말′이 앞당겨졌다고 말합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편의점 같은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의 매출은, 작년보다 큰 폭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추석 대목이었던 9월만 반짝 1% 올랐는데, 그 와중에도 백화점은 -6%였습니다.
반면 지마켓, 옥션, 쿠팡 같은 온라인 유통업체들의 매출은 급증했습니다.
2월에 34% 성장했고, 9월에도 작년보다 20% 늘었습니다.
온라인 쇼핑이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 딱 50%까지 치솟았습니다.
이제는 오프라인 쇼핑을 넘어서기 직전입니다.
특히 쿠팡은 로켓배송 시스템을 바탕으로, 지난해 매출 7조원을 돌파한데 이어, 올해 10조원을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거대 온라인 플랫폼이 소비를 빨아들이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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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때문에 한 발 앞서 변화를 겪고 있는 미국에서는 백화점부터 망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3대 백화점인 시어스, 니먼마커스 , JC페니가 모두 무너졌고,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백화점, 로드앤테일러도 파산 보호 신청을 냈습니다.
문 닫은 백화점과 마트의 부지는 다시 아마존이 무섭게 사들이고 있습니다.
입지가 좋으니 물류센터로 쓰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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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변화는 이미 코로나19 이전에 시작됐습니다.
음식점과 소매업 등 한국의 자영업은 이미 공급 과잉이었습니다.
배달앱 같은 독점적 온라인 플랫폼은 살아남고, 나머지는 몰락하는 자영업 양극화.
코로나19는 이 변화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도 소비자들은 오프라인으로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말합니다.
[서용구 원장/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
″2015년부터 미국에서 가속화되었고요. 한국에서는 2020년, 이번에 코로나 사태 때문에 시작된 현상이다. 소매업의 종말, 리테일 아포칼립스라고 하는 이런 현상은 지구 온난화처럼 당분간은 지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금은 건물주들이 자영업자들에게 손실을 떠넘기며 돈을 벌고 있지만, 지금 추세대로라면 이런 시대도 곧 끝날 수 있습니다.
[서용구 원장/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
″높은 임대료를 받고 안정적인 계약을 할 수 있는 그런 시대는 이제 저물어가고 있다, 이렇게 봐야죠. 획기적으로 임대료를 인하하는 길만이 상생할 수 있는 길이고요.″
[이동주/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
″임대인도 계속 공실률을 줄여나갈 수 있는 방법은, 이렇게 일방적으로 임차인한테 임대료 리스크를 떠넘기는 방식은 좀 개선해야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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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없는 성장으로 고용시장에서 밀려나는 사람들.
하지만 자영업 시장에서도 이들이 설 자리는 좁아지고 있습니다.
자영업자들의 대거 퇴출이 예상되지만, 정부 대책은 여전히 자영업자 보호에만 머무르고 있습니다.
[이원재 대표/씽크탱크 랩2020]
″과거에 전통적으로는 그런 방식으로 많이 해왔어요. 자영업자들에게 대출을 더 해드린다든지, 경영 지원을 해드린다든지. 본인이 경쟁력을 더 가져서 장사를 더 잘해라 그러면서 살리려고 해왔거든요. 그런데 지금같은 구조적인 전환기에는 지금 자영업자들이 가지고 있던 파이가 구조적으로 플랫폼 기업이나 대기업으로 넘어가는 상황에 있거든요. 그럼 이분들은 지금처럼 지금 같은 구조 아래서 경쟁력을 아무리 확보를 해도 수익성을 다시 찾아올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고치려면 강력한 사회보장정책으로 이분들의 상황을 전환시켜드리는 수밖에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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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일후 ▶
이대로라면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도 곧 옛말이 되겠군요.
◀ 조승원 ▶
암울한 미래를 보는 것 같습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미래가 닥치고 있는데, 과연 한국 사회는 준비가 돼있는지 의문입니다.
◀ 허일후 ▶
정치가 해야 할 일이 저런 거 아닙니까. 곧 많은 사람들에게 닥칠 시대를 준비하는 일. 우리 정치가 이런 절박한 현실에 머리를 맞대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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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승원 ▶
끈질긴 추적 저널리즘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 허일후 ▶
저희는 다음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방송 전체 내용은 유튜브, WAAVE, MBC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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