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B 내과의원]
″지금 BMI가 21.36밖에 안 되는데. <네, 위고비 맞고 싶어서요.> 맞고 싶으시다는 거죠? <네.> 위고비 0.25를 맞으실 거고…″
취재진이 돌아본 5개 병·의원 가운데, 단 1곳에서만 직접 BMI를 측정했습니다.
측정 결과 BMI가 정상범위로 나왔는데도 그대로 마운자로 처방전을 써줬습니다.
[서울 C 내과의원]
″혹시 앓고 있는 다른 질환이나 먹고 있는 약 있으세요? <없어요.> 약물 알레르기도 없으시고요. <네.> 네, 2.5 처방 드릴 거고요.″
BMI가 정상범위인 취재진에게 처방전을 써주지 않은, 즉 식약처 기준을 준수한 병·의원은 한 곳도 없었습니다.
약 구입비용과 별도로 처방전 비용만 한 건당 1만 원에서 2만 원 사이였습니다.
식약처의 처방 기준이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처벌 규정이 따로 없는데다가, ′환자를 위한 최선의 치료는 의사가 전문성과 경험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는 예외규정을 적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약의 인기만큼 부작용도 폭넓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석 달 전, 비만을 치료하기 위해 위고비 투약을 시작한 이 모 씨.
효과가 좋고 안전하다는 말에 위고비를 처방받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못 가, 10년 전 앓았던 우울증이 재발했습니다.
두통, 구역질에도 시달렸습니다.
[이○○/위고비 부작용 피해자]
″한 세 번째부터인가 약간 헛구역질, 구토 증상이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2단계로 넘어가면서 무기력. 이게 무기력해질 필요가 없던 시즌인데 되게 무기력해지고 우울감이 증폭이 됐어요.″
박 모 씨의 경우엔 BMI가 정상범위, 즉 비만이 아닌 정상체중이었는데도 더 살을 빼기 위해 위고비를 처방받았습니다.
주사했더니 곧바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몸살 증세가 이어졌습니다.
[박○○/위고비 부작용 피해자]
″면역력이 엄청 많이 떨어지고 몸살이 멈추질 않았어요. 그니까 목이 엄청 아프고 아무것도 못 해요. 그냥 소파에 계속 누워 있고 코로나 이후로 그렇게 아팠던 적이 처음이었어요.″
결국, 두 달 만에 위고비 사용을 중단했습니다.
위고비와 마운자로는 식욕과 혈당을 조절하는 ′인크레틴 호르몬′의 효과를 흉내 낸 약입니다.
음식물이 위에서 배출되는 시간을 늦춰 포만감을 오래 유지하고, 인슐린 분비를 늘려 혈당을 낮추는 방식입니다.
이 과정에서 위장 장애나 무기력감 같은 이상 반응이 생길 수 있습니다.
출시 8개월 동안 식품의약품안전처에 공식 보고된 위고비 부작용 사례는 270건입니다.
지난 8월부터 국내에서 시판된 마운자로는 아직 부작용이 공식 집계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위고비와 비슷한 부작용 사례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정상체중이거나 심지어 마른 체중인데도 위고비나 마운자로를 주사할 경우엔 부작용이 더 심할 수 있습니다.
[오태정/분당서울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
″우리가 30대까지는 충분히 골량을 유지해 줘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고 이제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나중에 50~60대가 됐을 때 또 골절이나 이제 골다공증 같은 만성질환을 또 갖게 되는 부분이 생길 수가 있겠고요.″
특히 청소년들이 장기간 투약할 경우, 더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습니다.
[손유리/신경과 전문의]
″청소년들이라는 게 그냥 어른의 축소판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애들은 이런 호르몬이 이제 밸런스를 이루면서 성장을 이루게 되는데 아이들에게 투여를 했을 경우에는 결국 이런 골성장이라든가 나중에 골밀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가 되고 있고요. 섭식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들도 있고…″
이 두 약물을 청소년에게 투여했을 때의 안전성에 대한 연구가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지만, 식약처는 지난 23일, 위고비 처방 기준을 만 18세 이상에서 만 12세 이상으로 하향 조정한 상태입니다.
◀ 조희원 기자 ▶
더 큰 문제는 향정신성 의약품, 즉 마약성분이 포함된 약에 청소년들이 쉽게 노출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제력이 부족한 청소년기에 이런 약물을 접하면, 성인에 비해 중독에 빠질 위험성이 훨씬 높은데요.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은 날씬한 체형을 갖기 위한 다이어트 약뿐만 아니라, 시험 성적을 잘 받기 위해 마약성분이 포함된 약물까지 처방받고 있었습니다.
무심코 처방받은 약이 청소년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릴 수도 있다는 사실, 실제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B>■ 청소년 노리는 ′약′의 유혹</B>
서울의 한 미술대학 학생이었던 홍 모 씨.
유명한 미술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26살인 지금, 작가의 꿈을 포기하고 사회복지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학창시절 손댔던 다이어트 약이 홍 씨의 인생을 바꿨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직전, 예쁜 모습으로 대학에 입학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홍○○]
″제 별명이 ′뚱순이′, ′돼지′ 이런 별명이었어가지고…″
그래서 살을 빼기 위해 친구가 추천해준 식욕억제제를 먹었습니다.
병원 처방 약이라 크게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홍○○]
″자기도 자기 아는 친구한테 추천을 받았대요. ′나도 이거 먹고 살 진짜 많이 뺐다′고 그러면서 저한테 그걸 권유를 해줘서 저도 처음 친구한테 그렇게 받아서 먹게 됐어요.″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일종의 강박증이 생겼습니다.
[홍○○]
″55kg? 이렇게 살을 엄청 많이 뺐어요. 근데 제가 키가 170cm인데 그 몸이 되게 예쁘잖아요. 옷 핏도 예쁘고 근데 거기서 1kg라도 늘어나면 그거를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체중이 늘까봐 늘 불안했고, 약을 안 먹으면 다시 살이 찔 것 같아 끊을 수가 없었습니다.
[홍○○]
″′오늘까지만 이렇게 미친 듯이 먹고, 내일 다시 이 약을 먹어야 돼′ 이런 마음이 있어서, (음식) 먹고 다시 그 약을 먹고…″
불면증과 무기력증에 건강이 악화되면서, 홍 씨는 그토록 꿈꿔왔던 대학 생활도 스스로 포기해야 했습니다.
[홍○○]
″제가 온몸에서 식은땀이 미친 듯이 나는데 진짜 혼절할 것처럼 앞에가 하얘지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 자리에서 그 바닥에 누워 가지고 한참을 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갔었어요. 학교를 잘 못 나갔어요. 그래서 학사 경고를 두 번 받고 학교에서 이제 제적이 됐죠.″
이런 와중에도 점점 더 센 다이어트 약을 찾게 됐습니다.
나중에는 필로폰, 엑스터시 같은 불법 마약까지 손을 댔습니다.
[최진묵/인천다르크 마약중독재활센터장]
″다이어트약 같은 경우, 다이어트 목적으로 먹던 친구들이 결국 먹다, 먹다, 먹다 보면 결국 필로폰이라는 게 굉장히 다이어트에 효과가 강력하게 있거든요. 식욕이 억제되고 잠도 못 자고 그게 막 며칠씩 안 먹어도 되고 이래 버리니까. 그러면 그런 효과를 보기 위해서 불법 마약을 찾게 되는 거고…″
홍 씨가 식욕억제제를 처음 접한 때부터 불법 마약 중독자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4년.
중독 치료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데도 꼬박 4년이 걸렸습니다.
[홍○○]
″′저한테 있는 그대로 모습도 괜찮다′고 해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아요. 스스로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그런 것들을 좀 알려줄 수 있는 게 학교가 해야 하는 역할이 아닌가…″
아직도 이런 마약성분이 포함된 향정신성 다이어트 약품은 너무나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일명 ′나비약′으로 불리는 ′디에타민′.
마약류인 펜타민이 주성분이라 과다 복용하면 환각 증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16세 이상부터는 의료기관에서 처방을 받을 수 있는데,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조금만 살펴보면 암거래하는 방법이 폭넓게 공유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불법거래를 근절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상규/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
″뇌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상황에서의 중독, 이런 거를 경험하면 이 뇌가 더 쉽게 빨리 ′중독의 뇌′로 바뀝니다. 그니까 성인이 되면 굉장히 오랫동안 이 중독 행동을 했을 때 중독이 되는데 청소년 시기는 더 빨리 중독의 문제로 바뀔 수가 있고 또 그걸 또 바꾸는 것도 더 어려워요.″
외모에 대한 강박관념뿐만 아니라 학업 스트레스 역시 청소년들을 약물 오남용 유혹에 노출시키고 있습니다.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다는 약들.
이른바 ′수능·면접약′으로 통하는 ′인데놀′, 그리고 ′공부 잘하게 해주는 약′으로 알려진 ′콘서타′가 대표적입니다.
인데놀은 고혈압, 부정맥 같은 심혈관계 질환 치료제로 개발된 약입니다.
심장의 수축과 박동을 억제해 몸에 피가 빨리 돌지 않도록 만들기 때문에 흥분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습니다.
ADHD, 즉 주의력 결핍증 치료제인 콘서타는 도파민이 뇌에 재흡수 되는 것을 막고, 전두엽 같은 주의력과 관련된 뇌 부위의 활성화를 촉진하는 약입니다.
두 약 모두 심장과 뇌에 직접 영향을 미칩니다.
그만큼 위험성이 높기 때문에 꼭 필요한 환자에게만 신중히 투약해야 하지만, 치료 대상도 아닌, 단지 좋은 성적을 받으려는 청소년들도 처방을 받고 있습니다.
10대 청소년들이 많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
인데놀이나 콘서타 복용 후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스트레이트가 만난 학생들은 집중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ADHD약을 먹었고, 병원에서 손쉽게 처방을 받았다고 털어놨습니다.
[서울 B 고등학교 학생]
″<′병원에서 ADHD 같다′라고 권유해서 드신 거예요?> 아니요. 제가 가서 ′ADHD 같다′고 하니까 쉽게 (처방해) 주셨어요.″
[서울 C 고등학교 학생]
″집중이 잘 안 되는 것 같아가지고 찾아보다가 추천받았어요.″
실제로 콘서타는 일선 병·의원에서 쉽게 처방받을 수 있었고, 특히 인데놀은 비대면 처방도 가능했습니다.
[경기도 A 이비인후과 의원]
″원장님 연결해 드릴게요. <네.> 예. 인데놀 처방 5일 치 해드릴게요. 잘 드세요. <네, 알겠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18세 이하 미성년자의 인데놀 처방 건수는 최근 5년 동안 2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콘서타 처방 건수 역시 2.5배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ADHD 환자가 아닌 정상 학생이 복용하면 집중력 향상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더 큰 문제는 약에 대한 의존성이 심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손유리/신경과 전문의]
″아이들에게는 이게 장기적으로 썼을 때 심장이나 이런 호흡기 문제가 생길 수 있고요. 그리고 인데놀이란 약은 또한 우울증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심리적인 의존이 생겨요. ′내가 이걸 먹어야 차분하게 집중할 수 있다′라는 생각 때문에 약을 못 끊는 분들이 굉장히 많은 거죠.″
[김남희/더불어민주당 의원 (국회 보건복지위)]
″윤리의식 부족이라고 해야 될지, 이런 것들에 대해서 규제가 지금 아주 엄격하지 않다는 그런 핑계로 자유롭게 이제 청소년들에게 마약류라든지, 비만치료제라든지 이런 것들을 처방을 해주고 실제로 청소년들이 많이 이용하는 것이 현실이거든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조사결과, 미성년자에게 처방이 금지된 의약품 22종 가운데 절반이 넘는 11개 종이 최근 5년간 13만 건이나 미성년자에게 처방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