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이재민

"바닷속 거북이를 살려라"…플라스틱 분해 기술 국내연구진이 찾았다

입력 | 2020-05-28 12:02   수정 | 2020-05-28 13:51
플라스틱에 끼인 거북이

플라스틱에 몸이 끼인 거북이입니다. 거북이의 살을 파고드는 이 플라스틱은 음료수 캔을 포장할 때 자주 쓰입니다. 이 거북이는 지난 1993년에 미국 미주리 주에서 발견됐는데요. 플라스틱을 제거했지만 몸과 장기가 이미 기형적으로 자란 탓에, 생김새가 지금도 그대로입니다.

올해 거북이 나이가 벌써 36살입니다. 미주리 주 자연 보호국은 지난 4일에, 거북이가 장기 일부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다행히 먹이를 잘 먹으면서 건강을 회복하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거북이가 플라스틱 때문에 피해를 보는 일은 꽤 자주 있습니다.
미국 애니메이션 제작자 애덤 페사페인은 지난해 4월 22일 지구의 날을 맞아 거북이 모양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해양 플라스틱 오염이 야생 동물에게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는데요. 특히 바다에 있던 비닐과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거북이 소화 기관에서 나오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해파리같은 연체류를 좋아하는 바다 거북은 비닐과 플라스틱을 먹이로 알고 먹을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거북이? 사람도 플라스틱 먹는다

플라스틱을 먹이로 착각하는 거북이가 어리석은 걸까요. 사람이라고 무사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도 일주일에 먹는 플라스틱 양이 신용카드 1장 정도 되고, 한 달이면 칫솔 한 개 분량을 먹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당장 소금과 함께 먹는 미세 플라스틱만 해도 한 해 2천 개 정도입니다. 세계보건기구가 추정한 하루 소금 소비량은 10g 정도인데요. 여러 소금 가운데 아시아산 소금에서 가장 많은 미세플라스틱이 나왔습니다. 특히 중국과 인도네시아에서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이 많은데, 강을 따라 바다로 흘러간 플라스틱이 잘게 부서져 소금에 스며든다고 합니다.

소금에서 미세 플라스틱 검출

국내산 소금에서도 미세 플라스틱이 나왔는데 1kg당 미세 플라스틱이 230개까지도 나왔다고 합니다. 소금도 이런데, 바다에는 플라스틱이 얼마나 많을까요. 농도를 조사해 보니 국내 바다 플라스틱 농도는 북태평양에 있는 쓰레기 밀집 지점보다도 76배 높았습니다.

미세 플라스틱 조각이 1㎡당 1만 1000개 넘게 나왔는데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바다 플라스틱 90% 이상 스티로폼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요. 국내 바다에서 발견한 플라스틱 90% 이상은 스티로폼이었습니다. 잘게 부서진 스티로폼은 어패류나 물고기 몸 속으로 들어가게 되겠죠. 사람이 해산물을 먹으면, 결국 미세 플라스틱도 같이 먹게 됩니다. 몸 안에서는 소화가 안 되고, 호르몬계나 면역 체계를 망가뜨리는 독성 물질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플라스틱을 아예 버리지 않으면 가장 좋겠지만, 이미 바다에 있는 플라스틱을 분해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참 좋을 텐데요. 이번에 국내 연구진이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플라스틱을 분해할 수 있는 식물 플랑크톤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습니다.
세계 최초 플라스틱 분해 플랑크톤 개발

전자 현미경 사진을 보니 처음에는 매끈하던 플라스틱 페트 병 표면에 구멍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플랑크톤이 페트 병을 분해했기 때문입니다. 2주가 지나니 페트 병에 조금씩 균열이 생겼고, 한 달 후에는 표면에 구멍이 생겼습니다.

연구진은 최종적으로, 마트나 편의점에 있는 음료수 페트 병이 인체에 무해한 물질로 완전히 분해되는 결과를 확인했다고 합니다. 유전자 합성으로 만들어 낸 새로운 플랑크톤 덕분이었죠.

이번 연구를 시작한 이용재 박사는 처음에 보여드린 거북이를 보고 연구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플라스틱 폐기물에 끼어 8자 형으로 기형화한 모습을 보고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하는데요.

아직 표준화한 플라스틱 시료가 없어서, 적당한 음료수 병을 찾으려고 연구원 안에 있는 매점에서 서성이며 고민하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고 합니다. 결국 연구실 동료가 집에서 가져다 준 음료수 페트 병을 자르고 사포로 갈아서 사용했다고 하네요.

플라스틱 농축 사슬 끊는 역할 기대

미세 플라스틱은 먹이 사슬을 따라 해조류, 물고기, 사람 몸에 쌓이는데요. 플라스틱 분해 플랑크톤이 바다에서부터, 오염 경로를 끊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겠죠. 특히 수산 양식용 먹이로 활용하면 어패류에 미세 플라스틱이 쌓이는 일을 예방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다만 물고기 몸 안에서도 플라스틱 분해 효과가 있는지, 플라스틱 분해 플랑크톤을 갑자기 투입했을 때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없는지 면밀히 분석해야 할 텐데요. 연구진도 지금 당장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바다에서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기술이 우리 눈앞에 펼쳐질 때, 이번 연구가 디딤돌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i>※ 이번 연구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세포공장연구센터에서 이용재·김희식 박사가 교신 저자로, 김지원·박수빈 석·박사통합과정생이 제1저자로 수행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생명연이 추진하는 아이디어 기반 융합 사업 지원을 받았고, 미생물 분야 국제 학술지 ′Microbial Cell Factories′ 지난달 28일자 온라인 판에 실렸습니다. </i>